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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ys Nov 28. 2020

꿈으로의 도피

생각의 반영


헤어지고 난 후로 잠이 많이 늘었어.

여러 가지 일로 복잡했고, 스트레스가 많았고,

혼자 고민해야 할게 산더미 같이 쌓아있었지만 도저히 그럴 마음이 들지가 않았고 집중할 자신이 없었어.

자꾸만 이별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됐고, 그걸 마주 보는 것과 눈물을 흘리는 건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었어.

그래서 잠을 청하곤 했어.


그럴 때면 어김없이 꿈을 꿨어.

내 생각을 피해 잠을 잤지만 잠을 자면서도 뇌가 작동을 하니까 꿈은 피할 수가 없나 봐.

깨어있는 상태에서 생각을 하면 나름 이성이 작용하지만, 꿈에서 반영한 내 마음은 정말 날 것이었어.

날 것의 내 마음이 다 반영되어 있었어.




처음에는 우리 둘이 함께 있었던 평범하고 행복했던 일상이 꿈에 나왔어.

이 때는 현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아. 그리워했거나.


그다음에는 부르짖는 내가 나왔어. 보고 싶다고 중얼거리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내가 나왔어.

그때는 너무 그게 하고 싶었기 때문에 꿈에서라도 한 것 같아. 이런 꿈을 꾸고 잠에서 깼을 때는, 나 스스로가 안쓰러워서 막 눈물이 났어.


그다음에는 나를 그리워하는 그가 나왔어. 그가 직접 꿈에 나온 건 아니고, 어떻게든 그가 나를 그리워하고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내가 나왔어. 이런 꿈을 꾸고 나면 나 스스로가 참 우스웠어. 나를 그리워하는지가 왜 그렇게 궁금한 걸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다고. 깨어 있을 때는 유치하다고 생각했지만 꿈에서라도 이런 걸로 위안을 찾는 걸 알게 되면 씁쓸한 웃음이 나왔어.



그리고 오늘 꿈은 정말 특이했어.

오랜 잠을 자서 그런지 모든 스토리가 디테일했고 영화 같이 서사가 있었어. 요약은 즉슨, 사실은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떠났고, 연애 기간 동안 내가 오래 보고 믿었던 그의 모습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었어. 그리고 그 사실이 우리 둘 사이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다 밝혀졌고, 원래부터 그의 모습을 알았던 그의 무리들과, 나를 위로하는 무리들이 갈라졌어. 마음이 찢어져서 혼자 도망쳐서 걷는 나의 모습까지 꿈에 나왔어.


실제로 가슴 한 구석이 아린듯한 느낌을 받으며 잠에서 깼어. 한숨이 났어. 이제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싶어 진 걸까. 사랑하지 않아서 떠났다고 하면 내 마음이 좀 더 편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아니면 두려워하는 상황을 꿈으로 꾼 걸까? 그럴 수도 있겠.

바보야, 어차피 받아들이기로 한 마당에 그게 뭐 대수야. 네가 통제할 수 없는 건 놓아주라고.





상담을 받으며 그나마 도움이 되었던 몇 가지 얘기 중 하나는 내가 나 자신을 잘 알아주라고 하는 것이었어.

회피하는 마음이 들더라도, 아 자꾸 회피하는 마음이 드는구나.

그와 함께 뭐도 하고 싶었고, 뭐도 해주고 싶었는데라는 생각이 들면, 아 내가 그립고 미련이 드는구나.

치졸하고 유치한 생각이 들더라도 괜찮고,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거야, 내가 그렇구나 하고 알아봐 주라고.

알아봐 주지 않으면 병이 되니까 스스로 다 뱉고 소진할 때까지 잘 알아봐 주면,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덤덤해질 거라고 하더라. 진짠지는 아직 모르지만.



꿈은 진짜 재밌는 것 같아. 내가 모르거나 외면하는 내 마음이 거기선 나오는 것 같아.

복잡하게 꾸민 내 생각 말고, 날 것의 내 마음, 그게 다 나와. 다행이야 잠이 안오지는 않아서.



20.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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