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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ys Oct 19. 2018

그 해에 같이 꼬치 먹던 곳

옌타이(연태)에서 꼬치를 먹으며


친구 B는 우울증에 걸렸었다. 남들이 좋다는, 연봉도 괜찮고 업무도 널널한 준 공기업이었던 회사를 그만두고서야 그 우울증이 나아졌다.


어느 술자리에서든 가장 유쾌하게 놀고 쾌활했던 그녀는 숨막히는 회사와 재미 없는 회사 사람들 속에서 몇년을 버티자 점점 빛을 잃어갔다. 매일 매일을 똑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내일이 기대되지 않았다. 이렇게 살다보면 똑같이 살다가 뻔하게 끝나겠지 라는 생각에 인생의 모든 희망이 없어져갔다. 기형도의 시에서 '희망을 포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하리'라고 했던가. 희망을 잃어버리자 인생의 모든 것이 의미 없어 보였다.


결국 회사를 그만둔 그녀는 약사 시험을 보겠다는 새로운 도전을 한다. 문과생인 B에게는 어려운 도전이겠지만 그래도 회사다니는 것 보다는 낫다고 했다. 좋아하는 모든 것을 끊고 공부에만 전념했다. 참고 참아 1년 3개월 고행의 시간이 지났고, 시험을 치뤄낸 그녀를 격려하기 위해 우리 넷은 가까운 중국 연태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연태 여행 마지막 날 밤 10시가 되어 2차로 찾아간 꼬치집은 식당 이름이 참 길었다.


那些年一起吃串的地方
그 해 우리가 같이 꼬치 먹던 곳


식당 이름을 곱씹고나니 이런생각이 들었다.
2018년의 10월 서른의 우리, 이 시간이 지나고나면 연태에서의 기억이 또 내 머릿속에 자주 꺼내볼 앨범이 되어있겠지?

그러자 문득 이 여행에 B가 빠져있단 생각이 났다. 지금 B의 마음은 얼마나 사막같을까. 자신있게 도전했던 시험의 결과는 잔인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하고싶은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내몰린 취업 시장에서 자소설을 썼던 때보다 더 참담한 마음으로 취업 준비를 하고있을 것이다. 


B는 비자까지 받았건만 마지막 순간에 취업 준비때문에 여행을 가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2년 전에도 한 명이 빠져서 세 명이서만 칭다오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땐 C가 한국에 남았다. 그녀도 비슷한 이유로 마음의 병을 얻고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었다.


결국 다시 비슷한 회사에 취업하기는 했지만 예전으로 돌아간 건 아니다. 아끼던 모자를 갓 잃어버리고 꼬치집에 앉아있는 C는 생기있어 보인다.
여전히 회사는 스트레스지만 설레는 일들로 일상을 꾸밀줄 알게됐다. 그리고 진정 바라는 일을 하기위해 차곡차곡 꿈을 꾸고 희망을 한다.



서른 즈음의 우리. 매년 돌아가며 아프고 방황하는 것 같지만  언젠가 우리 넷 모두가 티 없이 즐겁기만 하고 희망 가득했던 스물 셋 우도의 밤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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