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의 결말

by 탤미

날씨는 기분 나쁘도록 밝았다. 나는 고요한 거실 방 한켠에서 음악도 TV도 틀지 않고 해야 할 일을 고민했다.
애들 등원시키고, 저녁이면 내가 애 둘을 혼자 봐야 하는데… 최근에 아이를 돌봐줄 선생님을 고용하긴 했지만 시에서 보내준 선생님은 너무 나이가 많은 할머니여서 여간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어쩐지 목소리부터 굵직하고 힘없는 그 소리가 의뭉스러웠는데, 실제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 나의 우려가 현실이 됨을 직감했다.
느릿한 몸짓, 어설픈 걸음걸이, 눈매 안에 숨어 있는 눈동자가 채 보이지 않을 만큼 눈가 주위로 깊게 패인 주름 등, 경상도 사투리 같은데 오랜 시간 수도권에 사셔서 그런지 혼용되어 있는 독특한 억양은 귀에 콕콕 박히지 않아 주의 깊게 들어야 했다. 애들이 제대로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 책을 읽어주실 수 있는 시력인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잘 따르지 않았다. 여전히 낯가림이 심한 둘째 덕분에 첫째에게 맞춰 선생님을 고용한 건데, 첫째도 엄마만 찾고 선생님에게 온갖 짜증을 부리며 만지지 말라는 무례한 행동까지 겸해 아이를 계속 다그치고 혼내야 했다. 그런 선생님을 오후에 또 모시고 두 아이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여간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약간의 걱정거리를 안고 집안일을 듬성듬성 해내었다. 발바닥에 먼지가 기분 나쁘게 들러붙는 느낌이 불쾌해 이틀 전에도 로봇청소기를 돌렸지만 오늘 또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근래에 날이 좋아 창문을 자주 열어 먼지가 들어온 탓도 있다. 이제 곧 여름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어 낮이 되면 문을 꼭 닫고 있으면 후덥지근한 기운이 비집고 들어와 선선한 바람을 맛보기 위해 문을 열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다. 로봇청소기를 돌리는 사이에 간단히 엊그제 걸어 놓은 빨래를 걷고 TV를 보며 오후에 다가올 체력 보충과 돌봄 선생님에 대한 찝찝함을 거두어낼 요량으로 빨래를 개는 데에 집중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마음속에서는 조금이라도 걷거나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강박처럼 몰려왔다. 얼마 전부터 뒷목이 뻐근해 생존 운동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싶은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애들 등원시키고 나면 좀처럼 풀리지 않은 피로와 무력감에 엉덩이가 소파에 떨어지질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후에 오면 배고파할 애들 간식이며, 저녁 밥은 뭐 해주나란 생각이 미치자 도대체 남은 시간 동안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거면 일단 걷고 씻고 나서 움직이자 싶어 밖으로 옷을 대충 입고 나왔다.


바깥의 날씨는 여전히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쨍하고 밝았다. 걷기에는 너무 밝은 날이었다. 모자를 쓰고 오길 잘했다 싶었다. 바깥을 걸으며 집 안에 있을 때보다 마음이 한결 나아짐을 느꼈다. 집 안에 있으면 몸이 편하기는 하나,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과 그것을 하지 못하면 답답하고 걱정스러운 마음 때문에 계속 누가 쫓아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계속되는데 이렇게 밖에 나와 조금이라도 걷거나 뛰면 생각이나 정리가 되는 기분이라 하던 일을 다 제치고 나오게 된다. 오늘은 남편이 늦게 들어오니 내가 아이 둘의 하원과 씻기고 재우는 것까지 일목요연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매일 하는 육아인데도 남편의 유무 차이가 컸다. 그가 없으면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더군다나 오후에 오실 선생님이 신경 쓰였다. 오늘은 제발 아이들이 잘 놀아주기를, 엄마만 찾으며 우는 것도 덜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설사 그렇지 않다면 다른 선생님을 구하는 게 맞다고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별일도 아닌데, 간단하게 정리될 일임에도 신발에 돌멩이 하나가 있으면 걸을 때마다 거슬려서 꼭 신발을 벗어 모래를 털어야 하는 것처럼 집에서만 있어서 그런지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도 온 신경이 집중되고 빨리 결론이 나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생겼다. 어쩌다 이렇게 멘탈이 얇아진 건지 나조차도 의문이었다. 전화로 걸어오는 무작위 광고성 보험 이 팀장 전화도 가만히 있는 나를 신경질적으로 만드는 이유 중 하나가 되어버리곤 하니 말이다. 이래서 사람이 바깥에 나가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건가 하는 마음에도 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집에 들어와 몸을 씻고, 내일이면 제자리로 돌려놔야 하는 대출했던 책을 숙제처럼 부랴부랴 읽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4시에 시곗바늘이 가 있다는 걸 확인한 후, 아이들이 먹을 브로콜리만 데치고 밖으로 다시 나갔다.
아이들은 어느 때처럼 나를 보자 밝게 웃어주었다. 아장아장 걷는 15개월 둘째 아들과 “엄마~” 하면서 양갈래 머리를 챙챙거리며 나오는 첫째 딸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차에 태워 집으로 갔다. 딸은 나를 보자마자 배고프다며 난리였다. 그놈의 배고프다는 소리. 어째 우리 딸은 엄마 보면 하는 소리가 배고프다는 이야기밖에 없을까 하는 섭섭함과, 그래, 가장 만만한 존재가 엄마인데 본능적인 욕구를 즉각 채워줄 존재에 대해 부비려는 생리적인 태도인가 싶기도 하여 집에 가서 먹을 것을 주겠다고 신신당부하고 선생님을 맞이하러 핸들을 서둘러 돌렸다.




선생님은 현관문 앞에 우리를 마주하고 계셨다. 빠글거리는 머리와 앞코에 약간의 반짝이가 곁들여진 촌스럽지만 편안해 보이는 신발에 엉거주춤 걷는 걸음걸이. 첫째는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예의 바르게 인사했고, 둘째는 울려는 시동을 걸듯 경계 태세였다.
선생님이 첫째에게 “선생님이 신발 벗는 거 도와줄게. 어서 들어가자~” 하고 딸아이의 등에 손을 대자, 그 손을 뿌리치며 “아니야, 하지 마~ 엄마가! 엄마가!!”를 연발했다. 지난주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경계심 어린 눈빛의 딸아이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마음이 자꾸만 굳혀졌다.

그런 내 마음을 읽은 것일까. 집에 들어와 선생님은 나에게 대뜸 “어머님, 어떻게 다음 달에도 신청하실 거예요?”라고 물었다. 거절이 영 서툰 나는 어떻게 먼저 말을 꺼낼까 고심 중이었는데, 선생님이 먼저 물어봐 주니 자연스럽게 “안 그래도…”란 서두가 먼저 나왔다.

“애들이 너무 선생님을 안 따라서 고민이에요.” 선생님도 나의 말을 받아 이어갔다.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수 있을지언정, 저녁 8시 30분에 퇴근해서 버스를 놓치게 되어 어째 저째하면 너무 늦은 밤에 귀가하게 되어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엄마가 옆에 있으면 엄마만 찾게 되어 있다고. 10년 동안 이 일을 하셔서 그런지 경력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늘어놓으셨다.


“전에 돌보던 22개월 아이도 엄마 엄청 껌딱지였어요. 근데 엄마 바쁘고 나가니까 나만 붙잡고 나가자고 하고, 나중에는 나만 찾았지.”
내가 집에 같이 있는 게 문제인가 싶기도 했다. 이번 주만 돌봐주시는 걸로 마무리를 지어갈 때쯤, 딸아이가 놀이터에 가자고 성화였다. 선생님은 “엄마는 집에 있고 선생님이랑 가자~”라며 꼬셨지만, 딸은 “아니야!” 소리를 울먹거리며 엄마랑 갈 거라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둘째까지 데리고 나와 놀이터에서 다 같이 놀다가 선생님은 첫째가 다른 언니들과 놀면서 한눈파는 사이에 집에 들어가 일을 보라고 손짓을 하셔서, 찜찜한 걸음으로 둘째를 데리고 들어왔다. 금방 엄마를 찾거나 울면서 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의심과 걱정이 들었다. 첫째가 곧 들어올 수 있으니 이때 어서 저녁을 차려야겠다 싶었다. 사실 선생님을 모시는 것도 나에게 저녁 차릴 시간을 벌어주는 것만 해도 육아는 훨씬 수월했다. 둘째는 나와 단둘이 있을 때는 순한 양처럼 쉬웠다. 웃으면서 밥도 먹이고 장난도 쳤다. 1시간 가까이 지나자 선생님과 딸이 들어왔다. 얼굴을 보니 생각보다 신나게 논 모습이 역력했다.


선생님은 “어머님 가시자마자 제 손잡고 이러저리 다녔어요.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걸 억지로 밥 먹어야 한다며 데리고 들어왔네요.”라고 하셨다. 첫째는 다시 엄마를 보자 엄마 엄마 타령이었다. 둘째도 선생님을 보더니 엄마 하면서 울먹거렸다. 서로 엄마가 옆에 앉으라며 아우성이 시작된 것이다. 선생님은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하셨지만 그럴수록 아이들은 더욱 보챘다.
그런데 우습게도 아이들이 한 번에 선생님 곁에 가게 하는 묘책이 발휘된 건 다름 아닌 “까까”였다. 밥을 먹자마자 군것질 맛을 아는 딸아이가 까까 달라고 성화를 피우자, 나는 선생님에게 까까를 드리며 “선생님이 나눠주실 거야. 얼른 거실로 따라가 봐.” 했다. 그러자 그렇게 울던 둘째도 까까를 얻어먹을 요량으로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우습게도 먹을 것으로 엄마에게서 벗어나다니 괘씸하기도 하면서 귀엽기도 했다. 그 뒤로 거실에서 선생님과 ‘베개 뺏기 장난’을 시작하더니, 완전히 관계의 허물이 벗어진 것처럼 깔깔 웃으며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았다. 좀 전까지도 울면서 그렇게 싫다고 선생님 저리 가라고 떼쓰던 아이들이, 나조차도 선생님이 별로라며 나이가 너무 많으신 것 같아 안 되겠다 생각했던 나도이렇게 한 번에 바뀐 모습을 보니 겸연쩍은 기분까지 들 정도로 민망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선생님의 굵고 퍼석한 웃음소리와 쩌렁쩌렁한 아이 둘의 활기찬 목소리가 어쩐지 기분 좋게 들렸다.
육아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는 것은 늘 성가신 일인데, 오늘은 그 전에 주방 정리를 할 수 있어 한결 수월했다. 두 아이 다 땀을 흘리며 흥분해서 놀고 있길래 “이제 진정해야 할 때야.”라고 미지근한 물을 끼얹었다. “이제 선생님을 보내드려야 할 때”라고 전하자, 선생님은 “애들 목욕은요?”라고 했고, 애들 씻기는 건 두 명 다 한 번에 씻길 수 있어서 걱정 말라는 짧은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을 그렇게 밀어냈던 오후의 현관 풍경과 다르게 보내드릴 때 빨갛게 달아오른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이 둘을 씻기는 것도 재우는 것도 오늘은 웬일인지 힘들지가 않았다. 오전 내내 걱정만 해서 그런지. 우려했던 일을 심히 걱정하고 근심하면, 오히려 닥쳤을 때 별일 아니게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오늘은 그 이상으로 감당할 만했다. 자기 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는 것도, 깔깔대며 뒤뚱뒤뚱 걷는 둘째의 엉덩이도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두 아이에게 작게 뽀뽀를 하고 잠을 재웠다.


창문을 여니 밤공기가 선선하게 불어왔다. 부엉이 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귀뚜라미가 울어대는 온갖 소리가 고요한 밤에 자장가처럼 아이들을 재워줄 요량이었다. “고맙네.”라는 말이 나도 몰래 튀어나왔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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