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려 했네
따뜻하다
어제는 외출을 하지 않아서 비교할 수 없지만 확실히 금요일과 비슷했을 때 보다 날씨가 따뜻해졌다. 현재 낮기온은 15도. 패딩 안엔 오랜만에 기모 후드 티가 아닌 얇은 긴팔 면티를 입었다. ‘경칩’을 기록하기 위해 검색해서 찾은 새로 생긴 카페를 왔다. 음료도 평소에 마시던 게 아닌 걸 (예를 들면 대추차?) 마셔보자고 다짐했는데, 걷다 보니 더워지기도 했고, 카페 안이 상당히 후덥지근했기 때문에 시원하고 깔끔한 게 마시고 싶었다. 계산대에서 잠깐 고민하는 척을 했지만 계산 한 건 언제나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쓰다 보니 굳이 경칩이라고 이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을 정도인데, 사실 24 절기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프롤로그를 적은 순간부터 머릿속에는 경칩에 공원을 가서 나뭇잎 사진을 찍어 대표 이미지로 쓸까? 서울 궁궐을 가볼까? 하면서 머릿속에는 경칩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 찼다. 정말 멋없게.
애쓰고 싶지 않다.
얼렁뚱땅 성공을 노리고 싶지만, 나는 그냥 쓰는 글조차도 매사에 열심히 하는 성격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을 뿐이다. 좋아하는 것도 열심히 좋아한다. 예를 들면 의류학을 전공했던 대학시절엔 영화가 좋아 휴학을 하고 영화 의상팀으로 들어가 기어코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 석자를 박았고, 굿즈 만드는 게 좋았을 땐 정식 출판 책을 두 권이나 썼다. 하지만 열심히 산 거에 비해 실속이 없다고나 할까. 물론 어떤 사람은 엔딩 크레딧에, 출판 책 저자로 이름이 올라간 것만으로도 성과를 이뤘다 할 수 있지 않냐 물어볼 수 있겠지만, 중구난방 한 열정은 오히려 나를 제 자리에 머물러 있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열심히 하니까, 금방 지치는 거야.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니 열심히 하지 말자. 애쓰지 말자. 내려놓자. 그냥 하자. 계속 되뇌어보지만 내려놓기를 하려는 것조차도 내려놓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하니까 내려놓으려고 하는 것이다. 아주 열심히. 결국엔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하고.
경칩은 새싹이 돋는 걸 기념하고,
본격적으로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날이라고 한다.
나는 올해 들어 1, 2월에 ‘씨앗’을 3개 심었다.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이미 하나의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하고 죽었다. 대놓고 거절의 메일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답변이 안 오는 것도 답변인 거겠지. 땅 속에 심은 씨앗이 썩었는지 아닌지 눈으로 볼 수가 없듯 ‘읽씹’은 직감적으로 느끼는 망함과 혹시나 하는 희망이 함께 공존하다가 기어코 두 달이 지나자 이건 명백하게 죽은 씨앗이라는 걸 받아들였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포기를 의미하는 게 아닌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결과에 가슴 아픈 걸 보면 전혀 내려놓지 못한 것 같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건가요? 모든 건 때가 있다고 하는데, 해가 들지 않는 땅도 있는 거니까. 바람이 닿지 않는, 꿀벌들이 보지 못하는 땅도 있는 거니까. 찬 바람이 스멀스멀 패딩 속으로 기어들어오는 기분이 든다.
나만 아직 봄이 오지 못하고,
내 안의 개구리들만 여전히 겨울잠을 자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