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느, 나의 수잔느

수정중

by 탤미

수잔느, 나의 수잔느 - 수정





민아는 지금처럼 인기가 많은 애가 아니었다. 적어도 나랑 윤영이 눈엔 그랬다.

다른 애들은 몰라도, 중학교 때부터 쭉 같이 지내온 우리 둘은 민아가 어떤 애인지 알고 있었다. 겉으론 아무 말 안 해도, 윤영이도 알았을 거다. 민아가 요즘 우리랑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처럼 군다는 걸.


고등학교 올라오자 갑자기 ‘얼짱’ 소리를 들으며 남자애들의 관심과 친해지고 싶어하는 여자애들을 보면서 어이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진짜 민아의 모습을 알면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을 텐데. 다들 그럴듯한 겉모습에 속는 거라고 말이다.


사실, 민아는 중3 방학 때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살도 빠지고, 투명 렌즈 끼더니 얼굴이 확 살아났다. 내가 봐도 예뻐졌으니까. 적어도 우리 학교 또래들 중에선 눈에 띄는 외모였다.

근데 문제는, 그 변화를 계기로 민아가 점점 우리랑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우리 셋이 어울리는 게 당연했는데, 이제는 자기가 다른 ‘레벨’에 올라선 것처럼 행동했다. 여러 친구들이랑 두루두루 어울리면서, 우리 둘은 슬그머니 뒤로 밀렸다.


애들은 민아를 완벽한 애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패션센스는 흠잡을 데 없고,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털털하며 무엇보다 얼굴이 꾸민듯 안꾸민 듯 평범한 여고생과는 다른 느낌을 자아내는 미모를 가졌다. 관심받을 자격이 충분한 셀럽 같은 존재, 그래 그렇게 여겨졌다. 그렇지만 어찌된 일인지 나는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과연 내가 아는 민아는 그런 애인가? 아무래도 아니었다.


기억 속의 민아는, 불평불만 덩어리였다.

선생님 욕은 기본이었고, 친구 옷차림 보며 귓속말로 험담하고, 손 안 씻는 애 보면 대놓고 ‘더럽다’며 깔보고.

틈만 나면 남 흉보는 게 하루 일과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야, 남 욕 좀 그만 해”라는 소리 들을 만큼, 보는 사람까지 피곤하게 만드는 비호감인 친구 말이다.


그중에 아직도 회자되는 전설적인 일화가 있다.

우리는 곧잘 5~6명이서 점심을 같이 먹곤 했다. 급식이 시작된 건 중학교 2학년 때부터이니까 그 전에는 도시락을 각자 싸오던 때인 중학교 1학년 2학기 였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반찬을 골고루 골라가며 맛보고 먹었다. 그러다보면 인기없는 반찬은 남기 마련인데, 보통 애들은 남기면 남기는대로 그냥 집에 가져가서 해결하는게 일반적었다. 하지만 민아는 매번 자기 반찬이 좀 남으면 자꾸 자기 것 더 먹으라고 강요했다. 그날은 애들도 거듭 배부르다며 먹기를 거부하자 대체 왜 그렇게 자기 반찬 떨이를 강요하는지 의아해진 나는 “그냥 집에 가서 먹으면 되지 않아?”라고 했더니

“애들이랑 먹은 거 집에 가져가서 먹기 찝찝해.”라는 말을 얼굴색 하나 안변하고 내뱃어 듣는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 후 친구들 사이에 민아는 결벽증 있다느니, 온갖 깔끔을 다 떤다는 등 비아냥 대는 소리가 그날의 반찬처럼 자주 등장했다. 본이 아니게 은근슬쩍 따돌리는 분위기마저 연출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우리는 집 방향이 같았고, 중3 때 같은 반이라 자연스럽게 계속 어울렸다. 고등학교도 셋이 같이 올라왔으니 당연히 등하교도 같이 했다.


하지만 요즘, 민아는 다른 애들과 점점 더 친해지더니 특히 나와는 서서히 멀어져갔다.

물론 여전히 영화나 음악적 취향은 비슷해서 민아네 집 가서 영화 보며 수다를 떨기도 했지만, 주로 내가 먼저 연락해 약속을 잡거나 민아는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는게 대부분이어서 만남도 점점 소원해져 갔다.


그 중 우리 사이가 예전만치 않다는걸 느끼게 된 계기는 2학년 수학여행 때였다. 다들 사복을 입고 한껏 치장을 한 친구들이 삼삼 오오 모여 돌아다녔다. 그 중 관광지니 유적지 곳곳에서 중간 중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그때마다 친구들은 남자친구랑 같이 다니는 애들도 있고 마음에 맞는 친한 애들이 짝을 이루어 다니곤 했는데, 민아는 올해 들어 갑자기 친해진 예선이라는 친구와 둘이 짝을 맞춰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두루두루 사이좋게 지내긴 했지만 어느 하나 짝 맞춰 돌아다닐 친구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왁자지껄 웃는 기집애들 소리와 쨍쨍 비치는 햇빛 사이로 나풀대는 꽃들은 내 처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눈치 없이 넘실댔다.

‘내가 이렇게 친구가 없었나…’하는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다행인 건 마음씨 착한 유나와 정애가 자연스레 자기들과 같이 다니게 되어 비참하게 마무리 될 수학여행이 어찌어찌 끝났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도 민아는 나와 늘 비슷하고 지진부진하면서도 이질감 느껴지지 않을 관계를 유지하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긴밀히 파고들지는 않았다.


집에 갈때도 늘 항상 같이 다니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등하교도 예선이랑만 다니기 시작했다.

한번은 그런 우울한 기분을 안고 셋이 집에 가기 위해 걸어가고 있는데 한번쯤은 나의 기분이나 안위를 물어볼 법 한데 옆에 있는 예선이하고만 대화를 걸고 나한텐 질문 하거나 내 안색에 대해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것이다. 마치 내가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말이다. 알 수 없는 배신감과 서운함이 울컥울컥 올라와 그날 민아에게는 한마디도 인사도 않고 집으로 가버렸다.


등 뒤에서 민아가 “왜 쟤는 말도 없이 가?”라며 퉁명스레 말하는게 들렸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없이 집에 갔다. 민아는 그 뒤로도 내가 왜 그랬는지 전혀 물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민아가 예선이랑 왜 그렇게 붙어 다니는지 알게 됐다.

예선이는 매주 수요일 학원에 가는데, 그날은 나랑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곤 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어봤다.


“근데 예선이랑 원래 그렇게 친했어? 작년에 같은 반도 아니었잖아.”


민아는 무심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친한 건 아닌데~ 그냥 학교에서만 같이 다니는 거야.”


“그래? 맨날 붙어 다니길래 나는 엄청 친한줄 알았지.”


“예선이가 나랑 동아리 같이 듣는 주연이 친구잖아. 근데 걔만 떨어져서 우리반에 왔으니까 내가 좀 챙겨줘야 할 것 같아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한 감정이 훅 밀려왔다.

왜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오랫동안 알고 지낸 나보다, 올해 처음 친해진 예선이를 더 챙겨야 한다고 느끼는 이유는 뭘까?

우리는 다른 방향의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헤어졌다. 홀로 집에 가는 길 내내 기분이 좋지 못했다. 아니 좋지 못했다는 표현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민아를 향한 경멸감이 밀려왔다. 난생 처음 누군가의 속마음을 듣는 것처럼 그 애 속이 빤히 들여다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혼잣말을 내뱃었다.

”가식적인 년“


나는 민아를 향해 경멸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고, 이상하리만치 내 배알과 심사가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배신감을, 민아가 손해 보는 걸로 돌려받겠다고.

그래야 좀 속이 풀릴 것 같았다.




“민아야 너 이제 방과후 영어 안 듣지? 그럼 나 그 교재랑 테이프좀 빌려주라. 아직 못샀네.”

”민아야 나 그 영어 책이랑 테이프 좀…“

”민아야 나 오늘도 빌려줘“

나는 방과 후 영어 수업 교재를 사지 않고 매번 민아에게 빌렸다.

어느날 민아는 눈치를 주는데도 꿋꿋히 빌리는 나를 보며 한마디 했다.


”그냥 나한테 사는 건 어때?“


나는 일부러 얄궂게 대답했다.


”응? 내가 왜? 네가 빌려주면 되자나. 친군데 그 정도는 해줄 거지?“


그 외에도 돈을 빌렸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안값는 다거나, 민아가 계단을 내려가다가 넘어지면 폭소를 터트리며 비웃어 주기 등 대놓고 욕할수는 없지만, 상대방이 은근슬쩍 기분 나빠지게 하는 행동들을 일삼았다. 그래야 내 분이 풀리기라도 하듯 티날듯 티나지 않은 소심한 나의 복수에 민아는 화를 내거나 대놓고 싫은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우리는 자연스레 멀어져 갔다.


이제는 더이상 같이 점심을 먹지도, 함께 집에 가지도 않았다. 3학년이 되자 모두들 고3 모드로 들어가 더욱 이야기 할 일이 없어졌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친구들끼리 같이 밥을 먹긴 했지만, 제 주인을 잃은 강아지처럼 약간은 겉돌았다. 그런 시간이 무료해 점심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교실에서는 민아 주위로 몰려들어 하하호호 이야기 나누는 것이 불편하긴 했지만, 관심없는 드라마나 연예인 이야기에 신물이 나기도 했다.


반면 도서관은 편했다. 조용했고, 그 곳에서 있으면 혼자 있는게 외로워 보이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가 책 한권을 발견했다. 고전소설이었는데,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이 전쟁통에 사랑하는 이야기였는데, 주인공 두 남녀의 절절한 사랑이야기가 눈에 들어오기 보다는 그 옆에서 묵묵히 두 남녀의 사랑의 메신저가 되어 주는 <수잔느> 라는 이름의 하인이 더 마음에 갔다. 남 녀 주인공은 어렸을적부터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그들 사이에 늘 하인이 함께 했다. 중간에 하인이 여자주인공을 지키기 위해 불의의 사고로 죽임을 당하는데, 자신을 늘 따르던 수잔느가 죽자 여자주인공은 평생을 단짝처럼 여겼던 친구가 사라진 것에 비통해 한다. 그리고 두 남녀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날 나는 그 책을 빌려와 집에서 곱씹고 곱씹으며 수잔느를 생각했다. 아무도 귀하게 여기지 않을 것 같은 수잔느, 주인공의 들러리로만 존재할 것 같은 수잔느. 그런 수잔느를 애잔해 했던 주인공.

수잔느가 자꾸 생각났다. 주인공 옆에 늘 붙어있지만 그 주인공을 빛나게만 하는 들러리 같은 조연 수잔느가 애잔했다. 나는 수잔느 였던걸까. 민아에게 나는 들러리 같은 존재였던 걸까. 어쩌면 들러리라도 되어 그녀 옆에 늘 붙어있길 바랬던 걸까.

이상하게도 수잔느가 애잔하다. 나라도 그녀를 기억해 주어야지.


오! 수잔느, 나의 수잔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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