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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Dec 26. 2020

[그빵사]55. 부쉬 드 노엘 (2)

행복한 순간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아침에 눈을 뜨니 주방이 시끌시끌했다.

부모님께서 크리스마스 아침으로 무려 리소토와 탕수육을 하고 계신 것이었다. (무슨 조화?) 우리 집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삼겹살도 구워 먹는 집이라서 당황하지 않고 나와 언니는 당연한 듯 식탁에 앉았다. 다만 놀란 게 한 가지 있다면 아빠께서 함께 요리를 하고 계신 것이었다. 엄마와 아빠께서 만드신 맛난 아침을 온 가족이서 오손도손 먹고 난 뒤 설거지를 하고 커피타임을 갖기 전에 언니가 물었다.


"바로 케이크 먹어? 아니면 조금 있다 먹어? 커피를 언제 마실지 고르고 있어."

"음... 시간이 좀 걸려. 한 3~4시간 뒤에 먹을 수 있을걸."

"그렇게 오래 걸려? 너 혹시 그... 통나무 모양인 부쉬... 드... 뭐 만드냐?"

"...?!"


단번에 내가 만드려던 케이크를 들키고 말았다. 어떻게 3-4시간 걸린다는 말이 부쉬 드 노엘로 생각이 이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혹시 나만 부쉬 드 노엘을 모르고 있었나?) 참고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겉면에 나무껍질 느낌을 낼 초코 크림을 만들려면 생크림을 끓인 후 다크 커버춰(초콜릿)를 넣고 녹인 후에 3시간 정도 식혀서 꾸덕하게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초코크림을 만든 후에 랩을 씌워 차가운 베란다에 놓고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너무 굳지 않도록 크림을 주걱으로 저어주었다.


그 사이 케이크를 올려놓을 그릇을 골랐다. 엄마의 그릇장을 열어서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알맞은 평평한 접시를 찾아보았다. 간추려서 두 개의 후보를 골라보았는데 하나는 흰색 바탕인 타원형 모양의 포트메리온 접시로 초록색 풀과 꽃이 그려져 있었다. 다른 하나는 무늬가 없는 빨간색 원형의 에밀앙리 접시였다. 포트메리온 접시가 케이크와 어울리는 것 같았으니 크기가 작은 것 같아서  훨씬 더 큰 빨간색 에밀앙리 접시를 선택했다.


생각보다 베란다가 엄청 추웠는지 크림은 금세 꾸덕꾸덕하게 굳었다. 너무 굳으면 핸드믹서로 풀어야 한다고 해서 예상보다 빨리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냉장고에서 떡볶이 떡 아래 찌그러져있던 초코 롤 케이크를 꺼내서 모양을 다시 잡아주었다. 바로 모양이 잡히는 거 보니 찌그러진 지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겉면의 유산지를 풀어서 왼쪽 끝을 잘라내고 모양을 확인했다. 모양은 잘 잡혔는데 솔티 캐러멜 롤케이크 때처럼 크림이 조금 녹아 있었다. 원랜 롤케이크 속에서 단단하게 모양이 잡혀야 하는데 내 건 녹아서 가운데가 쏙 파였다.

휘핑을 더 단단하게 했어야 하는 건가, 아니면 롤 시트가 미처 식지 못해서 크림이 녹은 건가 온갖 원인을 생각해보면서 롤 케이크의 오른쪽 부분은 손가락 하나 길이로 크게 잘랐다.


빨간색 원형 접시에 양 끝을 잘라낸 롤 케이크를 놓고 그 위에 손가락 길이만큼 자른 부분을 크림이 위로 보이게끔 올렸다. 그런데 너무 크게 잘라서 올렸는지 아래에 있던 롤 케이크가 무게에 의해 찌그러져서 크림이 새어 나왔다. 위에 올린 케이크를 떼어서 반을 잘라 다시 올렸다. 그다음은 드디어 기다리던 초코크림 장식 시간이었다. 작은 버터나이프를 가져와서 초코크림을 조금 떼어내서 겉면에다가 최대한 거칠게 바르기 시작했다. 나무껍질 느낌이 나야 하기 때문에 매끈하게 바르는 것보다는 나이프 자국이 남게끔 바르는 게 특징이다.  아래에 있던 케이크는 가로로 무늬를 내주고, 위에 올린 케이크는 세로로 무늬를 내주었다. 이것만으로도 제법 통나무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다음은 눈이 내린 것처럼 장식하기 위해 데코 화이트를 조그마한 체에 넣어서 진한 갈색의 통나무 케이크 위에 통통통 뿌려주기 시작했다. 데코 화이트를 알게 된 건 지난번 연유 크림빵 위에 슈가 파우더로 장식했을 때 시간이 지나자 슈가 파우더가 녹는 걸 보았다. 원래 슈가파우더로 장식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싶어서 검색해보니 데코용으로 쓰는 파우더가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슈가 파우더랑 똑같이 생겼지만 슈가 파우더는 녹는 반면 데코 화이트는 녹지 않아 장식을 할 땐 데코 화이트를 따로 쓴다는 글을 보고 재료를 살 때 함께 사 왔다. 정말 시간이 지나도 계속 눈이 내린 것처럼 그대로 있었다. (너무 신기한 베이킹 재료의 세계!)


눈 쌓인 장작 위에 크리스마스 오브제 장식을 꽂아 주었다. 금색의 종이 가운데 매달려있고 빨간 리본이 묵여 있는 초록색 리스와  Merry Christmas 글씨만 적혀있는 오브제가 한 쌍이었다. 역시 오브제가 있으니 더욱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났다. 이만해도 괜찮지만 어딘가 심심해 보였다. 원래는 버섯 머랭으로 장식을 하거나, 허브 같은 걸로 이끼 같은 걸 표현한다고 하는데 그런 디테일까지는 생각하지 못해서 냉장고에 있던 잉글리시 마들렌을 위해 사두었던 체리로 장식해보기로 했다. 체리 4개를 꺼내서 하나는 통나무 위 하얀색 크림 위에 올리고 3개는 생크림을 아래에 발라서 통나무 앞에다가 쪼르르 나란히 올려주었다.


드디어 이틀에 걸쳐서 만들었던 부쉬 드 노엘이  완성되었다. 너무 기뻐서 "엄마!! 아빠!! 언니!!! 나와봐!!!!"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부모님이 무슨 일이 난 줄 알고 깜짝 놀라셨다. 거실 테이블에 체크무늬 천을 올린 후 부쉬 드 노엘이 담긴 빨간색 접시를 올려주었다. 부모님은 내가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든다고 했을 때 당연히 일반적인 원형 케이크를 만들 거라고 생각하셨는데 너무 의외의 모양이 나와서 놀랬다고 하셨다. 이름도 어려운 부쉬 드 노엘을 보고 온 가족이 케이크가 예쁘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솔직히 내가 봐도 좀 잘 만든 것 같아서 너무 뿌듯했다. 베이킹을 시작한 이래로 제일 기뻤던 순간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맛은 초콜릿 시트에 생크림을 넣고 또 밖에 초코 크림으로 장식을 해서 너무 달면 어쩌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달지는 않았다. 통나무 케이크는 몇 분만에 바닥에 닿은 눈처럼 사르르 사라졌다.


생각해보면 지난 몇 년과 똑같은 크리스마스였다. 똑같이 집에서 가족들이랑 보냈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케이크를 먹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직접 케이크를 만든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케이크를 먹으면서 이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어떤 게 그렇게 행복했냐고 묻는다면 정성스레 준비한 케이크를 재미있게 구울 수 있었고, 또한 맛나게 먹어주는, 예쁘다고 칭찬해주는 가족이 있어서 그렇게 행복했나 싶기도 하다. 정확하게 설명하긴 힘들지만 참으로 행복한 크리스마스였다. 역시 행복이라는 건 스스로 움직였을 때 살며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부쉬  노엘과 함께한 행복한 크리스마스!

정말 맛있었어요!

그릇까지 싹싹 비웠어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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