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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Dec 12. 2020

[그빵사]41. 잉글리시 마들렌 (2)

레트로 갬성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잉글리시 마들렌을 만들기 위한 재료 준비는 처음에는 매우 순조로웠다.


많이 만들어 봤던 기본 마들렌 레시피라서 능숙하게 계란을 깨서 무게를 재고, 계란 무게와 같은 양의 설탕, 버터, 박력분을 준비했다. *박력분엔 베이킹파우더를 넣고 함께 체로 쳐주면 반죽 준비는 끝이 난다. 그다음엔 겉면을 장식할 라즈베리 잼과 코코넛 가루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해외 영상에서는 *self raising flour을 쓰는데 검색해보니 박력분+베이킹파우더가 섞인 제품이라고 해서 국내 마들렌 영상을 참고해서 비율을 조절했다.)



방금 전에 사 온 라즈베리 잼 뚜껑을 따려고 하는데 온갖 힘을 줘봐도 굳게 닫힌 뚜껑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무장갑을 끼고 돌려봐도 승모근이 파열되는 느낌이 날 정도로 온몸으로 감싸서 돌려봐도 열리지 않았다. 잼 뚜껑을 열려고 했던 손은 뚜껑을 쥔 곳이 파랗게 멍이 들었다.


멍든 손을 보면서 잉글리시고 뭐고 올 스탑을 한 채로 가만히 앉아서 진정시키고 있는데 갑자기 아주 먼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되면 그땐 어쩌지?' 나름 젊다면 젊은 30대 초반인 나도 딸 수도 없는데 할머니가 되면 당연히 못 따는 거 아닌가. 이런 제품이 어떻게 시중에서 보편적으로 판매되는 제품이란 말인가! 생각해보면 가끔가다가 물 뚜껑을 따는 것도 힘겨울 때도 있다. 물론 안정성을 위한 거라지만 악력이 약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잼 뚜껑 하나 따지 못해서 잉글리시 마들렌을 만들지도 못하는 것이 나의 미래인가! 라며 아직 오지도 않은 (하지만 곧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다가 저녁에 아빠가 들어오시면 부탁하기로 하고 오늘 베이킹은 접기로 하던 때였다. 잠에서 깨신 엄마께서 잼 뚜껑을 한번 돌려보시더니 이건 도저히 안 열린다면서 인터넷에서 본 방법을 하나 알려주셨다.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인 다음에 냄비를 잼 뚜껑에 몇 초간 올려두었다가 떼고 돌려주면 바로 따진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게 될까 반신반의하면서 포트에 물을 끓여서 냄비에 담고 라즈베리 잼 위에 올려놓고 10초를 세었다. 그리고 뜨거우니 고무장갑을 끼고 살짝 돌렸더니 '뽁!' 하는 소리가 나면서 힘은 1도 안 들이고 쉽게 뚜껑이 따졌다. (어머나!!) 발견한 사람도 천재고, 그걸 기억했다가 알려주신 엄마도 천재다. 잼 회사는 괘씸하지만 맛본 라즈베리 잼은 꽤나 맛있어서 혼자 용서하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잉글리시 마들렌 만들기는 시작이 되었다. 버터와 달걀, 설탕, 바닐라 익스트랙 그리고 박력분과 베이킹파우더를 넣어서 섞으면 반죽 완성! 빵 틀은 6구 부채 모양 마들렌 틀과 낱개인 1회용 머핀 틀을 사용했는데 두 개를 한꺼번에 굽고 싶은 마음에 낱개 머핀 틀을 평평한 곳에 올리지 않고 무리하게 넣었더니 부풀어 오르면서 무게가 한쪽으로 쏠려 이상한 모양이 되었다. 부채 모양 마들렌은 플레인으로 먹기로 하고, 머핀 틀에 있는 것만 잉글리시 마들렌으로 만들기로 했다.


찌그러진 마들렌을 틀에서 꺼낸 후 식히고 난 후에 포크로 밑바닥을 찍으려고 했는데 빵이 바스러지는 바람에 (좀 더 식혔어야 했나) 그냥 손으로 아래 부분을 잡고 겉면에다가 전자레인지로 녹인 라즈베리 잼을 발랐다. 그다음엔 그릇에 담아둔 하얀색 코코넛 가루를 돌돌돌 돌려가면서 묻혀준 뒤 마지막으로 체리를 올려 주었다.


한 2미터 정도 멀리 떨어져서 흐린 눈으로 보면 흰색의 코코넛 가루와 빨간색의 체리로 인해 괜찮아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가까이서 보면 찌그러진 원형 모양인 데다가 잼과 코코넛이 덕지덕지 바른 모양으로 굉장히 이상했다. 그리고 체리는 반으로 자르지도 않고 그냥 그대로 올려줘서 움직일 때마다 떨어졌다. 디저트 접시에 최대한 예쁘게 담아 엄마께 짠! 하고 보여드릴 때도 또르륵 하고 흘러내려 바닥에 나뒹굴어서 다시 체리를 가져와서 엄마 앞에서 올려드렸다.



7살 꼬마가 만든 듯한 (꼬마가 더 잘 만들었을지도) 잉글리시 마들렌의 맛은 생각보다 라즈베리 잼과 코코넛의 합이 독특했다. 둘 다 낯선 재료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새콤하면서도 뒤끝 맛이 고소하고 달달했다. 아마 잼만 발랐더라면 너무 달아서 많이 못 먹었을 것 같은데 코코넛이 중화를 시켜주는 듯했다. 생각보다 맛있었는데 모양이 너무 이상했는지 집에 돌아온 언니도 아빠도 눈길을 안 주시길래 아주 친절하게 접시에 하나씩 담아서 눈 앞에 가져다 드렸다. 원뿔대 모양의 틀이 있었으면 더 예뻤을 텐데! 라며 빵 틀 탓을 해보았다.


잉글리시 마들렌을 만들어보면서 또 다른 레트로 디저트는 뭐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때의 화려한 색감과 따뜻한 감성이 갖는 분위기는 정말 매력적이라서 또 한 번 반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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