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갈림길에서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갈림길을 마주한다. 각 갈림길에서 내리는 선택은 때로는 사소하고 중대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선택의 배경에는 각자의 고유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에게 어떤 선택은 사소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 일, 준비 없이 갑자기 가보지 않은 도시로 떠나는 여행처럼 말이다. 어떤 선택은 조금 더 대담했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전혀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일, 다른 나라에서 혼자 살아가는 일. 이런 선택들이 겉보기엔 평범해 보일지 몰라도, 나는 항상 그 순간 크게 고민했고, 결과적으로 내가 믿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는 결정을 내렸다.
나는 늘 의사결정을 할 때 가장 보수적이고 비관적인 결과를 먼저 상상한다. 최악의 결과를 상정한 뒤에도 내가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결정을 내리기 쉬웠다. 내게 있어 결정은 “그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의 문제였다. 몸과 마음의 큰 부상 없이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정도의 희생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안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의 삶에 대한 기대치를 적절히 내려놓고, 그 상황 속에서 나를 믿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역설적이게도, 내려놓을 수 있었기에 나만의 고유한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든 셈이다.
이런 결정들을 가능하게 해 준 가장 큰 힘은 가족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자랐다. 할머니는 항상 나를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 가지고 싶어 하는 물건을 언제나 허락해주셨고, 내가 억지를 부리는 것을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다 들어주셨다. 그런 사랑을 받으며 자란 나의 엄마 역시 할머니의 따뜻함을 닮았다. 엄마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사람이었다. 내 선택에 대해 본인의 의견은 이야기했지만, 나를 대신해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시절, 나는 진로를 고민하며 부모님께 조언을 구하곤 했다. 엄마는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관련된 사람들을 소개해 주기도 했지만, 내가 "어떤 학과나 대학으로 가야 할까?"라고 묻는다면 항상 이렇게 답했다.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 네가 생각해서 결정해야지.”
처음에는 서운하기도 하고, 누군가 대신 결정해 주는 부모가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태도 덕분에 나는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대학 이후의 삶은 더욱 명확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나는 나와 가장 적합하다고 믿는 선택들을 이어갔고, 그 결과 나만의 독립적인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 선택들이 항상 옳았는지는 실제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내린 결정을 믿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이 경험은 직장이나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나만의 기준과 속도로 나아가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여전히 나에게 주어진 최후의 안식처를 믿는다. 그곳은 완벽한 어떤 가정들에 비해서는 여러 면에서 부족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돌아갈 수 있는, 묵묵히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는 자리다. 가족이 있었기에 나는 새로운 시도와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이런 안식처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이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혹은 함께 일하는 동료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따뜻한 안식처가 될 수도 있다.
세상은 늘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더 높은 목표, 더 완벽한 모습, 더 큰 성공을. 하지만 어디로 떠나든, 어떤 선택을 하든,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안식처가 있다는 것만 생각하면 새로운 결정에 부담을 조금은 덜 수 있다. 안식처는 우리가 겪는 모든 도전을 담을 그릇이 되어주고, 때로는 다시 시작할 용기를 심어주는 쉼터다. 나는 그곳을 품고, 다시금 내 삶의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언제나, 나를 믿으며 기다리는 사람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