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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Jan 15. 2021

[그빵사]72. 도라야키

AI는 몰라.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점심으로 재택근무하는 언니와 함께 스팸 마요 덮밥을 해 먹고 간식으로는 어떤 게 좋을까 하고 유튜브로 들어갔는데 홈 화면에 추천 영상으로 떠 있는 얇은 팬케이크 같은 도라야키가 눈에 띄었다. '도라야키'는 얇은 빵 사이에 팥 앙금이 들어가 있는 일본 간식이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전에 비행기 안에서 자막 없이 보았던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도라야키를 파는 장면이 떠올랐다. 먹어본 적이 있었을까? 왠지 알 것 같은 맛이기도 했다. 영상 댓글을 보니 영화 '앙'보다는 도라에몽 얘기로 가득했다. 도라에몽이 제일 좋아하던 간식이 도라야키라고 한다. 아... 그래서 이름이 '도라'에몽인가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헉...검색해보니 원작자가 도라야키를 워낙 좋아해서 도라에몽으로 이름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재료는 매우 간단했고 만드는 방법도 정말 쉬웠다. 간단히 말하면 팬케이크 반죽을 원 모양으로 2개를 구워서 가운데에 팥앙금을 넣으면 끝이었다. 심지어 오븐도 필요 없는 얼마 안 되는 '노오븐' 베이킹이기도 했다. (구울 땐 프라이팬을 사용한다.)


이렇게 간단한 레시피가 메인화면에 떠있다니! 유튜브 알고리즘도 내가 쉬운 레시피를 찾아다니는 걸 학습한 걸까. 지난번 단팥빵을 위해 사둔 팥앙금이 호두과자를 만들고도 가득 남아있어서 걱정했는데 잘됐다 싶어 도라야키를 당장 만들어보기로 했다. 반죽은 달걀에 설탕, 바닐라 익스트랙, 꿀을 넣고 섞은 다음 박력분과 베이킹파우더 그리고 베이킹소다를 체 쳐서 넣고 섞어준 다음 마지막으로 우유를 넣고 섞어주면 끝이었다. 이대로 15분간 실온에서 숙성을 시키고 난 뒤 프라이팬을 준비했다. 기름을 바른 뒤 걸쭉한 반죽을 한 국자 떠서 가운데에 천천히 떨어뜨렸더니 점성이 있어서 그런지 많이 퍼지지 않고 가운데에 동그랗게 모양이 예쁘게 잡혔다. 양이 너무 적은 건 아닌가 싶어서 한 국자를 더 떠서 넣었다. 그리고 기포가 올라오길 기다린 뒤 2분 후에 뒤집으면 된다고 레시피 영상에 적혀있었다. 초시계까지 보면서 인스타그램에 올릴 영상을 찍을 준비를 했다. 레시피 영상에서 보면 뒤집개로 딱 뒤집으면 정말 예쁜 갈색빛의 맨질한 면이 나와서 이 장면을 찍어보고 싶었다.


2분이 지나고 이제 뒤집을 차례였다. 뒤집개를 빵과 프라이팬 사이에 넣은 다음에 탁! 하고 잽싸게 뒤집어 줬는데 무슨 호떡처럼 얼룩덜룩하게 구워짐은 물론 타기까지 했다. 일단 뒷면까지 다 구운 다음에 식힘망 위에 유산지를 올려놓고 식혔다. 불이 너무 셌나 싶어서 불을 끄고 프라이팬을 식힌 뒤에 다시 시도하기로 했다. 다음엔 한 국자를 떠서 시간도 적게 하고 뒤집었는데 덜 타기만 하고 여전히 얼룩덜룩했다. 세 번째는 너무 빨리 뒤집었는지 미처 굳지 못한 반죽이 뒤집자마자 프라이팬에서 멀리 날아갔다. 네 번째는 시간을 조금 늘린 다음에 뒤집었더니 색은 고왔으나 쭈굴쭈굴하게 접히면서 역시나 마찬가지로 뒤집다가 반죽이 날아갔다. 반죽을 다 구웠더니 8개가 나왔는데 그중 그~~~ 나마 멀쩡한 건 단 2개뿐이고 (이것도 매우 이상함) 다른 건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반죽이 쉽다고, 레시피 영상에서 유튜버가 쉽게 뒤집는다고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구나! 그래 AI가 아무리 훌륭하다한들 이런 것까지 잡아 낼 수는 없겠지...! 인터넷에서 떠도는 우스개 소리로 AI가 선생님으로 대체될 수 없는 이유가 "AI는 니들이 이런 기본적인 것을 왜 틀리는 지를 몰라!"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선생님 저도 모르겠어요...! 제가 왜 도라야키를 못 만드는지...! 난이도 최하인 줄 알았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난이도 상인 레시피였던 것이었다. 여기서 그만둬? 말아? 고민을 하다가 아무래도 가스레인지 불이 센 게 원인인 것 같아서 다시 한번 반죽을 만들어서 이번엔 하이라이트 위에서 아주 약한 열로 해보기로 했다. 반죽을 만드는 게 너무 어려우면 시도조차 안 하겠는데 반죽 만드는 게 쉬우니 살짝 오기가 생겼다. 이미 정리한 재료들을 다시 꺼내와서 같은 방법으로 만든 뒤 숙성까지 시켜주었다. 그리고 그 사이 이 레시피가 아닌 다른 레시피로 굽는 방법만 찾아보기로 했다. 다른 숨겨진 비법 같은 게 있는 건가 싶었지만 그런 건 없었다. 다들 똑같이 하는데 왜 나만 그런 걸까. 블로그를 찾아봐도 다들 어찌나 예쁘게 만드는지... 왜죠...? 왜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거죠? 아니 왜 나만 못 만드는 거죠? 대답 없는 메아리만 돌아왔다.


마음을 가다듬고 두 번째 반죽을 굽기로 했다. 하이라이트를 1부터 10중에 1로 해놓고 반죽을 한 국자 떨어뜨렸다. 이제 됐나? 싶어서 뒤집으니 결과는 똑같았다. (아니 진짜 왜?) 아홉 번째 실패작이 나왔다. 열 번째는 모양은 그나마 동그랗게 나왔는데 구움색이 예쁘지가 않았다. 그냥 노란색에 갈색이 얼룩덜룩하게 묻어있었다. 혹시 반죽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싶어서 숟가락을 가져와서 한 숟가락을 떠서 네 개의 작은 원을 만들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그래도 프라이팬보다는 하이라이트가 조금은 나은 듯했다. 다음부터는 다시 한 국자씩 떠서 만들었는데 열두 번 만에 도라야키와 꽤나 비슷한 느낌으로 만들어졌지만 두 번째 만든 반죽을 다 쓸 때까지도 영상에서 나오는 완벽하게 고운 색이 나는 동그란 모양의 도라야키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모양도 색깔도 크기도 제각각인 사람 냄새(?) 나는 도라야키를 최대한 같은 사이를 찾아서 안에 팥 앙금을 넣어서 엄마께 시식을 부탁드렸더니 맛은 있는데 저번 단팥빵처럼 생크림이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건 미완성을 먹는 것 같다고. (엄마... 팥빵 좋아하셨는데... 내가 정보 업데이트가 안됐구먼) 언니도 전에 그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어서 보울을 가져와서 휘핑크림에 설탕을 넣고 금방 크림을 만들어 도라야키 사이에 팥과 함께 넣어주었더니 엄마는 엄지를 척하고 올리셨다. 나도 한 입 먹어보니 크림과 단팥의 조화가 정말 좋았다. 옛날에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조합인데 이 조합은 누가 발견했을까 참 궁금해졌다. 도라야키는 사진으로 확인해보니 1:32분에 시작해서 4시 33분에 끝났다. AI는 나를 이해 못할 것이다. 사실 나도 영상을 아직까지 이해 못했다. 그냥 물음표만 가득하고 해답을 찾지 못한 도라야키 만들기였다. (그냥 호떡 구워 먹자...)



호호호...왜 이렇게 나오는지 모르겠네요....^.ㅠ

다양하게 망한 도라야키들ㅎㅎㅎ

그래도 맛은 있었답니다! ㅎㅎㅎㅎ(다신 못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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