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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ys Aug 11. 2018

서른, 8월이 되다.

나를 위한 다짐


친구 생일에 케이크를 할 때면 숫자 초를 함께 사곤 한다.

생일은 매년 돌아오고 축하를 하는데 수년 전의 사진을 보면 언제인지 한참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스물셋, 스물다섯, 스물일곱이 꽂혀있는 케이크를 들고 있는 과거의 사진들을 보다 보면 시리즈물을 수집한 듯, 왠지 모르게 뿌듯한 기분도 든다. 그런데 유독 서른이 되자 친구들이 유독 숫자 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올해 3월 친한 친구의 생일에서 처음 30이라는 숫자 초를 살 때는 두려운 기분마저 들었지만 지난주에 친구 생일 파티를 위해 초를 살 때엔 별 감흥 없이 30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누구든 인생에 어느 시점에 가면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특히 나이의 앞자리가 바뀐다거나, 가까운 이의 병과 죽음, 결혼이나 출산을 경험할 때면 그게 열병처럼 자신을 사로잡을 때가 있다. 내 경우에는 그게 작년과 올해였다.


그걸 겪고 나니 좋은 점은 인생에서 뭐가 중요하고 내가 취해야 할 태도가 어떤 건지 가치관이 뚜렷해졌다는 점이다. 나쁜 점은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오히려 한없이 약해졌다는 점이다.


어쨌든 나는 이제서야 서른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8월이 되어서야 말이다.



 

글을 쓰는 것, 책을 읽는 것, 좋은 친구와 대화를 하는 것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느낀 점은 위 세 가지를 의식적으로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것들의 공통점은 나도 모르는 내 안의 나에게 대화를 건다는 것이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기계적으로 대화를 하게 된다.


적절한 맞장구를 치고, 있었던 비슷한 일들에 대해서, 주제에 관련해 알고 있는/들었던 것들에 대해서 기계적으로 떠든다. 경청보다는 "근데, 나는/나 같으면~"으로 맞받는 일이 잦아진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제나 질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상대방의 생각 때문에 나의 생각이 변화하는 일들도 거의 없다.


그래도 대화는 이어진다. 유머가 있는 사람이 한두 명 섞여있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할 때도 있고 그런대로 사람들과 유대관계도 만들어진다.


그런데 만약 내 마음속 나와 지금 말하고 있는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한다면,

언제 나 자신과 대화를 한단 말인가? 

사람들과의 기계적인 대화는 좀처럼 듣는 법이 없다. 그다지 사고하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남의 말을 듣고 있다 하더라도, 속으로는 계속 남의 말을 판단하고 이미 정해져있는 나의 줏대에 따라 말하고 있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비로소 마음속 내가 말하고 나는 듣기 시작한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의 대화도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친구는 많진 않지만 이들이 공유하는 그들의 경험과 던지는 질문은 내 입에서 기계적으로 응답하지 않고 마음속 깊이 생각하게 된다.


하루는 바쁘게 돌아가고 틈틈이 나는 자투리 시간에는 넷플릭스나 시답잖은 동영상을 보기 일쑤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었던 시간도 많았지만 우습게도 나는 마음속 내게 말을 걸 용기가 없었다. 내 내면의 이야기가 어둡게 흘러갈까 봐 무서웠고 슬픔이 아물지 않았는데 그게 터져버릴까 봐 그냥 입막음을 해버린 것이다. 왜 그렇게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기도 어려웠는지 이제 좀 이해가 간다.




(모든 어른이 그렇지는 않지만) 대화하기 싫은 유형의 어른이 있다. 그들과 대화를 하면 일단 말하기 점유율을 90% 정도 빼앗긴다. 조언을 구한 것도 아닌데 내 경험을 한마디 공유하면 그들의 입속에서 수많은 조언과 주장, 경험담이 쏟아져 나온다. 대화의 주인공은 어느새 말을 꺼냈던 내가 아닌 그들이 되고 내 입에서도 기계적인 맞장구가 나오기 시작한다.


나도 이런 종류의 사람이 아닐까 이따금씩 두렵다. 누구와 대화를 하든 그 사람이 나와 같지 않음을 인지하고, 사고하게 만드는 질문을 던지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다짐한다. 나를 돋보이는 게 대화의 목적이 아님을 항상 기억하자. 나잇값 하는 서른이, 좋은 어른이 되자. 그리고 나를 위해 글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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