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고 싶은 데 갈 곳이 없다
어젯밤에 집에서 한바탕 했다. 뭘 했냐고?
그건 바로 부부싸움!
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나 혼자 미치광이처럼 소리 지르기였다.
발단은 그러했다.
우리 집 둘째가 아파서 학교에 못 가고 집에서만 있던 날이었다. 내가 퇴근하고 돌아오니 하루종일 집에 있던 내색으로 나한테 매달리고, 짜증 부리고, 계속 놀아달라 조르고.. 여느 아이들처럼 엄마의 관심과 애정을 끊임없이 갈구했다. 근데 나도 하루종일 쉬지 못하고 목이 쉴 정도로 수업하고, 수업 후에도 다른 업무 하느라 늦게 퇴근한 터였다. 남편은 본인이 어제 늦게 잔 데다가 아이가 아파 본인도 잠을 설쳤다며 (누구는 잠을 잘 잤겠카?) 내가 도착할 시간 무렵 침대에 누워 꿀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퇴근하자마자 저녁 준비부터는 오롯이 내 몫.
문제는 그다음.
청효네 학교에 선물박스를 세 개 보내야 하는데 주말 동안 아이들이 아픈 바람에 선물상자를 못 채웠다. 오늘은 채워놔야 했기에 부랴부랴 주문해 두었던 선물들 풀고, 박스에 담고, 사진 찍어 출력해서 붙이고, 편지 쓰는 등 바지런히 왔다 갔다 하면서 그걸 해내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간신히 그것을 마치고 나니 그다음엔 내일 있을 독서모임에 준비할 간식이 필요해서 인터넷으로 장을 봐야 했다.
그 사이 청효는 엄마와 같이 놀기를 기다리면서 뾰로통해질 대로 뾰로통해져서는 온갖 짜증과 투정과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일곱 살 아니 여섯 살 청효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었지만 퇴근하고 일분일초 아껴가며 쉬지도 못하고 주욱 여러 가지 일을 해내다 보니 이미 시간은 밤 9시가 넘었고, 곧바로 씻고 자야 할 시간이라 도저히 같이 놀아 줄 여유가 안 생겼다. 그냥 나는 너무도 힘들고 지쳐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겠다. 이도 저도 못하고 낑낑대고 있는 내 상황이 너무 불쌍해서 화가 치밀었다. 애꿎은 여섯 살짜리 아들에게 큰소리로 화를 내고 있었는데 방에서 유튜브 보며 놀고 있는 남편에게 내는 화였다.
너는 왜 엄마한테만 놀아달라고 하느냐며, 엄마도 집에 와서 좀 쉬고 싶은데 하루종일 종종거리며 일만 하다 보니 밤이 되었다며… 엄마는 일만 하는 황소고 로봇이냐며…
엄마도 너무 힘들어서 울고 싶다며..
아빠한테는 왜 놀아달라는 얘기를 안 하느냐며…
이 나이에 엄마가 돼서 아들이랑 싸운다는 게 참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일이란 걸 잘 안다. 하지만 남편이 나와주길 바라면서 더욱 큰소리로 신세한탄 및 화를 내도 남편은 요지부동, 모르쇠로 일관했다.
몰랐을 리가 없다. 아마 더 귀기울여 듣고 상황파악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평소에도 다른 방에서 아이들과 소곤소곤 얘기해도 방에서 다 듣고는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대화라면 그걸 도대체 어떻게 들었나싶을 정도로 재빠르게 대꾸했던 그였다.
그런 남편의 무관심, 몰인정, 몰이해… 그것들이 더 큰 화를 불러 일으켰다는 것을 남편은 과연 알까?
참으로 몹쓸 인간.
종이 한 장 보다도 더 얄팍하고 얄밉기 그지없다.
방에서 다 듣고 있으면서 철저하게 제 몸뚱이 편히 쉬겠다고 외면하고 방관하는…
남도 그렇게 모른 체 하지는 않았을 거다.
남편이란 모름지기 남의 편이라고 해서 남편이라는 말이 어쩜 그리 잘 맞을까.
그래도 다른 사람 남편들은 집에서 큰아들 정도는 된다는데 내 팔자는 얼마나 드센지 남편마저도 큰아들은 무슨, 여섯 살 청효보다도 훠얼씬 더 어린애 같은 짓을 자주 한다. 이해불가다. 내 아들이었으면 매일 등짝 스매싱을 날렸을거다. 내 남편은 큰아들이 아니라 우리 집의 제일 막내. 나이만 처먹은 어린아이같다. 남편을 그렇게 키운 시부모님도 무척이나 원망스럽다. 아빠가 되갖고 어른 역할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에구 속 터진다. 정말.
남편에 대한 분노와 서운함과 원망을 가득 안고 화장실에 씻으러 들어가서는 진짜 생전 그렇게 질러본 적 없는 큰소리를 몇 번이나 질렀는지. 비명과도 같은 고함소리.
그래도 분이 안 풀려 문도 막 걷어차고 벽도 치고, 물건도 집어던지고… 진짜 미치광이가 되었었다. 얼마나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는지 목이 다 쉬어버렸다.
씻고 나와보니 식구들은 각자의 방문을 닫고 들어가 있었다. 나를 피해 숨어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각 방을 돌며 내일부터는 나한테 해달라고 바라지 말고 혼자 알아서 해라! 단단히 엄포를 놓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렇게 가족들에게 미친 부인, 미친 엄마가 되었다.
아침에 혼자 거울명상을 하다 보니 내가 화가 났던 그 감정 이면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움, 나 혼자 모든 걸 짊어지고 있는 것 같은 무거움,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허덕거릴 정도의 책임감 등.. 이 느껴져서 한없이 서글펐다. 욕하다가 울다가 하다 보니 청화가 일어날 시간이 되어 중단했는데 아직 다 해소되지는 않은 것 같다. 다음에 더 시간을 내서 거울명상을 더 오랜 시간 해봐야겠다.
오늘은 어제 엄포를 내린 대로 아침에 아무도 깨우지 않고 나를 위한 준비만 하고는 먼저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청화도 긴장해했는지 알람이 몇번 울리더니 어케저케 혼자 일어나 준비했고 청효도 남편이 시간 맞춰 깨워 준비시켜 주어 평소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오늘은 아예 집에 늦게 들어갈 작정을 하고 왔다. 아니 이번 주 쭉 그러려고 한다.
이 글만 쓰고는 밤늦게까지 핸드폰도 꺼놓을 것이다.
퇴근하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그냥 혼자 밥 먹기 편하고, 커피숍에서 책이나 읽을까 해서 아울렛으로 가기로 결정.
밥은 혼자 잘 먹었는데… 그다음 일정인 커피숍이 너무 밝아 오래 앉아있기가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그리고 배도 너무 불러서 커피나 차를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밥을 먹으며 어디를 갈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마땅한 곳이 생각나질 않는다.
지금부터 약 두 시간 이상 맘 편히 책 읽으며 있을 곳은 역시나 도서관뿐인가?!
지금 주차장에서 글을 쓰고 있다. 이제 이동해서 조용한 곳에서 책 읽으며 혼자만의 시간과 보낼 것이다.
근데… 나는 참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