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순댕 Jan 21. 2021

[그빵사]78. 얼그레이&레몬 마들렌

포근한 마들렌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생각해보니 마들렌을 만든 지 꽤 오래된 것 같았다. 핸드폰 사진첩을 열심히 올려보아도 좀처럼 나오지 않다가 무려 한 달도 더 지난 12월 11일 사진에서 마들렌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느낌으로는 2주 전에는 만들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흐르다니. 날씨가 우중충한 탓이었을까 벌써 2021년의 1월 말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눈 감았다 뜨면 다시 연말이 올 것만 같았다. 기분이 나쁜 건 아닌데 어닌가 축 처지는 이런 날에는 마들렌 굽는 냄새가 특효약이니 서둘러서 마들렌을 구워보기로 했다.


만들려는 마들렌은 두 종류로 우리 가족이 제일 좋아하는 얼그레이 마들렌과 시판용 레몬즙이 있으니 레몬 마들렌을 만들기로 했다. 제일 먼저 버터를 녹여서 마들렌 틀에 바른 뒤 냉장고에 넣는 것으로 마들렌 만들기는 시작이 되었다. 얼그레이 마들렌을 만들기 위해 베이킹 용으로 구매한 로네펠트 얼그레이 찻잎이 담긴 용기의 뚜껑을 열었더니 피어오르는 향이 여전히 좋았다. 이 찻잎을 다 쓸 때까지 향이 오래오래 지속되길 바라면서 믹서에 한 티스푼 정도 넣어 잘게 갈아주었다. 보울에  계란을 하나를 깨서 무게를 잰 다음에 동일한 무게로 설탕, 버터, 박력분을 두 개씩 준비했다. 갈아놓은 찻잎은 얼그레이 마들렌을 만들 박력분에 넣어주었다. 레몬 마들렌은 계란에 설탕까지 넣은 다음 레몬즙을 추가해주었다. 아주 기본적인 레시피를 응용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작업은 없었다. 모든 재료를 순서대로 넣고 섞은 다음 짤주머니에 반죽을 넣어서 한 시간 동안 냉장고에서 휴지를 시켜주는 사이 50분짜리 드라마를 한 편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금세 50분이 지나가 있는 걸 보면서 이제 베이킹 루틴에도 익숙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븐을 예열한 뒤 얼그레이 반죽부터 꺼내서 부채 모양의 마들렌 팬에 팬닝을 해 줬다. 6구 짜리였는데 반죽은 6개 반 정도가 나와서 원래는 8-90% 팬닝을 해야 하는 걸 100%로 꽉꽉 채워 넣었더니 굽는 사이 부풀어올라 서로 달라붙었다. 또한 볼록 튀어나온 마들렌의 '배꼽'도 화산처럼 커져서 권장시간이 지나고도 2분 정도 상단 열선만 켜서 윗부분을 구워주었다. 오븐에서 꺼낸 마들렌은 바로 식힘망 위에서 거꾸로 뒤집어서 빼주고 식혀주었다. 쉬지 않고 레몬 마들렌도 조가비 틀에다가 팬닝 하여 구워준 뒤 마찬가지로 오븐에서 나오자마자 틀에서 분리하여 식혀주었다. 잠시 소파에 앉아서 쉬는데 머리부터 발 끝까지 향긋하고 달콤한 마들렌 냄새로 감싸있는 듯하여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박눈이 펑펑 내려서 눈 오리를 열심히 만들고 다녔었는데 지금은 비라니. 해도 길어진 것 같은 것이 곧 봄이 올 것만 같았다. 레몬 글레이징을 하기 위해 부엌으로 갔다가 참지 못하고 따뜻함이 아직 가시지 않은 얼그레이 마들렌을 하나 집어서 반으로 쪼갰더니 얼그레이가 향기롭게 피어올랐다. 좋은 찻잎을 써서 이리도 향이 좋은 건가 하고 한 입 베어 무니 '바삭'하는 소리가 들렸다. 열이 강했는지 겉면이 바삭하게 구워졌지만 나는 이 쪽이 훨씬 좋은 것 같았다. 겉바속촉의 마들렌! 언니에게 남은 반 개를 주니 또 아주 맛있게 잘 먹어주었다. (뭐든 잘 먹는 우리 언니)


레몬 글레이징으로 슈가파우더, 물, 레몬즙을 가져와서 레시피대로 계량하여 섞어주었다. 아주 미세한 입자의 흰색 가루는 금세 걸쭉한 소스로 바뀌었다. 마들렌이 올려진 식힘망 아래에 팬을 하나 받치고 글레이징 소스를 한 숟가락 퍼서 조가비 모양의 레몬 마들렌 위에 하나씩 떨어뜨려 주었다. 소스는 마들렌을 감싸면서 팬 아래로 뚝뚝 흘러내렸다. 상큼한 글레이징 소스는 레몬 마들렌의 매력을 한 껏 올려주기 때문에 매번 빠짐없이 작업을 해주고 있다. 글레이징 소스가 굳고 나서 하나를 먹었는데 어찌나 달콤 상콤한 지 얼그레이와 전혀 다른 맛으로 두 개를 만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께서 외출하고 들어오시면서 사 오신 대게를 찌고 있는 사이 뜨끈한 방 안에서 누워서 쉬고 있는데 몸에서 아직도 달콤한 마들렌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왠지 마음이 포근해지는 것 같았다.



얼그레이&레몬 마들렌

글레이징을 하면 더욱 새콤해져요! 굿굿

작가의 이전글 [그빵사] 77. 다시, 스모어 쿠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