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너무 쭈글쭈글했다.
지난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에 동참을 결정하고 실행하기까지 지난 주말부터 이번주 쭉... 매우 심신이 피곤한 한 주였다. 그 와중에 오늘까지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교사들에 관한 기사는 계속 나는데 교육청 교육부에서는 어떻게든 공교육 멈춤의 날 동참한 교사들에 대해 책임을 물으며 학교 내부 또한 갈라치기 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학교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지난 주부터 이번 주, 우리 학교의 분위기는 그랬다.
개학 이후 서이초 교사의 49주기에 맞춰 우리 평교사들이 뜻을 모아 지정한 공교육 멈춤의 날이 뚜벅뚜벅 다가옴에 따라 학교에서도 긴장감이 맴돌았다. 우리는 나름 단합도 잘되고 서로 소통도 잘된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어 그런지 이런 이야기를 터놓고 하지 못하는 어려운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교장, 교감선생님은 계속해서 내려오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징계 협박 공문을 어쩔 수 없는 듯 교사들에게 전달했고, 우리 교사들은 그런 이야기를 대놓고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앞에선 서로 딴 이야기만 하고, 우리끼리 뒤에서 살짝살짝 만나 분노하고, 슬퍼하는 밖에 없었다. 그 상황이 너무도 답답했다. 우리가 못할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발행하지 못한 '마음'이라는 글에서도 위에서 압박하는 것에 저항하고 싶은,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하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불편했던 당시의 심경이 짧게나마 잘 드러나 있다.
9월 4일이 가다 오자 여하튼 학교에 출근해서 하루종일 불편하고 미안한 채로 있느니 차라리 어떤 징계라도 달게 받겠다는 마음으로 공교육 멈춤에 동참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실제로 실행했다.
물론 학교 교사로서도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앞서가는 모범생(?) 역할을 해왔던 터, 내가 쓰는 병가의 의미가 관리자들한테는 달갑게만 비추지 않았을 것임이 가장 마음에 걸려 새벽부터 어떻게 연락을 해서 허가를 받을지 노심초사하며 간신히 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벌써 일주일 전이다.)
지났어야 말이지, 그 당시 결심을 하고도 내가 쉬이 거사를 치룰 수 없었던 에피소드가 있다.
그 전 금요일에 정말 굳게 결심을 하고 집에 온 것이 아니라 하필이면 인증서도 학교에 그대로 놓고 오고, 집에서 학교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원격시스템 아이디 비번(약 3개월 간격으로 계속해서 업데이트를 해놔야 한다)도 만료기간이 지나서 집에서 어떻게 해도 내가 병가를 신청할 수 있는 그 시스템에 들어갈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주변 동료에게 물어물어 학교 교무(아니면 다른 동료라도..)한테 대리 상신을 부탁하면 된다는 답변을 듣고 거참 민망하지만 믿어 의심치 않는 교무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나중에 진료확인서를 올릴 대는 옆반 동료에게 부탁을 해서 간신히 간신히 월요일을 보낼 수 있었다.
그뿐이었겠는가? 원래 병가를 쓰기로 공공연히 결정했던 동료들 수로는 학교의 수업들이 보결로도 딱 맞게 채워져 학교 돌아가는 데는 다들 큰 문제가 없었을 텐데 거기에 한 사람만 더 병가를 내도 학교 수업이 한 시간 두 시간씩 마비가 될게 뻔했다. 아이디 만료로 인해 집에서는 시스템에 접속할 수도, 학교의 일일근무상황을 볼 수도 없었기에 내가 마치 캐스팅보트라도 된 듯하여 내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학교 갈 시간이 다가오자 괜히 학교에 얼굴 비칠 낯을 잃은 듯 두려움에 휩싸여만 갔다.
두둥! 화요일. 오늘은 절대 늦으면 안 돼! 결심을 하고는 부지런히 아이들을 픽업해 주고 좀 여유 있게 학교 도착. 근데 주차장이 한산하다.? 웬일이지? 나 없는 사이에 학교가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하며 교실에 들어섰는데 알고 보니 앞으로 3일 동안은 관리자들도 무슨 연수를 가느라 학교를 비운다는 것이었다. 휴... 작은 탄식을 뱉고 두근두근하며 근무상황을 열어보니 나 말고도 세 명이나 더 동참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 학교는 교과교사 기준 절반의 수가 동참을 했고, 혼자 마음 졸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우리 학교 샘들 참 멋지다는 생각 밖에...
병가를 낸 우리들과, 차마 병가를 낼 수 없었던 동료들. 우린 처음부터 어떤 선택이라도 존중하고, 왜 그렇게 선택해야 했는지도 다들 잘 이해했기에 서로 만난 날 서로 수고했다는 인사를 하며 다시 끈끈한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그런 자리에선 왜케 울컥한 지...
여타 다른 학교에서는 서로의 선택이 틀렸다며 비난하는 분위기도 있다 들었는데 공교육 멈춤의 큰 뜻이 부디 교사 내에서의 부질없는 싸움으로 희석되지 않기를 바란다.
관리자 두 분이 연수를 가셨던 3일 동안은 우리 모두 여느 때처럼 평온하게 학교생활을 했는데 3일 뒤 두 분이 돌아오시기 직전에는 또다시 몹시 불안하기도 했었다.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출근길에 보니 교장실은 밖에서 보니 이미 교무, 연구 등과 말씀을 나누고 계셔서 그냥 지나쳤고, 교감선생님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인사를 드렸는데 다행히 교감선생님께서 먼저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불안감이 일단 절반으로 줄었다.
이제 교장선생님을 어떻게 뵈야하나..가 관건인데 아침부터 옆반 샘이 나를 보자마자 교장실에 얼른 가서 인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지 하며 나를 걱정해 주었는데 어떻게 갈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있었다.
불안함을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그날 병가를 낸 교사들 앞으로 교육청의 달갑지 않은 공문을 전달받았다. 9월 4일 있었던 수업을 추가로 확보하라는... 그것을 보니 또 갑자기 화가.... 최근에 교육청, 교육부의 행태는 교사 찍어 누르기, 갈라치기, 계속해서 말인지 방구인지 뭐든지 시키면 해라 하는 식이어서 분노의 방향이 자꾸 그쪽을 향하게 만든다. 이번에도 역시...
그 메시지를 받고 피는 거꾸로 솟구치고 화가 나서 그냥 가만히 하라는 대로 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우리끼리 뭉쳐서 같은 날 같은 시간을 확보해서 작지만 우리의 힘, 의지를 보여주자.. 싶어서 샘들에게 제안을 거듭했었다. 몇 명이라도 모이면 액션을 취하거나 보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근데... 결국 그 제안은 불발되었다. 다들 내 생각에 동의하여 함께 모여 연간시간표를 들고 논의는 했었지만 다들 학년 사정이 달랐고, 학년들이 마음대로 시간표 조정할 수 없었던 게 각 학년에는 동참한 학급과 학교를 지킨 학급이 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차마 아쉬운 결론이었다. 진짜 내가 쭈글쭈글한 풍선이 된 것 같았다.
게다가 교장선생님께서 우리 교실을 지나가시는 중에 잽싸게 나와 반갑게(?) 인사를 드렸지만 인사를 받으셨지만 쌩~~ 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 나 이제 진짜 아웃이구나!!'
뭐 예상 못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진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서글프기 짝이 없다. 나는 내년에는 학교를 옮기지만 여기 있는 남은 기간 동안 그래도 좋은 관계로 협력하고 열심히 하며 인정도 받고 잘 지내고 싶었으나..... 날아갔다.
마음이 답답하여 옆반 샘에게 달려가 오늘 하루 종일 있었던 일들을 말하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나도 별수 없이 사랑받고 싶은, 작고 약한 어린 내면아이였구나......
일주일 동안 몹시도 피곤했다. 주말이 되었지만 다시 월요일 학교에 갈 일은 걱정이 된다.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잘 버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