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백악 구간과 인접한 성곽마을 성북권을 탐방했다. 성곽과 인접한 북정마을과 문화재가 가장 많은 지역인 성북동에는 갈 곳이 너무나도 많았다.
사진은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발행 지도
이번 탐방은 성북초등학교 부근 한양도성 성곽길을 시작으로 암문을 통해 북정마을을 둘러본 뒤 심우장 아래 내리막길로 선잠박물관과 최순우 옛집까지 내려오면서 중간중간 주변 명소를 둘러보는 식으로 진행했다.
상당 탐방지가 코로나19 4단계로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곳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명소가 많았던 덕분에 볼거리는 충분했다.
다음에 코로나19가 호전되면 이번에 못 들어가 본 곳 위주로 따로 탐방해도 좋을 듯했다.
한양도성 백악 구간 성벽길
한양도성 백악 구간은 창의문에서부터 혜화문까지이다. 하지만 사실상의 종착지는 성벽이 끊기는 곳인 성북초등학교 인근 부근 지역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자는 오늘 탐방 시작 지역을 바로 이곳으로 하여 백악 구간 성벽길을 역으로 해서, 북정마을로 이어지는 암문까지 올라갔다.
오르막길이라 조금은 힘든 감도 있었지만 주변 공기와 풍경이 워낙 좋기도 했고, 금세 암문이 나와서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길이었다.
암문의 반대편 길은 와룡공원 탐방길, 암문 통과 길은 북정마을로 향하는 길이다. 예정대로 암문을 통과해 북정마을로 들어갔다.
한양도성 북정마을
메주를 쑤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북적북적한 모습에서 북정마을이라 이름 지어졌습니다. 만해 한용운이 살았던 심우장과 이어지고 혜화•명륜 성곽마을과 암문을 통해 연결된 마을로, 오랜 세월 거주한 주민들과 우물, 나무 전봇대 등으로 정겨운 고향마을의 정취가 느껴집니다. 북사모(북정마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오임)를 중심으로 월월축제, 산신제 등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풍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용 출처 : 한양도성 성곽마을 주민네트워크 리플릿
북정마을을 걷는 순간 드는 첫 느낌은 따뜻하고 정겹다는 것이었다.
마을 지도 속 마을은 타원형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어느 길로 가도 상관없었지만 나는 왼쪽 길을 오르며 심우장 방면으로 걸어 나갔다.
여긴 정말 마을 한복판인 만큼 이곳을 탐방하실 때는 거주민분들께 피해가 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주셔야겠다.
조금 걸었더니 예쁜 타일이 돋보이는 공용 화장실과 북정 노인정이 보였다.
마을 시설
이곳에서 바라본 성벽의 모습이 멋지더라! 다만, 어르신들 몇 분께서 이곳에서 한가로이 쉬고 계셔서 기자는 방해되지 않기 위해 얼른 자리를 떴다.
그리고 심우장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성북동비둘기공원
몇 계단 내려갔더니 성북동비둘기공원이 우측에 있더라.
공원이라기에는 공간이 넓지 않았고, 쉼터의 느낌이 났다. 실제로 쉼터라고도 명명하더라.
성북동 하면 사실 기자는 어린 시절 학교 교과서에서 배웠던 '성북동비둘기'라는 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곳 역시 위 시에서 착안하여 비둘기 쉼터라는 이름으로 2009년에 이렇게 조성하였다는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볼거리와 쉼터의 제공, 그리고 의미도 담긴 곳이기 때문에. 구경을 마친 뒤 심우장 쪽으로 걸어내려 갔다.
심우장
1985년 7월 5일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 4월 8일 사적 제550호로 승격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만해(萬海) 한용운(1879~1944)이 지은 집으로 남향을 선호하는 한옥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북향집인데 독립운동가였던 그가 남향으로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 보게 되므로 이를 거부하고 반대편 산비탈의 북향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제에 저항하는 삶을 일관했던 한용운은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 이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심우장(尋牛莊)이란 명칭은 선종(禪宗)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 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이다. 왼쪽에 걸린 현판은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서예가 오세창(1864~1953)이 쓴 것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장방형 평면에 팔작지붕을 올린 민도리 소로수장집으로 한용운이 쓰던 방에는 그의 글씨,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만해가 죽은 뒤에도 외동딸 한영숙이 살았는데 일본 대사관 저가 이곳 건너편에 자리 잡자 명륜동으로 이사를 하고 심우장은 만해의 사상 연구소로 사용하였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코로나19 4단계로 문이 닫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해 물론 조금 섭섭했지만, 사실 내게는 건물 그 자체보다는 한용운 선생이 생활했었던 바로 이곳 장소를 방문했다는 의미가 더 중요했기에 괜찮았다.
담벼락 너머로 심우장 전경을 제한적으로 나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내려오는 담벼락에는 한용운 선생의 말씀이 담긴 문구가 있었다.
그의 애국심에 깊은 존경심이 들었고, 이를 넘어서 눈물이 났다. 심우장을 지나쳐 대로변 쪽으로 내려왔다. 멋진 전망을 자랑하는 나무데크 공간이 보였다.
아직 갈 길이 멀었기에 곧장 계단을 내려왔는데 이날만 벌써 세 번째 고양이 친구를 만났다. 물론 서로 다른 친구들이었다. 다들 너무 귀엽더라.
지상으로 내려왔는데 뜻밖에도, 한용운 선생을 만났다!
성북동 만해한용운 동상
한용운 선생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동상과 님의 침묵 등 선생의 시가 전시돼 있었다.
님의 침묵의 첫 구절처럼, 한용운 선생은 떠났지만 우리 국민은 그를 보내지 않았다. 이곳이 잘 관리되고 유지되길 바란다. 공간을 뒤로하고 그 앞으로 약 2km 거리에는 좌우에 명소가 즐비해 있었다.
성북동의 명소들
- 성북구립미술관, 이종석 별장, 간송미술관 등 -
성북구립미술관
이종석 별장
1900년대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부호이자 보인학원은 설립자인 이종석의 별장. 이곳에서 이태준, 정지용, 이효상, 이은상 등 문인들이 모여 문학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다만, 모두 문이 닫혀있었다.
그러나 이 일대에 워낙 명소가 많다 보니 뜻하지 않게 몰랐었던 곳을 여럿 만나기도 했다.
성북동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구 본원
등록문화재 제655호. 1953년에 설립된 한국 가톨릭 최초의 내국인 남자 수도회인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본원 건물이다. 방유룡 신부가 설계하여 1959년에 완공한 이 건물은 역사적-종교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외벽의 성인상 부조는 복제품이며 원본은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는데, 조각가 강홍도(1922-1992)의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한국 최초의 순교자 성인상으로 알려져 있다.
건물이 아주 멋있었는데, 외벽에 조각상이 있는 것이 내가 그동안 봐왔던 가톨릭 건물과는 다른 점이었다.
굉장히 멋있었고, 그야말로 눈 호강 제대로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건물 아래에는 '거리갤러리가' 있었다.
거리갤러리
몇몇 조형물과 예쁜 수목 화단으로 구성된 이 짧은 거리 역시 볼거리를 제공했다.
김승영의 '시민의 목소리'는 200여 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5.2m 높이의 육중한 타워 모습이었다.
그리고 역시 동 작가의 '철, 문장이 새겨진 적벽돌'은 철문을 열면 글귀가 새겨진 적벽돌이 나오는 형태의 작품이었다.
시각적으로도 보기 좋았는데 메시지도 담겨있어 더욱 좋았다. 갤러리에서 내려와 성북초등학교 옆에 있는 간송미술관을 찾았다.
간송미술관
간송 전형필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했고, 1938년 완공되었다.
공사 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근처에 온 김에 외벽 건물을 먼발치에서라도 보고자 바로 옆 성북초등학교를 지났다. 네모반듯 한 하얀 건물이 인상 깊었다. 공사 완료 후 내부에 들어가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겠다.
성북역사문화센터
성북초등학교 건너편의 성북역사문화센터는 오늘의 성벽길 시작점에서도 바로 인근에 위치해 있다. 원래 여기를 첫 번째로 찾으려 했었는데 개방 시간이 아니라 막판에 방문하게 됐다.
기자의 기억으로는 지난해 일찍이 개관할 계획이었는데, 코로나19로 연기되기도 했고 한때 폐쇄도 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것으로 안다.
최근 완공 건물답게 내부가 매우 정갈했다. 1층에는 성북동과 명소에 관련한 설명, 성북동 마을 지도 등 각종 지도와 안내문이 비치돼 있었다. 특히 지도가 매우 시인성 있게 잘 돼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참 예뻤고, 계단을 오르며 우측의 전시물도 볼 수 있었다. 2층에는 성북동과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책들과 빔프로젝터, 책상과 의자 등도 있었다.
아마도 코로나19가 호전되면 여기를 대관할 수 있을 듯하며, 다양한 활동이 펼쳐질 것으로 생각된다.
유리문 너머로 테라스도 있었는데 백악 구간 한양도성 성벽이 보여 좋았다.
성북선잠박물관
조선시대 서릉씨를 양잠의 신(蠶神)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사적 제83호 선잠 단지는 우리 조상들이 의생활에 대해 중요하게 인식했음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선잠 단지와 연계하여 역사성과 상징성을 제고하고 자랑스러운 역사 문화를 계승, 가치를 알리며 시민이 공유할 수 있는 문화공간 조성을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출처 : 선잠박물관 홈페이지
역시 성북초등학교 인근에 있는 성북선잠박물관에 천 원의 입장료를 내고 입장했다. 개인적으로는 사는 곳 근처에 농사의 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선농단'이 있었기에 '선잠단'이 낯설지가 않았다.
1 전시실 : 터를 찾다
선잠단의 옛 기록과 일제강점기를 지나 훼손된 모습, 복원의 현장까지 선잠단에 대한 역사를 담고 있었다.
선잠단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어 좋았다.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이동했다.
2 전시실 : 예를 다하다
선잠단에서의 선잠제 거행 모습, 친잠례의 모습을 모형으로 재현하였고, 선잠제의 진행과정을 3D 영상으로 표현돼 있었다.
확실히 모형과 영상들이 이해를 돕는데 큰 도움이 되더라. 어린이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공간이었다.
3 전시실 : 풍요를 바라다
개방형 수장고 및 특별전시실로 양잠, 직조 등에 사용된 도구들을 직접 볼 수 있으며, 왕실 비단창고를 조성하여 금錦, 사紗, 라羅, 단緞 등 다양한 비단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
특히 '영원불멸 금을 입다 - 금박, 금수, 직금' 기획 전시물은 환상적이었다. 사진 촬영을 금하는 공간이라 사진은 못 남겼지만,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을 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운 전시물의 향연이었다.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다.
하늘정원
쉼터인 옥상 하늘 정원에서는 한양도성과 성북동 전경을 볼 수가 있었다.
선잠단지
박물관을 나온 뒤 인근에 위치한 선잠단지도 직접 보았다. 선농단과 비슷한 느낌도 들었는데, 도로 등으로 좁은 공간으로 복원된 것은 아쉽더라.
길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가 마지막 탐방지 최순우 옛집으로 들어갔다.
최순우 옛집
미리 예약한 시간 즈음에, 최순우 옛집에 들어갔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이 책의 제목만큼은 아마 30대 이상 분들 중에서는 모르는 분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 2000년대 초, MBC 프로그램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서 소개되기도 했기 때문에.
바로 최순우는 제4대 국립박물관장이자 이 책의 저자이다.
그의 집은 골목 한복판에 있었는데도 어쩜 이리도 자연을 품고 있는지. 집 바깥에서는 이런 집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이 안됐었다.
집의 외관과 내부 그리고 주변의 자연과 사물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기대 안 하고 갔는데 굉장히 만족스러웠던 관람이었다.
성북동이 이렇게 문화유산과 명소가 많았는지 이번 탐방으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코로나19 이전 시기에 '정동야행'과 유사한 이름인 '성북야행' 행사를 잠깐 접한 적이 있었는데, 꼭 다시 한번 이 행사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