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또다. 이상하게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하원 후 저녁 7시부터 온몸이 노곤해지더니 아이들과 열정을 다해 놀아줄 수 없게 되었다. 축 처져서 놀이방에 누워 있는 나를 향해 첫째 딸은 “엄마~ 일어나~”라고 나를 일으켜 세운다. 나는 아직 공감력이 별로 없는 어린 딸아이에게 “엄마 너무 몸이 안 좋아. 조금만 누워 있을게.”라고 하자, 정말 아랑곳하지 않고 징징 소리를 내며 “싫어~ 엄마~~~~ 일어나~”라고 하며 나에게 주방놀이의 손님으로서 역할을 다하라 채근한다.
하… 정말 왜 이렇게 갑자기 몸이 아픈 걸까. 저번 주에도 그러더니 이번 주에도 아프다.
나의 엄마는 부엌에서 부스럭부스럭 주방일을 하신다. 그때 내 머리에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내가 아픈 게 엄마 때문일까?
지난주에는 친정엄마가 오시기 전날 침을 맞고 몸살이 난 건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엄마의 출현이 발화점이었다. 좀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엄마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집에 오면 아픈 것이다’. 이것도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데, 엄마가 오면 긴장이 확 풀리면서 몸이 노곤해지고 몸살이 걸린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남편에게 말하니, “대체 뭐 얼마나 긴장을 하고 살기에 아프냐.”고 걱정이 섞인 타박을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뭘 얼마나 긴장을 하고 사는 걸까. 대체 왜 이렇게 심약해져 버린 걸까. 확실히 집에서 육아만 하면서 이렇게 되었던 것 같다. 아침에 애들 등원 보내기 전에는 소용돌이치는 전쟁을 치른다. “밥 먹어라”, “양치해라”, “세수하자”, “옷 입자”, “기저귀 차고 가야 한다.” 붙잡고 재촉한다.
그렇게 등원을 시키고 나면 어질러져 있는 집안꼴에 파묻혀 TV를 켜고 2시간 이상은 뇌 정지가 일어나는 듯 화면 속에 빠진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11시 30분은 족히 되어 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안 되는데 하면서 집안일을 하나하나 처리하고, 조금 운동을 한다 싶으면 2시가 되어 있다. 아직 그래도 2시네, 하면서 곧 3시로 시곗바늘이 가고 있는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시계가 3시를 가리키면 애들 곧 하원할 시간이라는 압박감이 엄습한다. 이제 나에게는 30분에서 40분 정도밖에 자유 시간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아무도 명령하지 않은 조바심이 든다.
그렇게 무언가를 끄적인다거나, 책을 조금이라도 본다거나, 성경책을 읽는다거나, 그때그때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려고 애쓴다. 그러다 보면 4시 가까이 되고, 이제는 차를 끌고 나가 아이들을 맞이하러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대체 왜 긴장감이 생기는 일인지 나조차도 납득이 되지 않는데,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갈 수도 있다.
하나의 끈을 생각해 보라. 지금 나에게 긴 끈이 하나 있는데, 끈이 아침에는 팽팽하게 당겨졌다가 곧 느슨해졌다가, 다시 하원 시간에 맞춰 팽팽하게 당겨진다. 그 팽팽과 느슨의 사이클이 무한히 반복되다 보면 더 이상 이 끈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때가 온다. 시간의 반복, 영원하지 않은 끈의 생명력은 결국 팽팽함과 느슨함을 견주다가 톡 하고 끊어져 버리고 만다. 그 발화점이 아마 엄마의 출현이 아닐까.
엄마가 오면 어쨌든 육아의 쉼이 생기니까. 남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엄마와 아이를 돌볼 때 나도 느슨해지고 좀 더 편하게 육아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아이를 돌보는 데 “이렇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고집이 없이, 그저 아이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온건한 분이시니 말이다.
그래서 엄마가 집안일도 도와주고 아이들과도 놀아주게 되면 안정감이 든다. 내 몸이 편하다. 그래서 엄마가 오면 긴장이 풀리면서 아픈가 보다.
몸살이 걸리지 않았으면 나 스스로는 긴장 상태에 있는지 결코 몰랐을 것이다. 언제나 팽팽하고 튼튼할 것 같았던 그 끈은 언젠가는 툭 하고 끊어지고 말 것이라는 것도… 이제는 이 끈을 새로 재정비하고 갈아주어야 한다.
엄마 덕분인지, 아픈 덕분인지, 그날 저녁 타이레놀을 먹고 다음 날에도 몸살기가 가시지 않아 약을 먹었다. 아이들을 동일하게 준비시켜 등원시키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과자를 집어 들고 침대로 들어가 평안한 쉼을 맞이했다.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아프니까 난 쉬어도 돼. 쉬어야 낫는 병이야.”
스스로에게 당당하게 말하면서 아무런 근심 없이 쉼을 허락했다.
좀처럼 쉬지 않으시는 엄마는 여전히 딸네 집에서 묵힌 빨래며, 부엌일, 집안 정리를 알아서 해주신다. 나는 평온함이 깃든 무력감으로 축 늘어져 쉬자, 평소에는 절대 오지 않던 낮잠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안녕 인사한다.
이럴 수가, 이런 달콤한 낮잠이라니. 오랜만에 쉬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온몸이 아픈 게 때로는 약간의 희열감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보다 나의 몸은 내 상태를 더 잘 알고 있었나 보다. 몸이 나에게 말하고 있었던 거다.
“제발 좀 쉬어, 명상이라도 해. 나 더는 버티기 힘들 것 같아. 제발 부탁이야.”
들리지 않는 음성이 절규처럼 내 몸 곳곳의 약한 부분을 파고든다.
아프니까 쉰다. 이렇게라도 쉰다.
앞으로는 이렇게 아프기 전에 쉬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이것마저 숙제가 될까?
오늘은 그저 애들 밥도 대충 주고, 대충 보내는 하루를 나에게 선물하고 싶다.
그동안 매일 열심히 살아서, 오늘은 대충 살고 싶다.
쉬자, 쉬자. 몸이 쉬라고 하니 쉬어보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