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문에 약 한 달 남짓 외식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돈이 조금 부담이긴 해도 살짝 기대가 되었다.
C를 알게 된 건 고작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우연히 첫 미팅 날 우리 둘만 제시간에 오는 바람에 둘이서 얘기할 기회가 생겼는데, 그가 내 에코백에 미세스 캐롤라인 핀을 달려 있는 것을 보고는 자연스럽게 Bojack horseman을 주제로 대화를 하게 됐다.
그는 중간쯤까지 보다가 말았다고 했는데, 그 주말에 다시 보기 시작해서 시즌을 완료했고(그건 추천한 사람으로서 기분이 좋은 일이다!), 대화가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나도 최근에 그가 추천한 넷플릭스 시리즈를 새로 시작했다.
날 좋게 봤는지, 아니면 워낙 소셜라이징에 적극적인 친군지, 그 이후로 저녁에 몇 번 초대해줘서 요즘 자주 꽤 대화를 하게 되었다.
사람의 말투나 제스처로 이런 판단을 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왠지 모를 느낌으로 그가 게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이런 쪽의 전문가인 JJ는 'I understand your point, and he looks highly likely to be, but he is NOT'라고 단언했다.
MERCI MARCEL
아무튼 브런치와 디저트를 좋아한다는 그와 오늘은 같이 브런치를 하기로 했는데, 그가 만든 구글 맵 브런치 리스트 중에 하나를 골라 내가 예약했다. 나도 구글 맵에 핀이 엄청 많지만, 이렇게 카테고리 화해서 만들지는 못했는데-(프로필을 보니까, 여기 말고 그가 머물렀던 각 국에 바/식당/브런치 등등 리스트가 정리되어 있었다), 하고는 싶지만 너무 귀찮은 일이다.
그는 세심하고 솔직했다. 애국자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NYT에서 만든 Jan 6th Capitol Riot관련 비디오를 보고 한참을 슬퍼하는 인류애가 넘치는 사람이다. 그런데 대화를 하면서 보니 나는 자꾸만 내가 알던 누군가와 C를 비교하고 있었다. 이건 누구랑 똑같네, 저건 누구랑 똑같네 - 하면서.
왜 나는 자꾸 내가 알던 다른 사람의 모습을 투영시켜서 새로운 사람을 이해하는 데 사용하려는 걸까? 과거 경험을 이용해 쉽게 적응하려는 인간의 습성이 사람을 만나는 데도 적용되다니. 정말 싫다!
Sago House
저녁은 내가 주최한 바 호핑이다. MN은 늘 남과 자기를 비교하고, 열등감과 두려움을 표현하는 친구다. 근데 그 정도가 지나치지 않고, 누구나 조금은 갖고 있지만 초라해 보일까 봐 굳이 말하지 않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정도다. 게다가 가진 것 하나 없어도 bullshitting 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만 모아 놓은 집단에서 그녀는 오히려 내 눈에 띄었다. Speakeasy Bar 컨셉인 첫 번째 바는, 아시아 50위에 든 것 치고는 꽤 험블 한 바였다.
페루비안 피스코를 베이스로 한 상큼한 칵테일- 내가 좋아하는 바 자리에 앉아서 기분도 좋았고, 바텐더도 친절했고, 커스터마이징 한 칵테일도 한잔 만들어줬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만족스러웠다.
그치만 분위기가 정말 이상했다. 바에 배경음악이 없다니- 이 분위기에는 응당 노래가 나와야 하는데.
왜 음악을 틀지 않느냐는 질문에, 노래를 틀면 대화를 크게 해서 코로나 위험이 높아지기에 음악을 틀지 말라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있었다면서 어깨를 으쓱이는 직원! 정말로 신기한 나라다.
마침 미국 Independence Day라서 몇몇 미국 국기를 두르고 있는 남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취해서 부르는 국가(?)를 비지엠으로 갈음했다.
MO BAR
두 번째 바는 만다린 오리엔탈에 위치한 바였다. 첫 번째 바에 비하면 칵테일 가격이 세배였지만, 확실히 호텔 분위기에 뷰까지 있어서 드레스업하고 간 보람이 느껴졌다. 딸기 디저트도 시켜서 먹었는데, 요즘 왜 이렇게 디저트랑 술이랑 먹는 게 좋을까? 예전엔 술에는 무조건 세이버리 한 안주였는데, 요즘은 디저트에 술 먹는 거도 너무 좋다. 몸에 좋은 습관은 아닌데 그래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새로운 취향 발견이니 좋은 일이겠지?
(여기서 그쳤어야 됐는데 왜인지 모자른 맘에 집에와 앞마당에서 맥주 한캔까지 마셔버렸네, 아쉬울 때 멈추자고 다시 또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