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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Jan 13. 2021

[그빵사] 70. 인스타 갬성으로 애플파이 (1)

인스타 갬성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인스타그램을 보다 보면 관심사가 베이킹이라서 그런지 유독 베이킹에 관련된 추천 피드들이 많이 뜬다.  다들 집에서 어찌나 사진을 그렇게 감성 있게 찍는 건지 마치 잡지 화보를 보는 듯했다. 다양한 피드 중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건 순백색의 테이블에 무늬가 있는 천을 깔고 베이킹한 디저트를 예쁜 접시에 담아 올리고 주변은 책이나 꽃으로 장식하는 사진이었다. 심플 이즈 더 베스트를 이길자는 없는 건지 수많은 피드 중에서도 깔끔한 사진이 오히려 눈에 띄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나는 만든 작업물을 작업대 위 혹은 무늬가 화려한 식탁 위에서 찍었었는데 (feat. 엄마 취향) 이제는 나도 심플한 인스타 갬성샷으로 찍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갬성샷과 비슷한 분위기의 흰색 미니 테이블을 때 마침 세일할 때 19,900원에 주문을 했는데 주문 폭주로 품절되어서 (다들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주문한 테이블을 해를 넘은 1월로 넘어간 저번 주 일요일에 배송을 받았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오븐 장갑도 그렇고 2020년에 내가 보낸 선물이 2021년에 두 개나 받았다. 내돈내산이지만 괜히 기분이 좋았다. (잘 쓸게! from me to me) 테이블은 생각보다는 큰 사이즈여서 좋았다. 새 하얀 테이블 위에다가 아무거나 올려서 사진을 찍어도 화사하게 보정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테이블도 있고 큰 작업도 얼추 끝냈겠다 오늘은 베이킹을 해보기로 했다. 베이킹 메뉴는 바로 애플파이! 인스타그램 갬성 피드처럼 멋진 이유를 대고 싶었지만 사실 지금 냉장고에 있는 마지막 남은 사과 두 개를 빨리 써야 했기 때문에 선택권이 없었다. 그런데 어젯밤 작업하느라 늦게 자서 몸도 피곤한데 작은 타르트 틀 4개에 애플파이 뚜껑을 격자무늬로 땋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피곤해졌다. 파운드케이크를 만들까 어쩌나 하다가 애플파이를 워낙 좋아해서 차라리 그간 눈여겨보았던 15cm 파이 틀을 사기로 했는데 집 근처 베이킹 재료 샵으로 가서 파이 틀이 있으면 사고, 없으면 그냥 집에 있는 타르트 틀을 쓰기로 결정했다.


베이킹에 앞서 갬성샷을 위한 또 다른 준비할 소품이 있었는데 그것은 '키친 크로스'라는 것이었다. 인스타 피드나 베이킹 레시피 영상을 보아도 테이블 위에 천을 깔고 작업을 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이걸 뭐로 검색해야 하나 '식탁보' '테이블 천' 등 다양하게 검색해보다가 '키친 크로스'라는 용어를 발견했다. 내가 찾는 것이 딱 이것이었다. 손바닥 만한 작은 사이즈의 무늬 있는 천! 이것이 인스타 갬성을 돋보이게 해 줄 것임을 단박에 알았다. 그렇다고 또 산건 아니고 그냥 집에 있던 천을 잘라서 재봉틀로 모서리만 깔끔하게 접어 박아서 만들었다. 오랜만에 쓰는 재봉틀이라 그런지 커버 위로 먼지가 가득했지만 다행히도 잘 작동했다. 몇 년 전에 사서 몇 번 안 쓰고 창고행이었던 재봉틀을 아련하게 쓰다듬으면서 키친 크로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볍게 3개만 만들 생각이었는데 오랜만이라 그런지 일자로 박는데도 꽤나 버벅거렸다. (밑실, 윗실 넣는 것에서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었다.) 손가락에 피도 보고, 시간은 어느덧 1시를 향해가기에 일단 2개까지만 만들고 언니랑 분리수거하러 집 밖을 나간 김에 베이킹 재료 상점에 들렀다. 틀이 있는 코너로 가서 가면서 눈에 띄는 것 중에는 파이 틀이 없나 싶었는데 가까이 가니 은색의 동그란 파이 틀이 짠하고 존재감을 드러냈다. 사이즈는 큰 것, 작은 것 2개가 있었는데 내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쫙 핀 것이 15cm 정도 되니까 밑바닥이 그 정도 되는 지름으로 어림잡아서 큰 것을 골랐다. 정말 제빵 틀 최종_최종_진짜 최종_jpg 같은 느낌으로다가 구매를 했다. 


한동안 매섭게 추웠던 날씨가 조금 포근해지면서 쌓였던 눈이 녹은 거리를 걸으며 한 손에는 파이 틀을 들고 애플파이를 만들 생각에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당장 부엌으로 가서 어수선한 작업대 위를 아무것도 없게 정리하고 닦은 뒤 먼저 냉장고에서 오래 있었던 마지막 남은 사과 두 개를 꺼내왔다.


-(2)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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