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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ys Oct 22. 2018

당연한 것에 대한 깨달음

우리 집1

남아공은 치안이든 정치 상황이든 불편한 게 참 많다. 하지만 날씨만큼은 정말 부러웠다. 여름에 덥기야 하지만 그다지 습하지 않아 쾌적하고, 겨울에도 그다지 춥지 않다. 언제고 맑고 파란 하늘도 있다.
현지 마케팅 담당자의 차를 타고 거래처 미팅을 가던 날, 하늘이 유독 파랗고 쾌청했다.


"남아공 날씨는 정말 알아줘야 해. 너도 한국에 많이 와봐서 알잖아. 겨울엔 고통스럽게 춥고, 여름엔 고통스럽게 더워."
"그건 맞아. 하지만 한국의 그런 날씨가 좋은 점도 있어."
"뭔데?

"난 언젠가 과거의 일을 생각할 때, 그게 언제쯤이었는지 한참을 생각하게 돼.
상황과 장면은 기억나는데 그게 언제쯤이었지, 어느 계절이었지 퍼뜩 떠오르지가 않아. 항상 비슷한 옷차림과 비슷한 날씨였으니까.
하지만 한국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면 눈이 쌓여있었다던가 모두가 반팔을 입고 있었다던가, 항상 장면이 때를 알려주잖아."
 


그때 그가 했던 말이 내게는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내가 당연스럽게 생각했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아니기도 하구나.
무언가를 회상할 때, 입고 있던 옷차림이, 그날의 날씨가 내게 말해주는 정보가 크다는 걸 말이다. 
하기사 이렇게 가을이 시작될 때 저녁 나절 집에 걸어갈때면 불현듯 스치는 찬 공기가 과거 이맘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남아공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니 우리 집도 그렇다.
나는 한 번도 집에 대해서 특별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태어나서 이사를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유년 시절, 학창 시절, 그리고 현재. 집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면 항상 같은 이 곳이다. 
이사를 자주 다닌 누군가는 삶의 장면 중에서 집을 기점으로 자신의 기억을 구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집을 사랑하던가?
공기가 당연하기 때문에 소중한 줄 모르듯 우리 집에 대해 좋은지 싫은지조차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은 있다.
만약 우리가 이사를 간다면, 이 집에 다른 사람이 살게 될까? 그러면 내 기분이 어떨지 말이다.
하지만 이 집에 다른 사람이 산다는 건 도무지 상상되지가 않았다.

이 집은 아빠가 우리 가족이 살 곳으로 처음부터 지었고, 처음부터 우리가 살았다.

말하자면 이 집은 우리 가족의 나이같다.
이상한 생각이지만 우리 가족이 만약 이 집을 떠난다면, 그게 이 집의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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