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나요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띵똥♪ 문자가 왔다.
엊그제 주문했던 나의 버터가 18시~20시에 도착 예정이라는 문자였다. 수령지를 '문 앞'으로 선택하고 그럼 오늘 베이킹은 또 한 번 노 버터 베이킹을 해야 하나 하고 누워있던 찰나 또다시 문자가 왔다. [고객님의 소중한 상품이 도착되었다는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인수자(위탁 장소) : 문 앞] 오잉? 하고 문을 열고 나가보니 큰 스티로폼 박스가 눈 앞에 보였다. 생각보다 일찍 온 택배에 마치 산타한테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신이 났다. 오늘은 버터가 들어간 베이킹을 할 수 있겠구나! 택배를 뜯었더니 아이스팩과 함께 들어있는 파란색과 은색이 반씩 섞여있는 포장지의 기글리오 버터가 두 개씩 묶여서 나를 맞이했다. 나의 호들갑에 방에서 나온 언니에게 이딸뤼~에서 온 나의 버터를 소개했다. 무려 500g짜리 버터가 4개가 있다고! (뿌듯) 그리고 함께 주문한 바닐라 익스트랙과 평소에 정말 필요했지만 살까 말까 백만 번 고민한 25cm 빵칼도 자랑했다. 집에는 15cm짜리 밖에 없어서 그동안 파이나 케이크를 자를 때 불편했기에 버터를 주문하면서 같이 주문을 했다.
언니랑 점심을 먹으면서 오늘 베이킹을 뭐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마들렌? 파운드케이크? 어제 카스테라를 만들었더니 오늘은 영 끌리지가 않았다. 아주 찐득하고 당이 가득한 보기만 해도 묵직해지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갑자기 초코 쿠키가 확 당긴다고 말했더니 언니가 스모어 쿠키는 어떻냐고 했다. 사실 이 언니는 스모어 쿠키를 몇 주 전부터 만들어달라고 노래를 불렀지만 마쉬멜로우도 없을뿐더러 초반에 너무 어렵게 만들었던 기억밖에 없어서 단칼에 거절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스모어 쿠키도 다시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버터 때문인가? (웃음) 하지만 마쉬멜로우는 물론 코코아 파우더도 조금밖에 안 남아있고 초코칩마저 다 떨어졌기에 재료를 사러 버스 타고 홈플러스를 다녀올까 했더니 언니가 "내 차로 같이 가서 사줄게"라고 했다. 언니의 점심시간이 40분밖에 안 남았는데 그 사이 다녀올 수 있을까 걱정했더니 당연히 다녀올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길래 먹던 점심 상은 그대로 내버려 두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마스크를 쓰고 지하주차장으로 갔다. (마스크가 이럴 때 참 편해) 평일 오후라 차도 없어서 5분 만에 마트에 도착을 했다. 바로 베이킹 코너로 직진해서 초코칩과 코코아 가루를 고르는데 언니가 "이왕이면 2개씩 사"라고 하는 게 아닌가! 차로 데려다주고 재료도 두 개씩 사준다니... 스모어 쿠키가 그렇게 먹고 싶었었나? (웃음) 장난이고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두 개씩 품 안에 안았다. 그리고 마쉬멜로우를 찾아다니는데 젤리 코너 옆에 '마쉬멜로우는 이곳에 모여있습니다'라는 푯말이 있어서 봤더니 내가 사려던 하얀색의 빵실 빵실한 록키 마운틴 마쉬멜로우가 맨 위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푯말까지 있다니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만들었겠지 하면서 생각보다 사람들이 마쉬멜로우를 많이 사는구나 하고 언니랑 신기해했다. 다들 캠핑가서 스모어를 만들어먹나 핫초코에 넣어 먹나 아니면 나처럼 스모어 쿠키를 만들어먹나 궁금했다. 아무튼 이것도 품에 안아 계산을 하고는 바로 출발해서 점심시간을 무려 5분이나 남긴 채로 여유롭게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언니 알라뷰)
언니는 일을 하러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새로운 버터를 꺼내 계량을 하고 계란 하나도 꺼내서 따뜻한 실온에서 녹이는 사이 티비로 넷플릭스를 켰다. 오랜만에 지난번 만들었던 도라야키가 나오는 영화 '앙:단팥 인생 이야기'를 보고 싶어서 찾았으나 넷플릭스에는 없는 것 같았다. 다른 베이킹 영화는 뭐가 있나 하고 보다가 '나디야의 행복한 베이킹'이라는 것을 클릭했더니 너무 행복하게 베이킹을 하는 예고편이 나왔다. 영화가 아닌 tv 프로그램인 것 같은데 2월 12일에 시작이라고 해서 너무 아쉬웠지만 2월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꼭 봐야지) 시간이 흐르고 랩을 씌운 버터를 눌러서 확인해보니 손가락이 푹 들어갈 정도로 말랑해야 하는데 반 정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좀 더 기다릴까 하다가 전자레인지에서 20초 정도 돌려서 말랑말랑하게 만든 후 쿠키 베이킹을 시작하기로 했다. 핸드믹서로 버터를 푼 뒤 황설탕, 흰 설탕을 넣고 다시 핸드믹서로 섞어준 뒤 계란 한 개를 깨서 바닐라 익스트랙과 함께 넣어서 섞어 주었다. 다음엔 박력분과 코코아 가루, 베이킹소다 그리고 소금을 함께 체에 걸러서 넣어준 뒤 주걱으로 섞어주면 좀 뻑뻑하긴 하지만 점점 진한 갈색 빛의 반죽으로 변해갔다. 그다음 초콜릿 칩을 넣어 섞은 뒤 냉장고에서 1시간 동안 휴지를 시켜주었다. 넷플릭스로 다른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맞춰놓은 타이머가 울릴 때 냉장고에서 반죽을 꺼내서 6등분으로 나눠 주었다.
점심시간에 사 온 마쉬멜로우를 뜯어서 6개를 오븐 팬 위에 올려놓고 코코아 반죽을 동그랗게 빚은 다음 가운데를 푹 눌러서 공간을 만들어 마쉬멜로우를 쏙 넣은 뒤 마쉬멜로우를 다 덮지 않도록 주의하며 조심스럽게 가장자리만 덮어주었다. 6개 모두 마쉬멜로우를 넣어 준 다음에 랩을 씌워서 또다시 냉장고에서 30분간 휴지를 시켜주어야 하는 데 25분이 지나고 5분 동안은 오븐 예열을 시작했다. 타이머가 울리고 드디어 오븐에 넣을 시간이 되었다. (두근두근) 처음 스모어 쿠키를 만들 때 마쉬멜로우가 다 탔던 게 생각나서 오븐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때를 생각하자면 홈베이킹을 시작하고 두 번째였는데 경험도 없고 기초 지식조차도 없던 터라 예열도 하지 않았고 신기해서 사진 찍는다고 오븐 문을 열고 닫고를 굉장히 자주 했었다. (하하하) 그러니 베이킹이 망하지! 반죽은 참 잘했던 것 같은데 오븐에서 망한 게 너무 속상했던 것이 단 몇 개월 전인데도 참 오래된 추억같이 느껴졌다. 8분 정도 지난 후에 확인해보니 동그랗던 반죽은 많이 퍼져있었고 마쉬멜로우 부분은 예쁜 갈색빛으로 구움색이 났다. 2분을 더 기다린 후에 꺼내서 테프론 시트 채로 식힘망 위에 올려서 식혀주었다. 마쉬멜로우도 오동통한 게 정말 정말 잘 구워진 것 같아 배실배실 입가에 미소가 났다. 언니의 재택근무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나서 언니와 함께 쿠키를 반으로 쪼개서 마쉬멜로우가 쭈욱 하고 늘어나는 장면을 핸드폰으로 촬영을 하고는 드디어 시식을 했다. 결과는? 말해 무엇하리! 진짜 진짜 진짜 진짜 맛있었다. 이런 꾸덕한 초코와 더 달콤한 마쉬멜로우의 조합이라니! 내가 딱 먹고 싶었던 그 맛이었다. 흰 우유를 가져와서 함께 먹으면서 언니랑 정말 맛있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지를 모른다. 이래서 구운 마쉬멜로우와 녹인 초콜릿의 조합인 스모어가 꾸준히 인기가 있는구나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확실히 지난번과 비교가 되니 더욱 맛있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몇 개월간 성장이란 걸 했구나 하면서 뿌듯한 것이 나의 자존감 또한 올라가는 것 같았다. 성취감을 느끼는 데에는 베이킹 만한 게 없다는 걸 또 한 번 느끼면서 이번 설에는 스모어 쿠키를 구워서 가져가 볼까 생각해보았다. 스모어 쿠키 대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