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호의는 둘리로 작용했다.
어머니가 도시락을 보자기에 싸주시네요
엄마는 늘 도시락을 그냥 주지 않는다. 보자기에 꼭꼭 싸서 주시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심미적인 것인지, 안정성(흔들리지 않는 편안함)때문인지. 그렇지만 이 모양이 예뻐서 간혹 회사 동료들이 보자기에 대해 언급을 한다. 일본 도시락 같아요.
이 중 파란색 보자기는 사연이 있는 보자기이다. 엄마는 때때로 길거리 잡화점에서 물건 사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느 날 서촌 길거리에서 예쁜 보자기를 팔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지나가던 엄마는 발길을 멈춰 보자기를 구경하였고 옆에 있는 문구에 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동남아 미혼모들이 만든 보자기였던 것이다. 미혼모들이 재봉과 염색을 배워 만들어 한국에 가져와 파는 제품으로 가격은 살짝 있었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 보자기를 산 얘기를 나에게 구구절절해주었다.
"같이 사는 세상이잖아"
엄마는 유독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 발 벗고 나선다. 내가 보기엔 엄마도 어려운 사람 같은데 말이다. 그렇다고 거창한 봉사를 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인연에 최선을 다할 뿐이고, 그중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은 기꺼이 도와주면서 사셨다.
그런데 계속된 호의는 정말 둘리가 되기 쉬운 걸까. 최근 들어서 엄마의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큰 회의감에 빠진 듯하다. 몇십 년을 알고 지낸 사람들 간의 삐걱거림부터 가깝게는 엄마의 형제들 간의 관계로부터 오는 회의감이 그것이다. 반복되는 호의는 상대방에게 당연한 권리로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이 호의가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기억되는 사소한 것은 아닐지 본인이 받은 호의는 정말 없었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게 사람은 자신이 호의를 베푼 것에만 집중하여 생각하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 엄마는 모두에게 호의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엄마가 서운해하는 모든 것을 딸인 나는 이해할 수 있었고, 참으로 안타까웠다. 나이 50을 넘어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인간관계이구나. 갑자기 앞날이 두려웠다. 지금도 나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단연 '인간관계'이리라.
오늘 넉넉하게 쌌으니까 나눠먹어
하지만 엄마는 굴하지 않고, 가끔 얼굴도 모르는 내 직장 동료들 몫까지 도시락을 싸주신다.
베푸는 것에 익숙해버린 엄마이다.
정답이 없는 삶이라 오늘도 본인 식대로 살아가는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