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와 오빠

by 탤미

거의 처음으로 엄마에게 ‘용돈’이란 걸 얻고 나서 내가 한 일은 비디오 가게에서 <후레시맨>을 빌린 일이었다.

당시 친오빠도 후레시맨의 열렬한 애청자라 으레 좋아할 것이라 생각해 자랑스레 말하니, “미쳤냐? 돈 아깝게 왜 그딴 걸 빌려!”라는 면박 아닌 면박을 당한 일은 내가 기억하는 여섯 살의 단상 중 몇 안 되는 장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그 당시 나의 마음에는 오빠가 좋아하는 걸 나도 해보고 싶고, 같이 놀고 싶은 어린 동생의 호기심이 있었는데, 그런 동생 마음을 나보다 세 살 많은 오빠는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내가 닮고 싶고 같이 놀고 싶은 대상은 친오빠였다. 오빠가 보는 만화책, 오빠가 하는 미술 숙제, 오빠가 그린 그림, 오빠가 먹는 시리얼 등 그 모든 것을 베끼고 따라 했다. 나의 첫 카피 대상이자, 닮고픈 가장 가까운 존재였다.


그리고 점차 자라며 그 대상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초등학생 전반을 사로잡은 존재는 윗집 언니였는데, 오랫동안 같이 하고 싶고 늘 놀기 원했지만 철저히 이용당하고 똘마니처럼 데리고 다니는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이 슬프고도 안타까운 기억이다.


일곱 살 때 아파트로 처음 이사를 와서 초등학생이 되면서 중학생이 될 때까지 알고 지낸 “윗집 언니”는 세상 물정을 나보다 훤히 꿰뚫고 있었다.

위로는 두 살 많은 큰언니와 아래로는 막내 남동생이 있는 5인 가구이자, 때때로 여러 동물들을 키우는 대식구라면 대식구였다.

우리 집은 윗집과 오가며 친하게 지냈는데, 자연히 나도 윗집 언니와 자주 놀았다. 언니의 집에는 어린 초등학생이 부러워할 만한 모든 것이 있었다.

첫 번째로 강아지를 키워서, 동물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놀러 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신기한 종의 포유류도 다양하게 거주했는데, 이구아나, 햄스터, 병아리, 심지어 그 병아리가 거의 닭이 될 때까지도

얼마나 잘 키우는지, 새까지도 키웠을 정도이다. 이 모든 걸 한 번에 키우지는 않았으나 그들 각자의 수명에 따라 바꾸거나 교체해 가며 여러 동물들을 집에서 볼 수 있었으니, 어린 나에게는 구경 가기 딱 좋은 완벽한 놀이동산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생이 없던 나는 윗집의 막내 남동생과 노는 것도 작은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언니와 자주 놀았던 만큼 싸우기도 자주 싸웠는데, 대부분은 내가 패하거나 언니의 말빨(?)에 처참히 무너지는 찐따의 역할을 감행해야 했다. 심지어 큰언니에게도 이유는 모르지만 자주 무시당하고, 그러면서도 또 같이 놀아주기도 하는 비천한 관계가 지속되었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왜 맨날 당하는데 그렇게 언니가 좋냐?”며 핀잔을 주셨고, 나는 내가 먹을 것이 생기면 언제나 언니에게 달려가 나누는 것을 서슴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계속했다. 그저 언니와 하릴없이 노는 시간이 좋았다.

왜 그렇게 언니를, 오빠를 좋아했을까. 나보다 모든 것에 우위에 있는 존재에 대한 선망이었을까.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착각이었을까. 아니면 언니들 무리에 끼고 싶은 동경이었을까.


현재 네 살 난 우리 딸은 그때의 나보다 한참이나 어리지만 마치 예전의 나를 보는 것처럼 언니, 오빠들을 그렇게 좋아한다.

종종 딸은 5층 집 아파트 창문에 기대어,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언니, 오빠들을 보며 큰 소리로 외치곤 한다.


“언니~~ 오빠~ 안녕~!!!”

그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아파트 단지 내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이다. 남편은 그런 아이를 보며, “네가 아는 오빠야? 알지도 못하는데 왜 인사를 해~”라며 공감 능력 떨어지는 핀잔을 준다. 딸은 그런 아빠의 소리에 아랑곳 않고 언니, 오빠랑 놀고 싶다며 나가자고 한다.


딸이 그런 나를 닮은 걸까. 내가 오빠를 좋아했듯이, 언니를 그렇게 따랐듯이 언니, 오빠들이 타는 킥보드, 반짝이 신발, 태권도 발차기 등등 어디서 그렇게 보고 따라 하는지, 재간스럽기 그지없다.


딸을 보며 과거의 내가 생각난다. 바보 같고 매번 당하기만 하는 야무지지 못한 나에 대한 곰스러운 마음 때문에 우리 딸아이는 나와 같지 않기를, 누군가를 따라 하고 내가 가진 것보다 다른 이들이 더 좋아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자꾸만 미련하게 새어 나온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 역시 내 아이를 나의 시각으로 재단하는 것 같아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먼저 살아봤다는 이유로 아이의 귀여워 보이는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리석은 나 자신의 모습이 안타깝다.


어른으로서의 시각은 그저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 말고 스스로 놀았으면 좋겠고, 주체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놀이를 독립적으로 하는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데, 이런 생각 자체가 철저히 어른의 시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약간의 씁쓸함이 남는 건 나 스스로에 대한 미련함 때문일 것이다.

남편도 딸이 또래 친구나 언니, 오빠들이 하는 행동을 똑같이 하려고 하면 걱정과 안타까운 말투로, 딸 스스로 놀고,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지 않는 ‘주체적인 아이’이길 원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 걱정한다. 그런 남편을 보며, “아직 애잖아, 딸은 그게 노는 거야.”라고 말한다. 이는 남편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의 시각은 아이보다 순수하지 못하고 때로는 편협해서, 어른의 기준으로 아이들이 모방하는 방식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그랬듯이, 모방은 선망하는 대상을 따라함으로써 그들과 동일시하거나 더 나은 것을 해보려는 시도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말이다. 사람은 결국, 보고 배운 것을 습득함으로써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존재 아닌가.

그러니 이 당부는 나에게 하는 말이다. 언니, 오빠를 좋아하는 과거의 나를 거울삼아 현재의 아이를 바라보는 것을 멈추는 것 말이다.

그저 지금 아이가 하는 행동 자체를 관찰함으로써 아이의 특성을 살펴보고, 모방하는 놀이를 귀엽게 바라보는 것 말이다. 그리하여 그것이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오빠에게 핀잔당해도, 언니에게 똘마니 취급받고 이용당했어도 같이 노는 것이 너무 좋았던 순진한 어린아이였던 나처럼. 아니, 나와는 완전히 다른 객체로 우리 아이는 성장할 것이다. 그런 아이를 넉넉히 바라보고 안아주는 엄마가 될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 스트레스 받을때 쿠키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