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천대 주변, 땀 흘리며 먹었던 꼬치식 훠궈
상해, 베이징 다음으로 중국에서 GDP가 세 번째로 높은 도시가 심천(深圳)이라고 한다. 최근 빠르게 발전된 도시라 유적지나 관광지라 할만한 것이 많은 곳은 아니지만 나는 중국의 실리콘밸리, 평균 나이가 30세 남짓이라는 젊은 이 도시가 궁금했기 때문에 하나하나 다 신기하고 재밌었다.
택시를 타면 뒷자리까지 안전벨트를 매라고 안내 방송이 나오고, 시도 때도 없이 돌아다니는 배달 오토바이들, 지문으로 인식하고 폰 안의 스마트키로 여닫을 수 있는 도어락, 이미 시작된 cashless, cardless 문화 등등
여러 테크 기업들이 모여있는 High Tech Park(高新园) 역 근처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묵으면서 심천 라이프를 경험했다. 영화를 보고, ofo 자전거를 타고 출근길을 따라 가보기도, 심천대학 주변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이 날은 심천대학교 주변까지 걸어서 구경하고 그 근처 맛집을 찾아가 보기로 했었다. 심천대에 다 왔을 무렵 시간이 6시쯤 되었던가, 심대(深大) 역 근처에서 무시무시한 퇴근길 부대를 목격했다.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G는 퇴근 시간이 되면 지하철역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들어간다며 고개를 젓곤 했는데, 이날부로 그 불만은 입밖에 꺼내지 않기로 했다. 퇴근길 인파가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이 날 심천은 대략 최고기온 30도 정도로 한국의 37도를 넘어서는 이번 폭염에 비하면 시원한(?) 날씨였지만, 그래도 특유의 습함때문에 걸어다니다 보니 금세 시원한 곳을 찾게 되었다. 심천대 구경은 짧게 마치고, 중국 맛집 앱인 디엔핑(点评)을 꺼내 들었다. 걸으면 20분 정도에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이미 좀 지친 데다가 습한 날씨를 고려하면 최대 도보 가능 시간이 5분 정도였다. 바로 택시를 잡았다.
디엔핑 앱에서 내가 찾은 곳은 老板凳砂锅串串(http://www.dianping.com/shop/91861666)이라는 꼬치식 훠궈, 촨촨샹(串串香)을 파는 곳이었다.
식당 이름을 직역해보니 '오래된 나무 걸상 뚝배기 꼬치'라는 뜻이다. 정말 나무로 된 책상과 등받이 없는 의자에서 벌써 많은 사람들이 먹고 있었다.
사실 너무 습하고 더워서 몇 없는 실내 자리에 앉고 싶었으나 이미 만석이라 자리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우리가 자리를 못 잡고 서성이고 있으니, 인상 좋은 사장님이 이쪽으로 와서는 중국어로 뭐라 뭐라 웃으며 말하셨다. 길게 말하셨으나 알아들은 말은 딱 한마디.
"等一下, 很快 很快"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이에요 금방
식당 마당 뒷 쪽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삼분 남짓 기다리니 정말 금방 자리를 만들어 주셨다.
우리가 먹으러 간 촨촨샹(串串香)은 훠궈의 꼬치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라의 고향, 쓰촨의 낙산이라는 도시에서 만들어졌다는데, 훠궈가 갖춰진 식당에서 먹는 음식이라면 촨촨샹은 우리네 분식이나 포장마차에서 먹는 음식처럼 좀 더 소박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한다.
사장님만큼이나 인상 좋은 종업원이 와서는 무슨 맛의 탕을 먹을지 물어봤다. 잘 못하는 중국어로 맑은 탕과 매운 탕인 홍탕(마라탕)을 주문했다. 반반(半半)!이라고 외치며 중국어 주문 미션이 끝났을 거라 생각하고 있는데, 얼마나 맵게 해줄지를 물어본다. 옵션을 읊어주셨는데 다른 것은 못 알아 들었고, 무언가와 中辣(쭁라-, 중간 맵기)가 있다고 하기에, 이게 덜 매운 거겠지 하고 중간 맵기를 달라고 부탁했다.
산 넘어 산이라고 탕을 주문하고 나니 담가 먹을 꼬치를 가져와야 하는데 어떤 것이 얼마인지 알 수가 없었다. 쭈뼛쭈뼛하고 있으니 아까 그 친절한 사장님이 와서 큰 철판 쟁반을 가리키면서 아마도 이 곳에 꼬치를 담아 자리로 가져가면 된다는 식의 설명을 해주시기는 했다. 하지만 꼬치 별로 가격표가 딱히 붙어있지가 않았다. 위쪽에 뭐라고 중국어로 쓰여있고 8元이니, 25元이니 화폐단위가 쓰여있었으나 무엇이 그 가격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꼬치에 꽂혀있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돼지뇌로 보이는 것도 있었고..)
그래도 그간 훠궈를 먹은 경험으로 제법 능숙하게 소스도 만들고, 건두부, 굵은 당면, 각종 고기와 야채, 완자 등을 일단 그런대로 골라 담아왔다.
가져온 꼬치들은 저렇게 식탁 옆에 비치되어있는 캐리어에 층층이 담으면 된다.
야채와 고기, 각종 꼬치들을 담아 끓이기 시작했다.
덥고 습한데 앞에 매운 향이 잔뜩 들어있는 탕을 보글보글 끓으니 화자오향 가득한 연기가 올라왔다.
얼굴은 우리 둘 다 땀과 기름으로 반들반들 윤기가 나고 있었고, 그나마 내게는 간간히 선풍기 바람이 불어왔다. 시원한 맥주가 절실했다.
중국 사람들은 맥주를 상온에 보관하고 먹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주문할 때 삥더!(冰的, 차갑게)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랬더니 맥주를 갖다 주실 때 충분히 시원한지 만져보라고 확인까지 시켜준다.
설상가상으로 중간 맵기로 시켰던 홍탕은 한국에서 먹었던 웬만한 맵기를 초월했다. 결국 앉은자리에서 시원한 칭다오 세병을 클리어했다.
한참 먹고 있으니 이 정신없는 분위기에 완전히 흡수된 기분이 들었다. 그 사이에 아까 우리가 대기할 때 앉아있던 플라스틱 의자 쪽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가 나는데 한참 걸릴 것만 같은데도, 새로운 손님들이 올 때마다 사장님은 호탕하게 자리가 금방 난다며, "헌콰이 헌콰이!"를 연신 외치셨다.
벌써 다른 테이블의 꼬치 통은 다 먹은 꼬치 무더기로 가득했다. 무더기라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테이블 테이블마다 정말 많은 양의 꼬치를 해치우고 있었다. 다 먹으면 종업원이 다 먹은 꼬치 수를 세어서 계산을 마무리한다.
맛은 사실 훠궈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훠궈는 디쉬 별로 시켜야 하는 반면에 이건 작은 양이어도 한개 한개씩 고르는 재미, 그리고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날의 새로운 발견은 요우티아오(油条)다. 기름에 튀긴 중국식 빵으로 주로 아침에 콩물과 같이 먹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훠궈에도 이걸 왜 넣어 먹는지 처음에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홍탕에 살짝 적셔 먹어봤더니 과연 고개가 끄덕여졌다. 바삭바삭한 식감은 살아 있으면서도 홍탕의 매콤한 고추기름을 머금은 조합이 참 잘 어울렸다.
우리는 먹는 것에 집중을 다했다. 꼬치를 넣고 야채를 넣고, 고기를 데치고, 금세 금세 비어 가는 서로의 맥주잔을 열심히 따라줬다. 중간중간 '뭐가 맛있다, 먹어봐'라고 했던 말 말고는 다른 대화가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얼추 배가 다 차서 식사를 마무리하려고 보니 대체 얼마 어치를 먹은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G는 300위안쯤을, 나는 200위안쯤을 예상했고 가깝게 맞춘 사람이 승자라고 내기를 했다. 이긴 사람이 뭔가 받기로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답은 168元, 2만 7천원 정도였다. 계산으로 현금을 내미니 역시 현금 계산이 평소 잘 없는 일인 듯 황급히 잔돈을 찾다가 결국 옆 가게에 가서 빌려온 듯하다. 그나마 동전이 없다면서 8위안을 깎아 주셨다.
현금을 빌리러 가 계신 동안 계산서를 꼼꼼히 읽어보니 우리가 시킨 맵기보다 덜 매운 홍탕인 微辣(웨이라)가 있었다. 아까 종업원은 아예 제일 매운맛은 묻지도 않고, 덜 맵게 줄지, 중간 맵기로 줄지를 물어봤던 것이다.
또, 꼬치 1개의 가격은 1위안(대략 160원) 정도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저렴했다. 맛있게 먹고 작지만 8위안의 할인까지 받아 기분이 좋았던 나는 나가는 길에 다른 테이블에 서있던 사장님께 부러 찾아가서 맛있었다고 인사를 했다. 사장님은 특유의 인상 좋은 웃음을 지으며 전부는 알아들을 수 없었던 중국어로 뭐라 뭐라 하셨지만 여튼간에 유쾌한 인사였다.
덥고 습한 날 야외에서 맵고 뜨거운 음식을 끓이며 먹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강렬한 이열치열의 경험이었다. 왠지 스트레스가 풀리고 각성효과가 대단한 것 같다. 그리고 많이 먹어도 살이 찔 것 같지 않다. 너무 매웠던 탓에 다음 날 조금 고생을 했지만 그 맵기 때문에 맛이 더 선명하게 기억난다.
에어컨 빵빵한 버스를 타니 그제야 느껴지는 쾌적함에 기분이 좋아졌지만, 왜인지 식당에서 실내가 아닌 바깥쪽에 앉은 것이 후회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