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버터 베이킹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어제 예고(?)했던 대로 오늘은 노 버터 베이킹을 해보기로 했다.
노 버터 베이킹 후보는 세 가지였는데 잼 쿠키, 초코 케이크, 그리고 대만 카스테라 였다. 원래는 초코 케이크를 하려 했는데 남아있던 코코아 가루가 레시피 정량의 반 밖에 없기도 하고 예전에 언니가 스쳐 지나가는 말로 카스테라를 해달라고 했던 게 기억이 나서 대만 카스테라로 노선을 바꿨다. 앞치마를 입으며 대만 카스테라를 만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본 레시피 영상은 파운드 틀을 이용해서 만들지만 같은 양으로 원형 1호 틀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재단된 유산지가 있는 원형 1호 틀을 선택했다. 준비 단계에서 영상을 한번 쭉 보는데 전 과정이 우유와 식용유를 데운 것이 식기 전에 빠르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해서 모든 준비를 미리 해두기로 했다. 설탕과 소금을 계량하고 나서 미니 법랑 냄비에 우유와 카놀라유를 계량하고 박력분은 미리 체 쳐두었다. 그다음엔 계란 3개를 노른자 흰자로 나눠야 했는데 두 개는 잘 분리하고 나서 마지막 하나의 계란 노른자가 실수로 깨져서 흰자에 흘러들어 갔다. 건져내긴 했지만 노란빛이 군데군데 보였지만 그렇게 많은 양도 아닌데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제발) 그동안 노른자와 흰자를 함께 휘핑하는 공립법으로 롤케이크 시트를 만들었으니 이 정도 양은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아님)
먼저 우유와 카놀라유를 넣은 법랑 냄비를 불에다 올린 뒤 우유가 끓어올라 식용유를 반 정도 덮으면 불을 끄고 다른 보울로 옮겨서 바닐라 익스트랙을 섞은 노른자를 두 번에 나눠서 넣고 손 거품기로 열심히 섞어주었다. 다음엔 박력분을 넣고 섞으면 노른자 반죽은 끝이 난다. 이제는 흰자로 머랭을 올릴 차례였다. 핸드믹서를 꺼내서 날을 끼운 뒤 흰자가 담긴 보울에 설탕과 소금을 넣으며 휘핑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거품이 잘 올라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게 거품이 일정량 올라오다 말고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혹시 노른자가 들어간 것 때문에 늦게 올라오는 건가?' 더욱 많은 시간을 잡고 있었지만 거품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검색해보니까 나와 비슷한 질문을 한 홈베이커들이 많았다. '흰자에 노른자가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머랭이 안 되나요?'라는 질문에 대답은 '그렇다.'였다. 야박한 흰자 같으니라고... 흰자에 노른자나 물이 들어가면 절. 대.로 머랭이 올라오지 않는다고 적혀있었다. 베이킹에도 가끔 융통성 있게 갈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머랭에서는 예외가 없는 것 같았다. 아예 흰자에 노른자를 섞어서 공립 법으로 바꾸는 방법도 있지만 이미 노른자 반죽을 만들었으니 이 방법은 쓸 수가 없었다. [베이킹에서 괜찮다고 생각했을 때 절대 괜찮은 적이 없다.]라는 것을 매번 몸소 느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만다. (반성만 76번째)
막상 재료를 버리려니 너무 아까웠지만 그래도 싹 다 버리고 보울과 핸드믹서 날을 씻고 물기도 꼼꼼하게 제거해주었다. 다시 계란 3개를 꺼내와서 이번에는 아주 조심스럽게 노른자 흰자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동그란 노른자 3개는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고 흰자에 설탕을 넣어가면서 핸드믹서로 거품을 내기 시작했다. 확실히 느낌 자체가 달랐다. 거품이 금세 올라와서 레시피 영상에서 본 부드러움을 가진 머랭을 만들었다. 시간이 오래 흘러서 살짝 굳은 노른자 반죽을 손 거품기로 푼 다음 머랭을 3번에 걸쳐서 넣어서 잘 섞이도록 해 주었다. 상아색의 반죽이 완성되고 미리 유산지를 깔아놓은 원형틀을 가져와서 반죽을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면서 팬닝을 해주었다. 그리고 베이킹에서 처음 해본 방식인 '중탕'의 방법으로다가 굽기 위해 높이가 있는 직사각형 팬을 가져와서 키친타월을 한 장 깔은 뒤 원형틀을 가운데에 놓고 커피포트로 데운 물을 직사각 형틀에 넣어주었다. 과연 중탕으로 굽는 게 그냥 굽는 것과 많이 다를까 궁금해졌다.
150도로 예열한 오븐에다가 팬을 넣어준 뒤 45분 타이머를 맞추고 중간중간 확인하는데 반죽이 빵실 빵실 올라오는 게 너무 귀여웠다. 40분쯤 지나서 확인했을 때 팬을 넘어서 솟아오른 카스테라는 다행히 터지지는 않았지만 윗 열선이랑 너무 가까운 나머지 구움색이 많이 진하게 나는 듯하여 남은 5분은 아래 열선만 켜서 구워주었다. 오븐에서 나온 카스테라를 식힘망 위에 꺼낸 뒤 바로 유산지를 제거해주고 8조각으로 나눠준 뒤 커피와 함께 시식을 해 보았다. 포실포실하고 가벼운 느낌이 드는 것이 제과점에서 먹던 카스테라와는 느낌이 좀 달랐다. 시중에서 파는 대만 카스테라를 먹어 본 적은 없어서 비교는 하기 힘들지만 마치 치즈케이크 같은 느낌으로 매우 부드러웠다. 버터가 들어가지 않아도 이렇게 케이크가 만들어지는구나 신기하긴 했는데 역시 내 입맛엔 묵직한 버터가 들어간 게 더 좋은 것 같다. (웃음) 버터가 언제 오려나...
오븐이 작아서 구움색이 많이 진하게 났네요ㅠ (타진 않았어요!)
노버터 베이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