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벌써’ 시리즈를 끝내고 싶은 마음
벌써 3월이 되었다.
어젠 삼일절 휴일이라 그런지 자각하지 못했는데, 네이버 메인 화면 검색창 위에 새 학기 그림이 떠 있는 걸 보니 3월임이 실감 난다.
“아니, 벌써 3월이라고?”
몇 년째 이 말을 반복하고 있다. “아니 벌써 올해가 다 갔다고?” “아니 벌써 새해가 왔다고?” 기본으로 크리스마스, 부모님 생신, 여름, 가을 등등 ‘아니 벌써‘ 시리즈는 참 다양하다. 새해가 될 때 매번 다짐한다. 올해는 꼭 알찬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라고. 하지만 올해도 ‘아니 벌써’ 시리즈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방금 전,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32oz나 되는 내 손바닥을 쫙 편 길이보다 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오는 길,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렸다. “날씨가 좀 따뜻해진 것 같지 않아?” 아직 바람은 싸늘해서 두터운 패딩을 입고 있지만 내 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들려있는 것만으로도 날씨가 따뜻해진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러니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이제 곧 있으면 경칩이다.”
2023년에는 3월 6일에 경칩이 돌아온다. 오늘은 목요일이고, 4일 후인 다음 주 월요일이 삼라만상이 겨울잠을 깬다는 경칩이다. 24 절기는 대략 반년 전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홈베이킹을 하다가 한과 & 떡으로 흥미가 옮겨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전통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4 절기‘는 그중 하나 일뿐, 본격적으로 그에 맞는 음식을 먹고, 놀이를 하는 등의 세시 풍속을 즐긴다던가 하는 건 아니었다.
“24 절기마다 무언가를 기록해 볼까?”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대단한 걸 하려 하기보다 그냥 공원에 가서 날씨가 어땠는지, 나무의 잎사귀는 돋아났는지 같은 소소한 기록들을 써 보면 어떨까?
그러다 보니 또 이놈의 완벽주의가 불쑥 나타났다. 경칩 행사 같은 게 있나? 내가 무슨 잡지 에디터도 아니고! 솔직히 가볍게 찾아보았는데, 노인정이나 유치원에서 개구리 그림 그리기를 한 후기만 있을 뿐 딱히 경칩 행사도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경칩은 24 절기 중 세 번째 절기다. 입춘부터 절기가 시작되어서 우수, 그다음에 경칩이 온다.
“아니 벌써 세 번째 절기잖아?”
또 나온 ‘아니 벌써‘시리즈! 그냥 완벽하게 내년부터 시작할까? 아니면 입춘, 우수에 뭐 했는지 적어 볼까? 어제 일도 기억 안 나는데 입춘이고 우수고 그날 뭐 했는지 기억날 턱이 없다. 대단 한 걸 쓰고 싶고, 한 절기라도 빼먹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박감이 밀려온다. 대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래서 아이패드를 켜서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한 뒤, 오늘의 기분을 써본다.
일단 프롤로그를 쓴다.
다가오는 경칩을 기록하기 위해, 일단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