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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ys Jun 18. 2020

Flower conditioning

20.06.18

최근의 나는 시들어가는 꽃 같았다.

물은 갈지 않아 부유물이 떠다녔고, 줄기는 퉁퉁 불었다.

꽃잎은 색채를 잃은 지 오래고 겉 꽃잎은 바싹 말랐으며, 속 꽃잎은 한껏 쭈글쭈글해졌다.

감정은 메말랐고, 지쳐있었고, 의무를 다하기에 바빴다. 

영화관에 간 지 일 년이 다 되었고, 눈물을 흘린지도 오래되었다.


그러다 며칠 전부터 매일매일 울 일이 생겼다.

처음엔 영화 Talk Pray Love를 보다가 두 시간 내내 펑펑 울었다. 영화 내용이야 옛날에 여러 번 본 것인데, 심지어 영화 내용과는 상관도 없이 그냥 두 시간 내내 눈물이 흘렀다. 왜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더 시들어 회생불가가 되기 전에 뭐든 내 감정을 꺼내야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관계에 혼자 앓던 생각을 용기 내어 꺼냈다.

잘못을 따지고자 함도 아니었고, 해결 방법을 아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말을 꺼내놓고 보니,

소나무에게 왜 너는 넓은 잎을 가지지 않아 내 비를 막아주지 않느냐 따지는 것과 같았다.

소나무에게는 억울한 말인 것 같았다. 심지어 그는 내게 기대하는 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 생각을 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그래서 비난의 대상을 내게로 돌리고 싶어 졌다.

하지만 그건 또 나 자신에게 너무 잔인한 일이었다. 

이대로 시들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말한 거면서.


침잠했던 이 며칠 간의 내 상태는 내일이면 정말 달라질 거라고 기대해 본다. 문제를 회피하겠다는 건 아니고. 

지금은 너무 오랫동안 날 돌보지 않아서 찾아온 슬럼프 때문에 어려워 보이는 걸 거야.  

불어 터진 줄기 밑동 자르고, 시든 꽃잎 떼어내고 다시 깨끗한 물로 갈아 화병에 담으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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