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자 처리 베이킹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하루 종일 컴퓨터랑 핸드폰만 보고 있었더니 맑은 바깥공기가 마시고 싶었다.
요즘 날씨도 영상의 기온을 웃도는 따뜻한 봄 날씨 같다고도 하고 때마침 오늘은 분리수거 날이었기 때문에 겸사겸사 산책을 해볼까 하고 옷을 입었다. 분리수거할 것을 양 손 가득히 챙겨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1층 문을 여는 순간 아주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나를 맞이했다. (봄 날씨라며!) 바람이 하도 불어서 스티로폼 몇 개는 날아가고 있었다. 분리수거함 비닐이 날아가지 않도록 붙잡고 플라스틱, 캔 등을 통에다 담고 있는데 손이 너무 시릴 정도였다. '으허허허헉'하는 소리가 절로 나와 산책은 무슨 분리수거를 끝내자마자 그대로 집에 돌아와서 따뜻한 집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베이킹을 해보기로 했다. (이불 밖은 위험해)
원랜 바나나 푸딩을 만들고선 남은 바나나로 파운드케이크를 해볼까 했는데 생각해보니 냉장고에 아주 많이 남은 계란 흰자가 생각났다. (대략 계란 4개 분량) 요새 AI 여파로 계란값이 폭등했다고 하니 오늘은 흰자 처리 베이킹을 해보기로 했다. 당분간은 계란이 한 개 이상 들어가지 않는 베이킹으로 진행해보려고 한다. 아무튼 흰자 처리 베이킹으로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은 '피낭시에'였다. 피낭시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구움 과자인데 유튜브 댓글을 보니 이것은 그냥 직사각형 모양이 아닌 금괴 모양이라고 한다. 찾아보니 피낭시에 (Financier) 혹은 휘낭시에라고도 부르는 과자는 파리의 증권가 근처 빵집에서 만든 것을 시작으로 금괴 모양의 피낭시에를 선물로 주면서 금전운을 빌기도 한다고 한다.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직사각형 모양인 줄 알았더니 이런 뜻이 담겨있을 줄이야! 이거 금괴 모양 틀로 만들지 않으면 잘 만들어졌다한들 50%의 성공이 아닌가 하고 당장이라고 틀을 사러 가고 싶었지만 흰자만 사용해야 하는 피낭시에를 만들면 얼마나 많이 만들겠나 싶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오늘은 금괴 틀 대신 가지고 있는 마들렌 틀을 사용해서 만들어 보기로 했다.
피낭시에는 만드는 방법이 독특했는데 그것은 바로 버터를 태워서 넣는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이것도 용어가 따로 있는데 갈색 빛깔로 태운 버터를 '부르 누아제트(beurre noisette)'라고 부른다고 한다. 먼저 모든 재료들을 전부 계량 해 놓은 뒤에 버터를 작게 잘라서 법랑 냄비에 넣고 불에 올렸다. 2g 정도 더 많이 계량해서 마들렌 틀 두 개에다가 녹은 버터를 발라주고 냉장고에 넣었다. 버터가 녹은 후 끓기 시작하는데 소리가 마치 ASMR처럼 너무 좋았다. 하지만 정신을 깜박하면 버터가 바로 탈지도 모르니 영상과 함께 번갈아가며 보면서 버터를 갈색 빛깔이 나도록 태웠다. 버터를 태운 정도로 피낭시에 맛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태운 것보다야 덜 탄게 낫다'라는 나의 베이킹 법칙에 따라 갈색빛이 되자마자 불에서 내려서 찬물에다가 담가 온도를 식혀주었다. (쫄보임) 이제 50-60도가량 온도를 낮춰야 한다는데 너무 낮아서도 안되고 높아서도 안된다고 했다. 온도계를 살 때인가... 고민하면서 반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흰자에 설탕, 꿀, 소금을 넣어 손 거품기로 하얀 거품을 내주고 아몬드 가루, 박력분, 강력분을 체 쳐서 넣고 섞은 뒤 드디어 태운 버터를 아니, 부르 누아제트를 넣을 차례였다. 버터 향이 어찌나 좋은지 이게 혹시 좋은 버터라 그런 건가 다른 버터들도 이런 냄새가 나나 궁금했다. 다행히도 반죽은 태운 버터와 무사히 섞였다.(이렇게 온도계를 사겠다는 다짐은 또 뒤로 밀리고...) 그다음엔 바로 짤 주머니에 담아서 숙성 없이 팬닝을 하면 된다. 오븐을 예열시켜놓고 팬닝을 하는데 반죽이 묽어서 짤주머니를 자르자마자 주르륵 흘러내렸다. 부채모양의 팬과 레몬 모양의 팬에다가 반죽을 짰는데도 조금 남아서 실리콘 머핀 틀 두 개에다가도 넣었더니 양이 딱 맞았다. (생각보다 양이 많았음)
6구 부채모양 팬부터 구워주었는데 마지막 1-2분 남았을 때에 타는 냄새가 나서 오븐에서 꺼내서 바로 식힘망 위에 빼 주었다. 완전히 타기 직전까지 갔던 것 같았다. 다음으로는 레몬 틀을 넣었는데 온도를 살짝 낮춰주고 밑 불이 센 것 같아 마지막 2분 정도는 윗 불만 켜놓고 구움색을 내주었다. 마지막으로는 실리콘 머핀 틀에 담은 두 개를 넣고 구워주었다. 베이킹이 모두 다 끝난 후에 식기세척기에 그릇들을 몰아넣고 제일 먼저 만든 부채모양의 피낭시에를 맛보려고 하나 집어 들었다. 사실 마들렌과 비슷한 맛일 거라고 생각하곤 기대는 1도 안 하고 한 입 먹었는데 아니 이게 웬걸! 전혀 맛이 다를뿐더러 좋은 쪽으로 독특하기까지 했다. 달콤하면서도 촉촉하고 굉장히 깊이가 있는 맛이었다. 맛 표현을 잘하지 못해서 그냥 만들자마자 혼자 3개를 연달아 먹었다는 것으로 맛 표현을 대신하도록 하겠다. (하하) 피낭시에는 아까 말했다시피 마들렌과 비슷할 거라 생각해서 딱히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우연히 계란 흰자가 남아서 만들어본 피낭시에는 정말 정말 맛있었다. (내가 혼자 다 먹게 생겼다.) 앞으로 흰자가 많이 남는 경우라면 피낭시에를 선택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흰자 처리 베이킹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