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평범과 비범 사이

by 탤미


언제부터인가 주말이 싫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안다. 주말이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이유를.


한 아이의 울음소리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에 두 눈이 강제로 떠진 나는, 안방에서 거실을 지나며 나머지 한 아이가 깰까 두려워 까치발로 종종거리며 작은방으로 뛰어들어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한다.

첫째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배고프다는 말을 나지막이 내뱉고, 엄마가 자신의 말을 들었는지 확인이라도 하듯 “배고파. 뭐 먹을 거 먹을래.”를 단어 암기하듯 반복한다. 계속되는 독촉에 정신이 아득해져 부엌으로 아이를 데려가 유아용 의자에 앉힌 채 냉장고를 연다.

언제부턴가 ‘무엇을 먹일까’에 대한 논쟁을 피하고 싶어, 아이에게 허락된 음식은 밥, 시리얼, 빵, 과일이라고 정해두고 그중 한두 가지를 선택하게 해 아침을 해결한다.


아침 식사와 씨름하던 중, 나지막한 울음소리와 함께 문이 두드려지고, 둘째가 일어났음을 알린다. 나는 다시 작은방으로 들어가, 얼굴을 파묻고 자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왼쪽 뺨에 가볍게 뽀뽀를 하고 손을 잡아 식탁으로 이끈다.

아기는 요즘 세상에 내뱉는 첫 단어 “엄마” 외에도 “이거, 이거”를 터득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한다. 아직은 한참 어린 둘째를 위해 전자레인지에 우유를 30초 데워 빨대를 꽂아 식탁 위에 올려놓자, 작은 입이 야물야물 움직이며 토요일의 첫 번째 ‘밥 먹기 미션’이 클리어된다.


아이를 돌보며 하지 말아야 할 일 중 하나가 시계를 보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결국 시계를 들여다본 나는 아직 9시도 되지 않은 ‘8시 56분’이라는 숫자에 망연자실하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 한숨이 채 천장에 닿기도 전에 네 살 된 딸아이가 묻는다.

“오늘 어린이집 안 가?”

엄마의 속마음은 “내 말이…”라는 절규가 있지만 꾹 눌러 담고 “오늘은 토요일이야. 주말엔 어린이집 안 가.”라고 짧게 대답한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책 읽어줘”, “뭐 보여줘”, “놀이터 갈래” 같은 요구가 쏟아진다. 그중 난이도가 가장 낮은 책 읽기를 택해 집중한다.

엄마의 역할에 충실하려, 아이에게 맛깔스런 목소리로 동물과 인간, 사물까지 넘나들며 연기에 몰입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잠시. 둘째의 칭얼거림과 ‘각각’ 소리로 독서는 곧 두 아이의 재간과 놀이로 바뀐다. 이 와중에 책이 찢어지는 일도 빈번한데, 그 상황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화가 나는 내가 아직도 미숙한 ‘설익은 엄마’이기 때문일까. 또 한 번 한숨이, 마치 하품처럼 툭 튀어나온다.


아이들과의 실갱이가 고상한 훈육에서 고함으로 바뀔 즈음, SOS처럼 남편이 등장한다.

세수도 양치도 못한 채 눈곱도 떼지 못한 나를 본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로 향한다. 물론 옷 입히는 건 언제나 엄마의 몫이다. 도망 다니는 첫째의 양팔을 붙잡고 공갈과 협박을 동원해 두 아이를 겨우 내보낸다.

그제야 밖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새소리처럼 사랑스럽게 들리는데, 그 아이러니를 나조차 이해하지 못하겠다.


거실에는 널브러진 책, 식탁 바닥과 부엌 아일랜드, 온갖 곳에 흩어진 장난감들을 수습하다 결국 한곳에 몰아놓고, 쇼파에 축 늘어진 나를 발견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곧 점심 준비를 위해 쌀을 씻고 밥을 하고, 오늘은 간단히 짜장밥을 만든다. 아이들이 잘 먹어주길 바라며 아이들을 맞는다.


1시간 못 봤을 뿐인데 현관문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보며 “내 새끼들, 잘 놀았어?”라고 반겨준다.

남편은 “얘들아, 오늘 볼 수 있는 엄마의 마지막 웃음이야”라는 경험에서 우러난 농담을 던진다.


곧 피로감이 몰려오고, 아이들에게 점심을 먹이며 “흘리지 마”, “턱받이 해”, “딱 대고 먹어”, “언제까지 엄마가 먹여줘야 돼?” 같은 잔소리들이 쏟아진다. 그렇게 분주한 점심시간이 끝나고, 두 번째 미션도 클리어된다.


이제 부모의 희망인 ‘낮잠 시간’.

자장가 분위기를 만들고, 첫째는 엄마가, 둘째는 아빠가 맡아 각자 방으로 들어간다. 커튼을 닫자 “난 안 잘 거야”라며 강한 의지를 밝힌다. 인자한 목소리로 “안 자도 돼”라고 말한 후 책을 읽자며 침대로 유도한다.

이때의 규칙은 무조건 함께 누워서 책을 보는 것. 자장가 멜로디를 배경 삼아 책을 읽다 보면, 세 권도 채 안 되어 아이는 잠든다.

곤히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하루의 3분의 2가 지나감에 안도한다.

그 틈에 부부도 잠시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이런 시간은 왜 그리도 빨리 흐르는지, 어느새 1시간 반이 훌쩍 지나고, 시간차를 둔 두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실내 활동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판단한 우리는 외출 준비를 한다. 오전에 입혔다 벗긴 실외복을 다시 입히고, 공갈과 협박을 동원해 웨건에 두 아이를 태운다.

20분쯤 걸어 도서관을 지나 공원에 도착하면, 두 아이를 자유롭게 풀어놓고 싶지만, 아직 앞뒤 구분도 어려운 둘째 탓에 무산된다.

결국 부부는 번갈아가며 호수 근처로 가려는 아이를 붙잡고 되돌리고를 반복한다.

15개월 아기의 집요함에 “넌 뭐가 되려나” 싶어 웃음이 난다. 강제 결박된 둘째는 “엄마!!!” 또는 “크악 크악 각 각!” 같은 알 수 없는 의성어로 반항을 외친다.

첫째를 놀아주고, 둘째를 쫓아다니다 보면, 아이들은 어느새 “배고파!”를 외친다. 근처 김밥집에서 간단한 음식을 사 들고 집으로 향한다.

첫째는 “김밥 먹고 싶은데”라는 말을 복사+붙여넣기처럼 반복하며 집에 도착하고, 우리는 손을 씻기고 식탁에 앉혀 저녁을 먹인다. 그 후엔 당연히 목욕.

“병균 가득하니 씻자”고 말하면, 첫째는 도망 다니고, 나는 “칭찬 스티커 붙이려면 목욕은 필수야”라며 협상에 나선다. 우여곡절 끝에 두 아이를 동시에 씻기고 나면, 첫째가 묻는다.

“이제 자야 돼?”

그 말이 안쓰러워 “아니야, 좀 더 놀다 자도 돼”라고 대답한다.


놀이방에서 잠깐 자율 놀이 시간을 허락하고, 어느새 8시 45분이 되어 미드등을 켠다. “책 읽고 자는 시간이야”라고 알려주고 책 세 권을 읽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더 놀고 싶어 서로 깔깔 웃으며 까꿍놀이를 하고, 펼쳐진 이불 위에서 뒹굴며 논다. 그 모습이 사랑스럽다가도, 얼른 자줬으면 하는 바람에 행복과 고통이 교차한다.

불이 꺼지고, 아이들이 드디어 쎄근쎄근 잠이 들면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온다.


마치 오래달리기의 마지막 코스를 마친 듯, 나는 잠깐의 해방감을 맛본다. 그러나 이내 거실과 부엌에 흩어진 책과 장난감이 눈에 들어온다. 머리는 정리하라 명령하지만, 몸은 자석처럼 침대로 향한다.


리모컨을 들고 무의식적으로 TV를 켜고, 핸드폰으로 인스타 속 타인의 삶을 잠깐 엿본다. 그러다 자정이 가까워오면 ‘그래도 애들 물통은 씻어야지’ 하며 부엌으로 향해 가볍게 설거지를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렇게 평범한 토요일이 과연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스케줄일까?”

역시, 엄마와 아빠는 비범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한다.

정말, 평범한 토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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