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간단한 노른자 베이킹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브레드 박스를 바라보니 그저께 만든 스모어 쿠키 하나랑 어제 만든 마들렌 몇 개가 남아있었다.
나의 베이킹 규칙은 만들어 놓은 것을 거의 다 먹을 때 까지는 새 베이킹을 하지 않는 것이었는데 오늘만큼은 규칙을 완화해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브런치에서 연재하고 있는 '그빵사' 글쓰기를 위한 새로운 베이킹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 글을 위한 베이킹!) 하지만 오늘은 중요하게 해야 할 일도 있었기 때문에 오래 걸리지 않으면서도 새롭고 마들렌 같은 구움 과자류는 아닌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마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온 사람 마냥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는데 또 한 가지 미션 조건이 더 해졌다. 대만 카스테라를 만들고선 남은 노른자 세 개까지 해치워야 했다. 일명 '새롭고 간단하며 노른자만 들어가는 베이킹을 하라!' 미션인 것이었다. 노른자 생각이 나자마자 그빵사 지난 화 [제49화. 남은 계란 사용 설명서]를 찾아보았다. 전란(흰자+노른자) 그리고 흰자, 노른자가 따로따로 남았을 경우에 할 수 있는 베이킹을 적어본 화였는데 이걸 적어 놓은 과거의 나에게 매우 고마움을 전하고 나서 노른자 베이킹을 살펴보았다. 크랙 쿠키, 캐러멜 우유 푸딩 그리고 계란 과자가 적혀있었다. 쿠키와 구움 과자를 제외하고 나니 남는 것은 캐러멜 우유 푸딩밖에 없었다. 너무 어려운 건 아닐까 걱정스러움도 잠시 레시피를 보니 걱정하는 마음은 온데간데없을 정도로 ‘초간단’ 베이킹이었다. 물론 판 젤라틴이 필요한 것과 3시간을 굳혀야 하는 것이 우유푸딩의 장벽 일지는 모르겠으나 솔티 캐러멜 롤 케이크를 위해 사두었던 판 젤라틴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시도해 볼 수 있었다.
먼저 푸딩을 굳힐만할 틀로 사용할 원통 모앙의 유리컵 4개를 찬장에서 꺼내와 씻고 식용유를 발라주었다. 그리고 캐러멜 소스를 만들기 위해 법랑 냄비를 꺼내서 흑설탕과 물을 계량해 넣었다. 불에 올려 ‘살짝 걸쭉하게’ 졸여야 한다는데 10분이 지나도 도무지 ‘살짝 걸쭉’한 느낌이 뭔지 감이 안 잡혔다. ‘아직 그냥 물인 것 같은데 더 끓여? 말아?’ 더 하면 탈 것 같고 그만 하자니 너무 맹물인 것 같아서 그대로 몇 분을 더 끓였더니 아까보다는 걸쭉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불에서 내려 잠시 식혀준 뒤 유리컵에다가 천천히 붓고 나서 냉장고에 넣고 굳혀주었다. 그 사이 이제 우유 푸딩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판 젤라틴은 10분간 불려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두기로 했다. 보울에 찬물을 넣고 판 젤라틴을 재료 수납장에서 가져왔다. 투명하고 단단한 셀로판지 같은 판 젤라틴은 한 장 당 2g이라 10g이 필요했기에 5장을 꺼내는데 마치 색종이를 세는 듯하여서 베이킹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종이접기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왕년 종이접기 홀릭인) 길이가 길어서 보울에 다 담기지 않아서 반으로 잘라 얼음과 함께 넣어주었다. 그다음엔 따로 모아두었던 노른자 3개를 가져오고 계란 하나를 더 깨서 노른자 4개를 모았다. 계란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바닐라 익스트랙도 듬뿍 넣어주고 설탕을 넣어 손 거품기로 열심히 섞어주었다. 이제 90도로 끓인 우유를 넣어야 한다고 해서 일단 냄비에다가 우유를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지켜보다가 아직 끓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온도계 없이 어떻게 온도를 대략 맞출 수 있을까 다른 영상을 살펴보다가 우유가 갑자기 끓어 올라서 가스레인지로 넘쳐흘렀다. 보고 있을 때는 전혀 미동도 없더니 꼭 이러더라! 입을 삐죽 대면서 냄비를 작업대에 옮겨놓고 가스레인지를 닦았다. 너무 뜨거우면 노른자가 익을 수 있다고 해서 주걱으로 저으면서 온도계를 살까 말까 고민을 하다 보니 적당히 식은 것 같아서 노른자 반죽에 조금씩 부으면서 잘 섞어주었다. 그다음은 찬물에 불린 젤라틴을 손으로 꼭 짜서 반죽에다 넣었다. 다행히도 우유는 노른자가 익을 만큼은 아니고 젤라틴은 녹을 만큼은 뜨거웠던 것 같다. 이래서 내가 온도계를 못 사는구나 싶었다. 아예 망하면 필수라고 생각해서 샀을 텐데 얼추 되니까 계속 구매 순위 2순위로 밀리는 것 같다. (하하) 따르기 쉽도록 컵에 주둥이가 있는 핸드드립용 커피 저그를 가져와서 거름망을 중간에 넣고 푸딩 반죽을 한차례 걸러주었다. 이제 냉장고에서 캐러멜 소스를 굳힌 컵을 가져와서 아주 천천히 반죽을 부어주었다. 캐러멜 소스를 더 단단하게 굳혔어야 했나 상아색 반죽이 짙은 캐러멜 소스와 살짝 섞여서 색이 진해지긴 했지만 층은 나눠져서 그나마 다행으로 여겼다. (캐러멜 소스가 아예 굳거나 완전히 섞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제 랩을 씌워서 냉장고에서 굳히기만 하면 되기에 아예 마음을 놓고 방으로 들어가 오늘 해야 할 작업들을 하기 시작했더니 금세 3시간이 지나있었다.
언니가 부엌에 꿈척꿈척 들어가서 뭘 먹으려고 하길래 “푸딩 먹을래?”했더니 얼그레이 마들렌을 씹으면서 오케이를 외쳤다. “푸딩 먹을 사람!!”하면서 엄마를 쳐다보니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는 빤히 바라보시기만 했다. 다시 “ 엄마 푸딩 먹을 사람”하고 세 번을 외치니 “줘어” 한마디를 하셨다. 접시를 세 개 꺼내고 푸딩 컵도 세 개를 가져와서 랩을 뜯어 위를 접시로 막고 뒤집어 주었다. 영상에서 나오는 것처럼 뒤집힌 컵을 위로 들어 올리면 뽀록 하고 푸딩이 빠지는 걸 기대했는데 내 건 뒤집어서 아무리 두드려봐도 당최 푸딩이 나올 생각이 없었다. (눈물) 랩을 씌운 입구를 잡고 흔들었더니 모양은 좀 망가졌지만 그래도 노란색 푸딩이 접시 위로 무사히 나왔다. 길쭉한 원형 모양의 푸딩은 접시에 떨어지자 납작한 원뿔대 모양으로 귀엽게 바뀌었다. 바닥에 깔려있던 짙은 캐러멜 소스까지 주르륵 흘러나오면서 편의점에서 한번 먹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푸딩의 모습을 갖췄다. 접시를 흔드니 푸딩이 아주 탱글탱글한 것이 잘 만들어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캐러멜 소스와 함께 티스푼으로 조금 떠서 (하도 탱글탱글해서 잘 떠지지도 않았다.) 한 입 먹어보았더니 처음엔 흑당 버블티를 녹인듯한 진한 맛이 나더니 바닐라향의 단맛이 올라왔다. 아주 달고 아주 맛있었다. 바닐라향은 바닐라 익스트랙 때문인 듯한데 다음에는 진짜 (비싼) 바닐라빈을 사서 넣어보면 더더욱 더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달아서 부모님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너무 맛있게 드셔서 아주 뿌듯했다. ‘쉽고 간단하며 새로운 노른자 베이킹’ 미션 완료!
모양은 좀 깨졌지만 아주 맛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