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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Jan 18. 2021

[그빵사] 75. 버터가 떨어졌다.

그래서 적어보는 나의 버터 히스토리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버터가 떨어졌다.

어제 모카 롤 케이크를 할 때만 해도 마들렌을 할 양은 남아있었는데 아빠께서 랍스터 갈릭 버터 구이를 하시면서 버터를 거의 다 쓰셨다. 마트에 가서 사 올까 생각해보았지만 창 밖을 보니 눈바람이 몰아치는 게 영 나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또한 인터넷에서 버터를 저렴하게 파는 걸 한 번 보았더니 마트에서 사는 게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버터 4개를 인터넷에서 주문한 뒤 수요일 도착 예정이라 노 버터 베이킹은 내일 해보기로 하고 오늘은 좋든 싫든 베이킹에 함께할 수밖에 없는 이 버터라는 녀석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한다.


베이킹에 사용하는 소금이 없는 '무염 버터'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홈베이킹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장을 봐오신 엄마께서 요리에 사용하실 버터를 사 오셨는데 잘못 사온 것 같다고 하셨다. 버터는 짭짤한 맛이 나는 것 하나밖에 없는 줄 알았던 때라 잘못 사 올 게 있나 싶어서 확인해보니 버터가 전혀 짠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세상에 뭐 이런 버터가 있나 싶어서 그냥 냉장고에 그대로 두었다. 얼마 뒤 가족들과 함께 카페에 갔는데 좀 출출해서 뭐 먹을 것 없나 하고 카페 메뉴를 보다가 '카야잼 토스트'라는 걸 보았다. 언니가 이게 그렇게 맛있다면서 추천하길래 사 먹었는데 진짜 정말 너무 맛있었다. 어쩜 이렇게 고소하고 달달할까 싶어서 집에 와서 만드는 방법을 찾아보니 카야잼이라고 하는 코코넛, 계란 등이 들어간 달콤한 싱가포르 잼을 바르고 무염버터를 썰어서 넣으면 끝이라고 했다. 무염버터? 지난번 엄마께서 사 오신 짠맛이 없던 버터가 무염버터인 것 같았다. (앙버터에 들어가는 버터도 무염버터라고 한다.) 당장 카야잼을 인터넷에서 구입해서 만들어먹었더니 아침 혹은 야식으로 간단히 먹기 딱 좋은 간식이 되어서 한동안 카야잼 토스트를 달고 살았다.


홈베이킹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무염버터를 사러 마트에 갔던 날이었다. 버터 코너를 찾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 버터 종류에 눈이 핑핑 돌았다. 빵에 그냥 발라먹을 수 있는 부드러운 버터, 내가 알고 있던 그냥 버터 (가염버터),  버터 대용이라는 마가린 등 세상 이렇게 많은 종류의 버터가 있었나 하고 놀랐다. '여기서 무염버터는 어떤 거지?' 패키지로는 구분이 가지 않아서 이름표를 보면서 '무염'이라는 단어를 찾아보았다. '서울우유 버터'라는 단어 옆에 괄호치고 '무가염'이라고 적혀있는 걸 발견했다. 빨간색 로고에 노란색 버터가 그려진 패키지를 예전 다쿠아즈 원데이 클래스를 들으러 갔을 때 본 것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이거다! 진짜 무염 버터라는 걸 파는구나 하고 느꼈던 신기함은 만원이 넘는 가격에 놀라움으로 금세 바뀌었다


"버터가 이렇게 비싼 거였어?"


왠지 서울우유라고 해서 훨씬 저렴할 것 같았는데 다른 수입산보다도 비싼 느낌이었다. 일단 제일 비싼 서울우유는 제외하고 가격표를 보면서 그중 가장 저렴한 8천 원 대의 무염 버터를 사 왔다. 혹시 저렴해서 맛이 없는 건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처음으로 구운 마들렌은 맛이 먹어본 맛과 딱히 다르지 않았다. 왜 얘는 맛도 있는데 저렴한 건지 이유를 두 번째로 버터를 사러 갈 때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처음에 샀던 버터는 250g에 8천 원이었던 것이었다. 서울우유 버터는 454g에 만원 대였던 것이었고! (세상에나!) 패키지 크기가 그렇게 차이가 많이 안 나서 당연히 양도 비슷한 줄 알았다. 제일 비싼 버터를 먹고 있었구먼!! 그다음부턴 꼼꼼하게 g 수까지 따져서 최대한 저렴한 버터를 사 먹었다.



그러다가 한 번은 나도 유명하다는 '고메 버터'라는 걸 써보고 싶었다. 마카롱 가게 인스타를 볼 때면 고메 버터가 가득한 사진을 올리면서 [우리 가게는 최고의 풍미를 가진 고급 버터인 고메 버터를 사용합니다] 같은 문구를 종종 보았었다. 이게 그렇게 맛있는 건가? 하고 찾아보니 500g에 12000원 정도로 (할인하면 9000원 대도 있다.) 아이스박스에 배송비까지 추가하면 꽤나 가격이 나가기에 꾸준히 베이킹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을 것 같고 한번 경험해보는 의미에서 언니한테 사달라고 했더니(힛힛) 듣고 계시던 엄마께서 주문을 해주셨다. 배송이 온 고메 버터를 보니 너무 신이 났다. 이것이 그 고급 버뤄인가! 겉면을 감싼 포장지도 금색이다. 뭔가 다를까 싶었지만 미각이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라서 버터에 따른 풍미 차이는 그렇게까지 느끼지는 못했다. 그냥 자를 때 슥슥 부드럽게 잘리는 거랑 색 차이가 날 뿐이었다. 후에는 고메 버터 한 단계 아래라는 앵커 버터도 사용해보기도 했지만 느낌은 비슷했다.


매일 혹은 이틀에 한 번꼴로 베이킹을 하다 보니까 버터는 순식간에 없어졌다. 홈베이킹의 가장 큰 장애물이 버터라더니 몇 번하고 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처음엔 베이킹을 하는 재미에 푹 빠져서 크게 느끼지는 못했으나 지속적으로 나가는 만원이라는 돈이 쌓이고 쌓여서 부담이 되었다. 450g짜리를 사서 4번 정도 하면 거의 일주일에 버터 한통씩을 쓰는 격이었다.  버터의 가격 때문에 베이킹이 주춤하려던 찰나 다행히도 부모님께서 온 가족이 먹는 건데 버터를 사주시겠다며 코스트코를 가서 장을 봐오실 때마다 서울우유 버터 3개짜리를 사 와주셨다. 그렇게 온 가족이 협심 하에 베이킹은 끊기지 않고 지속될 수 있었다. 가장 최근에 가신 마트에 한 종류밖에 없던 프리차드 버터 200g짜리 3개를 사 오셨고 마지막 남은 버터를 아빠께서 쓰신 것이었다. 원래는 인터넷에서 앵커 버터가 정말 저렴해서 사보려고하니 최저가인 곳은 1인당 1개 구매제한이 있고 구매제한이 없는 곳은 5천 원대였다. 종종 구매하던 베이킹 재료 사이트로 가보니 앵커 버터는 인터넷 최저가보다 비쌌지만 500g의 양을 가진 기글리오 버터라는 것이 5480원으로 할인 이벤트를 하고 있어서 고심 끝에 4개를 주문을 했다. (내돈내산) 500g짜리 버터 4개라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었다. 이걸 다 쓰고 또 주문할 날이 오겠지 하면서 버터가 오기만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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