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샌프란 도착한 날
나름 즐거웠던 비행을 마치고 입국수속을 하기 위해 줄을 섰다. 해외에 갈 때마다 항상 겪는 일이지만 항상 이 절차는 너무도 지루하고 피곤하다. 나라가 나라인지라 까칠한 입국심사 질문을 하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그럭저럭 훈훈했다. 물론 검색원의 태도와 질문지는 상대마다 상이한것 같긴했다.
나: 네, 여행이에요, 한국말 잘하시네요?
검색원: 네, 최선을 다하는거죠. 크리스마스 이브에 떠나시는군요, 아쉽습니다. (화기애애)
G: 여행으로 왔습니다.
검색원: 직업이 뭐죠? SW엔지니어인가요? 돈은 얼마들고 왔죠? (엄격)
공항에서 호텔로는 어떻게 이동해야 할까?
전철같은걸 타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우리 호텔이 있는 Fishermans Wharf에는 지하철역이 없다는 안내원의 조언에 따라서 전철 대신 Shared Ride Van이라는 것을 탔다. 샌프란 시내로 들어가는 여러 사람들과 합승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너무 친절해서 로봇같기도 한 Shuttle Man의 도움을 받아서 무사히 쉐비밴에 탑승!
한시간 가량이 걸려 호텔에 도착했다. 오다보니 샌프란 시내는 오르락 내리락 언덕길이 많고, 예쁜 상점들과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더해져 있었다.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저녁을 먹기 위해 Pier 39로 향했다.
한국으로 치면 항구에 있는 유원지 느낌인데, 고급 놀이동산 스타일의 아웃테리어로 잘도 해놨다.
저녁을 먹은 곳은 Fog Harbor Fish House라는 해산물 주종 식당이었다. Dungeness Crab(털게)가 들어간 Shellfish Platter와 Clam Chowder Soup를 주문했다. (+캘리포니아 생맥주도 추가!)
따뜻한 빵과 짭조름한 해산물, 그리고 왜 샌프란의 소울푸드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절로 되는 깊은 맛의 크램챠우더 수프를 먹으니 한결 만족스러워졌다.
우리는 팁은 어떻게 내야하는지, 팁 문화는 왜 생겼을까, 미국의 Very Buttery한 발음, 친절한 서비스 등에 대해서 얘기하며 유쾌한 식사를 마쳤다.
다 합쳐서 대략 $100 정도의 식사를 했는데 (미국여행 통틀어 이 식사가 제일 비싼 식사였다.) 이 날 밤의 식사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여행 도착 첫날 밤. 앞으로 몇일간 어떤 일이 펼쳐질까? 하는 설렘과 함께, 지나다니는 미국인 한명 한명이 다 신기하고 얘깃거리가 됐던 밤이다.
레스토랑을 나와보니 밤하늘을 울리는 엉!엉!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따라 걸으니 바다 사자들이 놀고 있었다. 늦은 시간에도 서로 장난치며 노는 바다사자들. 특이한 울음소리를 듣다보면 마치 중견 개가 짖는 소리와 비슷하기도 하다.
산책을 마치고 오는길에는 Safeway 마트에 들렸다. 색깔이 특이해서 사본 Red Bananas와 블루베리, 맥주, 내일 먹을 요거트 등을 샀다.
캐셔는 우리에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고, 여권을 확인한 후 "North Korea?"와 같은 시덥잖은 농담을 던졌다. 내 뒤 계산줄에 서 있던 아저씨는 자기 클럽카드를 빌려줄 심산으로 카드가 있는지 물었고, 나는 지난 하와이 여행 때 만든 클럽카드를 자랑스럽게 흔들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는 미스트처럼 가벼운 비가 내렸다. G는 이정도의 비는 맞으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미국 사람들은 걸핏하면 'Awesome!' 'Absolutely!' 라고 하는 것 같아.
리액션 DNA가 내재되어있는 것 같지?
응. 그리고 말도 많은 것 같아. 걸핏하면 수다를 떨잖아. 방금 계산원도 우리한테 이 젤리 맛있냐는 둥 말야.
그러게. 어쩌다가 이 사람들은 그렇게 됐을까?
몇시간의 미국 인상에 대해서 수다를 떨면서 돌아온 우리는 방에 돌아오자마자 기대에 부풀어 레드바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껍질부터 잘 까지지 않았다. 억지로 부러뜨려 한입 맛을 봤으나 혀에 송진 바른 듯, 매우 떫은 안익은 고구마 맛이 났다.
아마도 구워먹는용 바나나였을까? 작은거로 살껄...
나중에 알고보니 레드바나나는 보통 바나나보다 칼륨과 비타민C가 풍부해서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있다고 한다. 우리가 먹었던 것은 안익은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 보통 바나나만큼 부드럽고, 크리미한데다 라즈베리 맛도 난다고 한다!
마트에서 사온 Rye of the lager라는 맥주는 Pale Lager라는데 맛이 아주 맘에 들었다. 고소하면서 깔끔했다.
무엇보다 지난번 직접 수제맥주 만들기 체험을 했을때, 손수 만들었던 맥주와 흡사 맛이 비슷해서 좋았다.
우리집 맛 김치를 식당에서 발견했을 때 느끼는 듯한 반가움의 맛이었다.
내일은 나파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