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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ys Nov 12. 2020

받아들이기 힘들 때

더 마주해야 된대 (20.11.12)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꽤 오랫동안 세상의 이치를 받아들이기 힘들더라고.

어떻게 저렇게 모든 사람들이 멀쩡한 얼굴로 살아갈 수가 있지?

인생이 이렇게 비참하고 허무한데 사소한 것들로 짜증 나고 퉁명스러운 얼굴도, 깔깔거리며 웃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어. 다 아는데도 저렇게 살아간다고?


사람의 만남과 이별은 내 마음처럼 되지가 않아서 언젠가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 이걸 받아들일 수가 있는 거야? 다들 어떻게 감당하는 거야?

자꾸 상황을 회피하면 결국 마음의 병이 오래간다는 걸 알아서, 이번엔 아무리 힘들어도 마주하고 싶었어.

계속해서 일기를 썼고, 힘든 통화 내용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엉엉 울었어.


그날도 통화 내용을 들으며 이미 밤이 된 한강공원에서 뛰고 있었어. 울컥했다가 괜찮았다가 눈물범벅이 됐다가 마르기를 반복하고 그것마저 지칠 때쯤에 반대편에서 내쪽 방향으로 달리기를 하는 머리 희끗한 중년 이상의 아저씨가 보이더라고. 순간적으로 아저씨의 팔을 붙들고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어. 아저씨, 정말 괜찮은 거 맞냐고 말이야. 이렇게 힘든 날들이 있지 않으셨냐고. 어떻게 그냥 짊어지고 멀쩡히 살아가냐고 말이야.


이게 벌써 한 달 전의 얘기야.


오늘 리더십 자질 관련 척도 평가를 하는데, 적응력 지수를 평가하는 문항에 이런 내용이 나오더라고.


- understand how I feel

- know when I am happy or not

- have a good understanding of my own emotions


내 감정을 잘 알고 이해하는 게 적응력의 척도인가 봐. 그래야 어려운 상황을 잘 이겨낼 수도 있다고 보는 건가?

하긴 그래. 그래서 내가 힘들어도 회피 안 하려고 노력했던 거였어. 나 잘 헤아리고 있었나?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데, 순간적인 반응으로 내 속 자아가 크게 소리치는 게 느껴졌어.

괜찮을 리가 없잖아! 너무 보고 싶다고!

앙 다문 입꼬리에 힘이 들어가고 어린 애 같은 울음이 터져 나왔어.

아. 그새 나도 모르게 아픈 마음을 또 모르는 척하고 있었나 봐.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벌어진 상황을 당당히 마주하고 나를 지나가는 모든 감정을 받아들인다는 것 말이야. 무뎌질 때까지 계속 이렇게 힘들어해야 하는 거야? 마취 안하고 상처를 마구 만지는 느낌인 걸.

그건 얼마나 강하고 단단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걸까?

난 어떻게 될까 결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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