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축 처지는 이 마음을 달래 보려고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마음이 붕 뜬 시기가 찾아왔다.
열심히 준비하던 작업이 2개월 정도 뒤로 밀리면서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마무리 단계가 남아있긴 한데 대부분의 작업들은 모두 다 끝낸 상태여서 당분간은 할 게 없었다.
이젠 신나게 놀아보자라는 생각도 들법하지만 나는 일을 열심히 할 때 집안일도, 취미생활도 열심히 하는 것 같다. 마치 세 가지가 톱니바퀴처럼 한꺼번에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또한 작업이 완벽하게 끝난 것도 아니라서 어딘가 찝찝함이 남아있으면서도 끝난 뒤의 허무함 같은 것도 밀려오는 애매한 시간이 되었다.
심지어 다음날 대자연이 찾아왔다. '어쩐지 요새 기분이 축축 처지더니...' 기분 전환도 할 겸 외출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극심한 생리통이 시작되어서 그마저도 포기하고 약을 한 알 먹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한 달에 한 번씩 이렇게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건가 세상을 원망도 해보면서 이렇게 우울한 것도 다 호르몬 탓이겠지 하면서 한 껏 짜증을 내다가 이 호르몬의 전쟁에서 이겨보겠다 하고 부엌으로 갔다.
'베이킹을 하면서 기분 전환을 해봐야겠어.'
기존의 만들던 빵과는 다른 걸 만들어 보고 싶었다. 뭘 만들까 고민하다가 초보자 용 레시피에서 '퐁당! 오 쇼콜라'라는 빵을 가르면 주르륵하고 진한 다크 초콜릿이 흘러나오는 디저트를 보았다. '그래, 이거다!' 하고 만들려는 찰나 가족 생각이 났다.
'쇼콜라는 오븐에서 갓 나올 때 먹어야 제일 맛있다는데 이건 주말에 가족 모두 다 있을 때 간식으로 만들고 지금은 비슷한 브라우니를 만들어볼까?'
유튜브에서 브라우니 레시피를 검색했다가, 다시 쇼콜라 레시피를 검색하기를 반복한 끝에 오늘은 오롯이 나를 위한 베이킹을 해 보자고 다짐을 하고 퐁당 오 쇼콜라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쇼콜라는 지금까지 해왔던 레시피와 비교해 볼 때 굉장히 간단했다. 휴지 시간도 없다. 다크 초콜릿을 중탕 후 버터를 넣어 섞고, 계란에 설탕을 넣고 섞은 다음, 이들을 몽땅 섞고 중력분+코코아 가루를 체 쳐서 섞고 틀에 넣고 구우면 끝!
한마디로 재료를 다 섞으면 된다. 굽는 시간도 200도에서 8분. 오븐에 넣어 타이머를 맞추고 뒷정리를 했더니 금방 타이머가 울렸다. 뜨끈뜨끈하게 김이 나는 쇼콜라를 틀에서 빼지도 않은 채 접시에 올려서 티스푼으로 위를 푹 찔렀더니 진한 다크 초콜릿이 꾸덕하게 흘러나왔다. 만들 땐 초콜릿에 버터에 설탕에 코코아 가루를 넣어서 이거 너무 달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달지는 않았다.
가족 단톡 방에 쇼콜라 사진을 올리면서 한 입 두 입 먹다 보니 금방 사라졌다. 살짝 아쉬움이 남길 만큼 먹는 게 딱인 것 같다. 맛있게 먹고 난 뒤 기분은 한결 나아졌다. 우울에 잠식되지 않고 몸을 움직여 기분을 긍정적으로 전환시킨 것에 대해 스스로 대견하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이번 달 호르몬 전쟁에서 이겼다!!
라고 선포하려는 찰나 생각해보니 달디단 초콜릿이 가득 들어간 찐~한 쇼콜라를 선택한 것도 혹시 호르몬의 농간...? (생리할 때 단거 입에 가득 넣는 사람) 아...난 여전히 호르몬의 노예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