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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ys Aug 19. 2018

마카오에서 카지노 게임하기

나의 첫 카지노


대게 다른 것들보다 처음의 기억은 강렬하기 마련이다.

처음 혼자 집을 보던 날, 처음 비행기를 탄 날, 처음 술 마시던 날, 첫 운전, 첫 이별, 첫 회식 등등...


처음 해외를 갔던 때가 벌써 7년도 더 전이지만, 첫날의 기억을 지금도 시간 단위로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을 만큼 자세하게 기억한다. 그 후로도 숱하게 비슷한 경험을 하지만 처음만큼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다. 아마 뇌에서 비슷한 카테고리로 대충 얼버무려 저장을 하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게 그래서일까? 처음 경험하는 일들은 점점 줄어들고, 매일을 비슷하게 사니까 다르게 기억할 필요가 없어진다. 하루하루에 무뎌지고 생생하게 기억할 것들도 줄어간다. 월, 화, 수, 목, 금을 뒤돌아보면 그냥 회사를 갔던 평일로 요약된다.


그러므로 무언가 새로 경험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흥분되는 일이지만, 특히 새로운 카테고리의 기억이 저장된다는 점에서 좋다. 이번 마카오 여행에서 '카지노 게임'이라는 첫 카테고리를 생성해냈다.



마카오는 카지노의 도시다. 수많은 사람들이 카지노를 하기 위해서 마카오에 온다. 나 역시 마카오에 가면서 400년 이상 포르투갈 지배 아래 있었던 독특한 문화와 유산들을 보고 싶었다는 것 외에 가장 궁금하고 기대되었던 것이 바로 카지노였다. 라스베가스를 대신 경험해본다는 느낌이었달까.


그런데 알고 보니 오히려 마카오의 카지노 규모가 라스베가스보다 세배 가량 크다고 한다. (https://finance.yahoo.com/news/las-vegas-vs-macau-numbers-214659491.html) 미국 사람이 주로 가는 베가스에서는 슬롯머신이, 당연히 중국 사람이 많은 마카오에서는 바카라와 같은 테이블 게임이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다는데 문화적 특성에 기인한 걸까? 흥미롭다.


마카오 호텔이 모여있는 코타이 주변 전경
마카오 호텔이 모여있는 코타이 주변 전경

카지노 게임을 하러 가기 전에 먼저 화려한 코타이 주변의 야경을 둘러보고 City of Dreams 호텔에서 하는 공연 The House of Dancing Water를 보러 갔다. 급하게 예약하느라 자리가 몇 개 안 남아있어서 앞에서 네 번째 자리를 앉았는데, 물도 적당히 튀면서 가까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The House of Dancing Water 공연 모습
The House of Dancing Water 공연 모습

처음엔 공연 티켓 값이 좀 비싸서 고민을 했었지만, 상상도 못 할 수많은 연습과 재능이 있어야만 가능해 보이는 화려한 군무와 기예를 90분의 시간 동안 아낌없이 보여준다. 위의 링 조형물에 매달려하는 춤은 너무 아름다워서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공연도 보고, 야경도 보고, 이제 본격적으로 카지노 게임을 즐기러 갈 시간이었다.


사실 전 , 자정도 넘어서야 비행기에서 려서  피곤했지만 안 씻어 찝하기까지한 몸을 이끌고 호텔 아래쪽에 있는 카지노에 갔다. 사람들이 주로 무슨 게임을 하고 게임의 룰이 무엇인지,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어리바리 떨지 않고 즐기려면 사전답사가 필요했다. 처음엔 그냥 잠깐만 볼 생각으로 갔지만 많은 사람들이 테이블에 모여 게임을 하는 걸 보니 재밌어서 꽤 오랜 시간을 둘러보았다. 내 예상과는 달리 수수한 차림의 관광객들이 많았고 음주도 되지 않아서 생각보다 건전한 분위기였다. 물론 수수한 차림의 사람들이 엄청난 돈을 걸고 게임을 하고 있었던 게 충격이긴 했지만 말이다.


게임의 룰도 몰라 한국에서부터 블랙잭 게임 앱을 다운 받아서 미리 익히기까지 했었지만, 막상 가니 처음 와본 사람 티를 팍팍 내며 어리벙벙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게임기의 기본 설정이나 딜러와 손님들이 쓰는 말들도 중국어라서 더욱더 혼란스러웠다.


손을 저렇게 흔들면 스테이, 두드리면 힛이란 뜻인가 봐.
칩은 어디서 어떻게 바꾸는 거지?
칩을 저 숫자들 사이에 놓는 건 어디에 배팅하는 걸까?


수많은 질문들을 남기고 방으로 돌아와 내일을 기약했던 것이다. 오늘이 결전의 날인 셈이다.

G와 나는 사전 답사뿐만 아니라 미리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했다. 돈을 한도 없이 게임에 걸게 될봐도 무섭지만, 돈을 잃었을 경우 슬퍼질까 봐도 걱정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 비장하기까지 했던 것 같다.


우리 각자 HK $600씩만 게임을 하자.
혹시 다 잃더라도 그 이상 더 하면 안 돼. 슬퍼하면 안 되고 그냥 게임 즐기는 비용으로 썼다고 생각해야 해.
응. 총 누적 배팅 금액이 $600이 되면 딱 게임 그만두는 거야. $600을 다 쓸 때까지가 아니고!


다시 한번 마음의 다짐을 하며 카지노를  둘러보았다. 마카오의 테이블 게임은 테이블마다 달랐지만 최소 배팅 금액이 대략 HK $200~$300 수준은 되었다. 대략 삼만 원쯤 되는 금액을 한 배팅으로 걸게 되면 우리의 게임 자금으로는 몇 게임하지도 못하고 금방 동날 것이 뻔했다. 다행히 블랙잭과 바카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게임들은 비디오 머신으로도 즐길 수가 있었는데, 그럴 경우 최소 배팅 금액이 훨씬 낮아져서 우리 같은 소액 겜블러(?)들에게 적합했다.




슬롯머신

대체 슬롯머신은 왜 하는 거야? 뭐가 재밌는 거야?
그냥 버튼 누르는 게 다잖아. 그걸 왜 그렇게 많이 하는 거야?


내가 마카오에 가기 전에 G에게 물었던 말이다. 우리 둘 다 슬롯머신의 재미를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지노의 대표 게임이니 각자 첫 게임은 $100씩 슬롯머신에 걸기로 했다. 정확히 어떤 그림이 나와야 얼마를 받는지는 몰랐지만 그냥 $100을 넣고 배팅 금액만 달리 하면서 기계적으로 버튼을 눌러댔다.


가끔씩 같은 모양의 무언가가 나오면 몇 불씩 올라가기도 했지만, 대체로 내려가는 속도가 빨랐다. 넣었던 $100이 순식간에 $20이하로 떨어지며 거의 동 날 때쯤이었다.


어렸을 때 게임을 하다 보면 중간에 짤막한 보너스 게임이 나오면서, 은화를 잔뜩 주던 게임이 있었다. 그런 느낌의 보너스 화면이 뜨더니 흥겨운 오락실 게임 노랫소리와 함께 $20가까이 줄어있던 잔액이 쭉쭉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띠리띠리' 느낌의 단음의, 그렇지만 흥겨운 오락기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데, 돈이 어느새 $60을 넘고 $100을 돌파했다. $130을 돌파했는데도 멈출 생각을 않고 계속 올라가다가 $180쯤에 드디어 멈춰 섰다.


이럴 수가. $80을 순식간에 번 것이다. (그 전에 $80을 이미 잃은 상태였으니 체감 상으로는 $160 정도를 번 기분마저 들었다.)


아, 이게 슬롯머신의 매력이구나. 로또 당첨 확인하는데 숫자가 연이어 계속 맞는 기분이었어. 내 돈이 엄청나게 올라가는 데, 어디까지 올라갈지 모른 채로 그 기대를 안으며 올라가는 숫자를 바라보는 희열.


대체 슬롯머신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던 나와 G는 이번의 경험으로 왜인지를 완벽히 이해하게 되었다.



룰렛

룰렛도 룰이 비교적 쉬워 보였기에 도전했다. 직접 딜러가 운영하는 테이블에 가서 들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영화 속에서 본 카지노 게임을 경험하고 싶었으나, 몇백 불 씩을 배팅할 수는 없어서 룰렛 머신 쪽에 자리를 잡았다. 룰은 간단했다. 어떤 숫자가 나올지를 맞추면 되는데 빨간색인지 검은색인지 대략 50%의 확률에 걸 수도 있고, 특정 숫자에 걸 수도 있는데 당연히 특정 숫자가 나올 확률은  낮으니 맞출 경우 35배 큰 금액을 얻게 된다.


G는 $100을 걸어 거의 다 잃었고, 나는 $100을 걸어 거의 $200이 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 것도 성격차이일까? G는 주로 큰 배수를 얻을 수 있는 낮을 확률에 배팅하는 경향이 있었고, 나는 리스크를 최소화해서 큰 확률에 배팅하는 경향이 있는 듯했다.



주사위 게임

우리가 제일 재밌게 한 게임은 주사위 게임이었다. 각자 $600의 예산 중 반은 이 게임에 투입했다. 주사위 세 개를 던져서 나오는 결과에 배팅하는 게임인데, 그 합이 11 이상일지 미만 일지 50%의 확률에 거는 것부터 정확히 주사위 3개 값을 각각 다 맞추는 것까지 여러 확률에 걸 수가 있다.


여러 조합에 배팅을 하면서 나름 헷징 전략(?)을 세울 수도 있었다. 게임기기마다 붙어있는 작은 전광판에는 최근 어떤 숫자가 나왔었는지 트렌드를 보여주는데 때로는 그 트렌드에 의거해서 걸기도 하고, 때로는 '계속 큰 수가 나왔으니 작은 수가 나올 때가 됐어!'라며 대수의 법칙을 따를 때도 있었고, 어쩔 때는 '어차피 독립 확률이야!'라며 내 맘대로 걸기도 했다.


G가 한창 승리의 기운을 받아 몇 번 연속이나 돈을 따서 버는 추세에 있었다. 미리 정해놓은 배팅 금액(횟수)이 다 끝나버렸다.

어차피 돈도 벌었는데 몇 판 더 할까? 지금 딱 잘되는 추세인데?

G가 이렇게 물었으나 나의 손은 재빠르게 CASH OUT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그는 이렇게 단호할 줄 몰랐다며 웃음이 빵 터졌다.


하지만 내가 주사위 게임에서 마지막 배팅 금액을 다 쓰고 "조금만 더 해볼까?"라고 물었을 때 G는 흔쾌히 더 하라고 북돋았고 결국 운이 따르지 않아 $100을 날렸다.


벌기도 하고, 또 잃기도 하면서 결과적으로 우린 만 오천 원 정도인 $100을 잃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둘이서 두 시간 반 정도 즐겼으니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G는 대리기사 알바를 할 만큼 지금은 운전을 꽤 능숙하게 잘하지만, 우리가 사귀기도 전 그러니까 7년쯤 전이던가 운전을 처음 시작할 때 나를 태운적이 있었다. 대화할 정신적 여유도 없이 벌벌 떨다가 결국 그의 집까지 우여곡절 운전을 해서 차를 세우고 놀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은 좀 소중한 추억이다.


카지노도 다음에 또 가게 되면 지금보단 더 능숙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테이블에 앉아 블랙잭과 바카라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예산부터 마음 가짐까지 하나하나 얘기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놀게 될 것이다. 그래도 처음을 함께 공유한 이 날만큼은 더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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