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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Dec 07. 2020

[그빵사]36. 허브 '타임'

고민의 시작과 끝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몇 달 전 동네를 산책하다가 새로 생긴 카페를 하나 발견했다. 원래 카페가 있던 자리긴 했는데 주인이 바뀌었는지 이름과 인테리어가 달라져있어서 호기심에 한 번 들어가 봤다. 뉴트로 느낌이 나는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레몬 위크엔드 케이크를 파는 걸 발견했다. 인스타에서 보고 먹어보고 싶어서 집 주변에서 찾아보았으나 파는 곳이 없어 수원까지 가서 원데이 클래스를 들으며 만들었던 케이크였다. 신나는 마음으로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함께 레몬 위크엔드 케이크를 함께 주문했다.


음료와 케이크는 동글동글 귀여운 빌레로이앤보흐 찻잔과 디저트 접시에 담겨 나왔다. 좋은 카페를 발견했다 하고 기쁜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한 가지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보통 레몬 위크엔드 케이크 위에는 피스타치오를 잘게 부수어서 장식을 하는데 여기에서는 긴 풀 하나를 위에 올려주었다. 갈색빛의 레몬 케이크와 하얀색 아이싱, 그리고 초록색의 이름 모를 풀의 조화가 색다롭고 예뻐보았다. 핸드폰으로 [베이킹에 사용하는 풀이름]으로 검색했더니 정보가 하나도 안 나와서 [레몬 위크엔드 케이크 레시피]로도 찾아봤는데 긴 풀로 장식하는 건 여기밖에 없었다.


사장님께 가서 이 풀이 뭔지 물어보기는 쑥스러워서 내 블로그에 다른 포스팅을 올리면서 마지막에 추신으로 레몬 위크엔드 케이크 사진을 첨부하면서 혹시 이 풀을 아시는 분 있으시냐고 적어보았더니 정말 감사하게도 이웃 한 분께서 ‘이거 허브 종류인 타임 아닌가요?’라는 댓글을 달아주셨다. '타임'을 검색해보니 영등포 타임스퀘어가 나와서 다시 '허브 타임'을 검색했더니 이 허브가 맞는 것 같았다. 다음번 베이킹에 쓰려고 구매를 하려는데 허브 타임이 종류가 두 개가 있는 게 아닌가. 레몬 타임과 커먼 타임.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둘 중 뭘 사지?'


잎이 길쭉한 건 커먼 타임, 통통한 건 레몬 타임이라고 한다. 둘 중 아무거나 사도 되는 건가? 카페에서 본 것과 가장 비슷한 걸 사보자 하고 커먼 타입으로 결정할 무렵 또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자라고 있는 화분을 살 것인가? 아님 생잎을 수확해 놓아서 그냥 올리기만 해도 되는 걸 살 것인가? 허브 타임은 습도에 민감해서 화분으로 배송이 와도 금방금방 죽는다고 하니 일일이 잘라서 정리하는 것보다 재배 해 놓은 걸 사는 게 좋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왠지 화분에서 바로 딴 타임을 쓰고 싶었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결정을 못해서 계속 검색하다 보니 또 한 가지 선택지가 생겼다. 씨앗을 발아해서 키워보는 건 어떨까? 허브 타임을 바로 쓸 생각은 없고 언젠간 필요할 때 쓰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씨앗으로 천천히 키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이때부터 나는 고민의 시소에 올라탔다. 큰 일은 무모할 만큼 금방 결정하는 반면 아주 소소한 일엔 열과 성의를 다해서 고민을 하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씨앗을 사? 화분을 사?'


재배해 놓은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열외를 했고,  씨앗과 화분 둘 다 가격은 배송비 포함 커피 한 잔 값 정도로 비슷했다. 굳이 힘들게 씨앗을 키울 필요가 있는가? 아니 그냥 재밌는 거지. 키워놓은 화분이 있는데 굳이? 고민의 시소가 한쪽으로 쏠렸다가 다시 한쪽으로 기울었다가 평형을 유지하기를 반복했다.


그로부터 무려 일주일이 흘렀다. 이미 싹이 발아하고 남을 시간이었다. 그때까지도 장바구니를 들락날락거리며 살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휴전을 선포하고 샤워를 하러 들어갔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씨앗을 사서 키워보다가 실패를 하면, 그때 화분을 사면 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쉬운 결정이 있었다니! 당장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고 가격이 비싼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지. 일주일 동안 내가 했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웃음이 났다.


샤워하고 나와 장바구니에 담아둔 씨앗과 화분 중에 씨앗을 바로 결제했다. 키워보고 (베란다에서 배추, 상추, 파, 바질을 훌륭하게 키우시는 대지의 여신 엄마가 수습해주시겠지) 안되면 화분을 사서 크리스마스 때 타임이 올려진 케이크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너무너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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