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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후아나(Tijuana)로 반나절 타코 트립

걸어서 멕시코 국경 넘기

by Grays

어쩌다 보니 스치듯 지나기만 했던 나라들이 있다.

그냥 버스로 지나쳐만 갔다거나, 하룻밤 잠만 잤다거나, 당일치기로 잠시 다녀왔다거나.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가 그랬다.

그런 경우에는 여행했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마땅한 기억도 없기 때문에 그저 어렴풋한 이미지만 남곤 한다.


그래서 내게 남겨진 독일의 이미지는(정확히는 frankfurt였지만) 평화로운 성당 종소리와 따분함이다.

(하필 주말에 방문한 탓에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프라하는 아름다웠지만 즐기지 못했던 밤거리, 그리고 게스트 하우스에서 엄청났던 코골이 여행자와 베드버그만 생각난다. 낮의 빈은 활기가 넘쳤고, 슬로베니아는 글쎄. 오렌지색 지붕들만 기억에 난다.



벌써 티후아나에 다녀온지도 한 달이 더 지나 세세한 기억은 모두 잊혀졌다. 분명히 무슨 이미지가 내게 강렬히 남았는데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 이미지는 결코 아름답거나 깨끗하거나 평화로움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다시 멕시코를 가고 싶게 만들었다.



걸어서 국경넘기

PEDESTRIAN ROUTE

샌디에이고에서 트램을 타고 40분쯤 갔던가? San Ysidro 종점, 멕시코 국경 지점에 도착했다. 멕시코로 가는 길 표지판을 따라 걸어가면 된다.


걸어가는길에 보았던 큰 다람쥐같은 동물들과 이국적인 선인장


입국 수속은 생각보다도 더 빠르고 쉬웠다. 그냥 여권과 가방 한번 체크하고 걸어 나오니 이미 멕시코 땅이었다.


난 평소에는 여행에서 그날 그날 뭘 할지 계획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땐 무슨 이유선지 참 의욕이 없었다. 게다가 샌디에이고도 일하러 간 것이기에 애초에 뭘 관광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사실 그래서 멕시코에 오게 된 것이다.


"생각보다 컨퍼런스 전에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샌디에이고에서 뭘 하지?"

"글쎄. 여기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데..."

"참, 여기서 멕시코 금방이라던데, 거기나 다녀올까?"


트립어드바이저에 나오는 발보아 파크며, 라호야 코브며... 샌디에이고의 인기 관광명소지겠지만 내게는 생소한 곳들 뿐이었다. 어떤 곳인지 알아보는 것도 귀찮았다.


대신 내가 익히 많이 들어본 새로운 나라 멕시코에 짧은 트립을 가는 것에 더 마음이 갔다. 가서 타코만 먹어도 소기의 성과 아닌가 싶어서.


로컬맥주 보헤미아


라임을 넣어 먹는 Modelo


멕시코에서 먹는 타코!


반나절 동안 내가 티후아나에서 한 일은 고작 3병의 맥주(각각 다른 곳에서)와 마즈칼(Mezcal) 한 샷, 그리고 타코를 먹은 것이다.


멕시코 사람들은 친절했지만, 잘 단련된 서비스 마인드로 무장한 미국의 친절함과는 완전히 달랐다. 덜 정돈되고 어찌보면 좀 형편없지만 솔직하고 더 인간적인 느낌이었다. 일례로 첫 가게에서 내가 찾던 Modelo 맥주가 없어 다른 맥주를 시켰는데, 그게 마음에 걸렸는지 주인이 냉장고에 있던 맥주를 직접 내 테이블로 종류별로 가지고 나와서 보여주기까지 했다.


멕시코에서 맛본 타코는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타코 중에는 단연 최고였다. 일단 시판 또르띠야가 아닌 직접 만드는 또르띠야를 사용하는 것이 한국에서 주로 사 먹는 것과 큰 차이점이다. 타코 안에 들어가는 고기는 마치 케밥처럼 Spining griller에서 조금씩 잘라 사용하는 것 같았다. 타코는 푸드트럭이나 패스트푸드 음식으로 잘 알려있지만, 이쯤 되면 꽤나 정성이 들어간 요리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퓨전인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들긴 하지만 피망을 살짝 구워 그 안에 토핑을 넣은 플레이팅도 쏙 맘에 들었다. 토핑이 흐르지 않게 깔끔하고, 맛도 있고. 하기야 멕시칸 푸드에서 정통성이랄게 큰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본 Ugly Delicious에서도 이런 대화가 나온다.


Anyone who comes to Mexico, they put in their little bits and pieces of their cultures.

The Germans, the Czechs, the Poles, they gave us the beer.

Labanese gave us al pastor with tacos arabes.

All different cultures are bring in their cuisines.

That's what makes Mexican food so delicious and so long-lasting.


샌디에고에서 먹었던 피시 타코

위는 샌디에이고에서 먹었던 피시 타코. 타코에 생선을 올리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익숙한 조합은 아니지만, 샌디에이고에서는 꼭 먹어야 할 시그니쳐 메뉴라고 한다. 비린내는 하나도 안 나고 신선한 맛.


모두 Mezcal


그리고 애증의 Mezcal. 이 술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그래도 맛있는 술이다.

Mezcal은 데낄라의 상위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기본적으로 아가베 선인장으로 만든 술을 Mezcal이라고 하는데, 데낄라는 아가베 중에서도 블루아가베를 사용하여 만든 술이고 다른 알콜과 섞어서 만들기도 한다.


반면 Mezcal은 20개 종류가 넘는 아가베를 자유자재로 섞어서 만들어도 되고 (단, 다른 알콜 없이 아가베로만 100% 만든 알콜), 전통 방식으로 땅에 묻어 훈연시키기 때문에 술에서 스모키한 향이 진하다. 데낄라는 정제된 깔끔한 보드카 맛이라면 Mezcal은 뭔가 야생의 매력이 살아있는 술이다.


테낄라는 주로 라임이나 레몬을 함께 내어주지만, Mezcal은 오렌지를 함께 준다. 왜일까?


해가 지기 전에 다시 미국으로 입국하기 위해 국경으로 갔다. 40분 정도는 줄을 섰어야 했는데 그동안 미국으로 입국하는 나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는 멕시칸들이 계속 지나다녀서 더 알딸딸해지는 느낌이었다.


미국을 벗어날 때는 쉬웠어도 다시 들어가는건 아무래도 더 까다롭지 않을까 싶어서 조금 긴장을 했지만, 별일 없이 검색원과 농담을 주고 받으며 다시 미국 땅을 밟았다. 오묘한 마음이 들었다. 이 날은 일요일이라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많은 멕시코인들이 티후아나에서 매일 아침 그리고 퇴근 후 국경선을 넘나들며 미국에서 일을 하고 돌아올 것이다. 모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신분을 넘나드는 사람들에게 이 국경선은 아무 의미도 아니겠지. 그냥 출근길을 느리게하는 톨게이트 정도로 느끼려나.

다시 미국. San Ysidro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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