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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Dec 13. 2020

[그빵사]42. 사고야 말았다. 브레드 박스!

우리 집에 미니 카페가 생겼어요.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제일 처음 홈 베이킹을 시작했을 때는 빵을 만드는 도구만 생각했지 빵을 만들고 난 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오늘 만든 빵은 하루에서 이틀, 최대 삼일까지 걸쳐서 먹게 되는데 냉장보관을 제외하고 실온 보관 디저트를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 지를 잘 몰랐다. 그래서 식힘망 위에 올려놓은 채로 회색의 스텐 볼을 볼품없이 거꾸로 덮어서 뚜껑처럼 사용을 했다. 스텐 볼 안에 빵이 들어있을 거라곤 가족 누구도 생각을 못하는 것 같길래 다른 도구를 찾아보기로 했다.


원래는 디저트를 파는 카페처럼  유리 돔 커버를 구매하고 싶었지만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이미 나에게 주어진 주방 속 공간은 베이킹 재료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빵을 굽지 않은 날이면 치워 둘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가격도 저렴하고 접어서 보관할 수 있는 *천 커버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오븐에서 갓 나온 빵을 식힘망 위에서 식힌 후에 보관할 때는 위에 천 커버를 덮어서 보관하게 되었다. 스테인리스 볼에서 천 커버로 넘어가니 이렇게 예쁠 수가 없어서 매우 만족하며 쓰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눈으로 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생각보다 많이 답답했다. (*제17화. 세상에 모든 물건들이 존재하는 이유 참고)


그리고 엄마와 언니는 천 커버를 들어서 무슨 빵이 있는지 확인을 했는데 아빠는 천 커버를 열어볼 생각도 하지 않으셨다. 또한 오늘은 이런 빵을 만들었다고 매번 천 커버를 열어서 한 명 한 명에게 설명하는 것도 귀찮았고 평소에 접하지 않았던 생소한 디저트도 많이 만들다 보니 적어도 오늘 만든 디저트의 이름은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유리 돔 커버를 구매할까 고민하다가 직접 보고 결정하자 하고 백화점에 입점되어있는 생활용품 브랜드를 찾아갔다. 유리돔 커버는 생각보다 들어 올리는 형식이 불편했다. 제과점이나 뷔페에서 보았던 반쯤 열 수 있는 형식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일단 보류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더 괜찮은 게 없을까 인터넷으로 뒤적거리고 있을 때에 내가 딱 원하던 제품을 하나 발견했다. 반만 열어서 사용할 수 있는 투명 아크릴 커버 아래엔 원목 박스와 함께 트레이까지 있는 구성의 브레드 박스였다. 정말 '이거다!' 싶었는데 한 번에 구매할 수 없었던 건 가격 때문이었다. 잡아놓은 예산은 2만 원대였는데 브레드 박스는 무려 5만 원대였던 것이다. 베이킹을 시작하고 나서 자잘하게 나가는 재료를 구매하느라고 생각보다 많은 지출이 있었기 때문에 며칠을 고민을 했지만 아무리 온갖 사이트를 찾아보아도 이것 만큼 내 마음에 드는 건 없었다.


그래도 음식이 들어가는 것이고 오래오래 쓸 예정이기 때문에 이왕이면 제대로 된 걸 사보자 하고 나 자신을 설득해서 눈 딱 감고 구매 버튼을 눌렀다. 주문제작이라고 해서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배송이 일찍 왔다. 너무나도 큰 박스가 와서 혹시 내가 엄청난 걸 주문한 게 아닐까 혹은 잘못 온 것이 아닐까 하고 긴장했는데 뜯어보니 안전 포장 덕이었고 제품은 내가 딱 원하던 사이즈여서 마음에 쏙 들었다. 한 번 닦은 뒤에 말리는 겸 나무 냄새를 뺄 겸 해서 자는 동안 베란다에 놓고 다음날 가족들이 모두 나간 사이 브레드 박스를 꺼내보기로 했다.


브레드 박스에 들어갈 첫 디저트로는 코코넛 마카룬을 선택했다. 동글동글하고 갈색빛이 도는 고소한 코코넛이 원목 브레드 박스와 잘 어울리다고 생각을 했다. 코코넛 마카룬을 만든 뒤에 트레이 위에 유산지를 깔고 코코넛 마카룬을 하나씩 정성스레 넣어주었다. 그리고 빨간색 체크무늬 식탁보를 꺼내와서 식탁 위에 깔고 브레드 박스를 올린 뒤 겨울에 딱 맞는 포인세티아 화분을 옆에다가 장식해주었다.


집 안에 작은 카페가 만들어졌다.

이 카페의 캐치프레이즈는 '모든 디저트는 무료! 언제나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습니다!' (흐뭇)



그리고 오늘 만든 것이 어떤 디저트인지 알려주고 싶어서 유리에 쓰는 지워지는 하얀색 펜도 인터넷으로 구매를 했다. 마카롱 집 가면 진열장 위에 '우유 마카롱 3.0' 이런 식으로 써져있는 게 너무 예뻐 보였는데 이렇게 쓰고 있으니 마치 디저트 카페 타이쿤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재미있었다. 가족들의 반응은 매우 매우 좋았다.  눈에 디저트들이 보이니까 좋고 마치 카페 같다며 예쁘다고 좋아했다. (물론 부모님은 내가 이걸 5만 원대를 주고 샀다는 사실을 모르시지만...)


브레드 박스까지 갖추고 나니까 이제야 진짜 홈베이킹이 시작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베이킹은 예행연습에 불과했다. 디저트를 구워 브레드 박스 안에 넣고 유리에 이름을 쓸 때면 나만의 작은 카페를 갖게 된 것 같아 너무 행복했다. 앞으로 이 브레드 박스에 어떤 디저트를 넣을까 생각하면서 매일매일 꽉꽉 채워 넣자고 다짐했다. 좋은 소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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