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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몇 가지 단계

선택을 두려워하거나 의심하지 않기

by 유지경성

나는 어려서부터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새로운 식당보다는 익숙하고 검증된 식당에 자주 가는 것을 선호하고, 머리를 자르는 것도 집에서 멀어지더라도 수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같은 디자이너에게 맡기곤 했다. ‘안전한 선택’을 좋아하고, 그 안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한 현재 상태를 유지하며 지내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내 일상의 기질과는 다르게, 진로나 커리어에 관해서는 비교적 과감한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대학교 진학을 위해 아직 가보지 않은 지방으로 떠나거나, 외국에서 일을 해보는 경험을 시도하고, 때로는 직장을 그만두고 완전히 새로운 전공을 공부하러 떠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런 결정을 할 때면 언제나 두려움이 솟아나고, 때로는 “내가 지금 무얼 하는 걸까?” 하는 쓸데없는 자문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한구석에서 “이 길은 꼭 가야만 한다”거나 “이 선택을 꼭 해봐야 한다”는 강한 확신이 들면, 두려움을 잠시 제쳐두고 내가 선택한 길을 믿으려 부단히 노력해 왔다.


나는 인생에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과정을 크게 세 단계로 나눈다. 그리고 이 세 단계가 모두 충족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1)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단계


이 단계는 자기 스스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자각하는 시점이다. 최근 들어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나,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막연한 갈증을 느낄 수도 있다. 꼭 구체적인 부족함이 아니더라도 “지금 나는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자각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누구나 변화가 필요하지는 않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 굳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이유도 없다. 오히려 현재 상태에 만족하고 안정감을 느낀다면, 그 삶을 그대로 오래오래 유지해 나가는 것 또한 크나큰 행운이며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2) 변화를 위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단계


(1) 단계에서 변화에 대한 갈증이 충분히 커지면, 어느 순간 (2) 단계에서 ‘변화를 직접 선택’하게 된다. 이 변화가 현재보다 불안정할지 안정적 일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변화는 새롭고 그 나름의 불안을 동반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변화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가장 힘든 일일 수 있고, 이 결정에 많은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고민하는 이들도 있다.


내게는 이 (2) 단계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나에게 변화를 주는 것 자체가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로, (3) 단계에서 오히려 나는 가장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실패를 맛보았다. 사람마다 (2) 단계와 (3) 단계 중 어느 과정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지는 다르지만 확실한 건, (2) 단계에서 두려움으로 인해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결국 (3)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3) 선택한 변화를 믿고 꾸준히 노력하는 단계


실제로 어떤 변화를 선택했다면, 그 선택을 믿고 계속해서 성실하게 노력해야만 진정한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어느 변화든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으니, 꾸준한 노력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필수적이다.


나는 이 (3) 단계가 내게 가장 어려웠다. 사실 처음에는 (1)부터 (3) 단계까지의 과정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고, 나는 제법 잘 해낼 수 있으리라고 오만하고 착각했던 듯하다. (2) 단계에서 결정을 한 뒤, (3) 단계에서 잘 풀리지 않으면 “그냥 다시 (2)로 돌아가면 되지 않을까?” 하고 가벼이 생각했었다. 그래서 꽤 많은 선택을 ‘찍먹(?)’하듯이 시도하고는, 내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돌아서곤 했다. 이 점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가장 부족했다고 느끼는 부분이다.


나는 비교적 빠르고 쉽게 변화를 선택하지만, 선택의 길을 가는 도중 어떤 특이점(huddle)이나 난관에 부딪힐 때면 “이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거나 “내가 괜히 이 길을 택했나” 하는 의심이 올라오곤 했다. 나는 선택하기 전에 의문을 품기보다는, 선택한 뒤 실행하면서 의문이 무엇인지 깨닫는 타입이었다. 뒤돌아보면, 내 주변에는 변화 자체가 너무 어려워 (2) 단계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리고 일단 선택을 하면 (3) 단계에서 묵묵히, 아무런 잡생각 없이 꾸준히 노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늘 경외심을 느꼈다.


그렇기에 과거의 나는 (2) 단계에서 재빠르게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이 마치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나아가는 것처럼 스스로 우쭐해했던 부분을 반성하게 된다. 사람마다 선택에 대한 태도와 과정, 그리고 그 선택을 이행하는 지속성의 정도는 정말 천차만별이다.


나는 내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늘 긍정적인 상상을 하는 편이었다. 예를 들어, (A)와 (B) 중 여행지를 고민하다 (A)를 선택했다면, (A)의 즐거움에 대해 탐구하고 누리면 되는데도, 조금의 어려움만 닥쳐도 “(B)를 갔으면 더 편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지금 싱가포르 오차드 거리의 한 카페에서 맥주 한 잔을 즐기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비록 이곳은 우기여서 계속 비가 내리지만, 설날에 집에서 편히 쉬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 대신 이 운치 있는 풍경 안에서 글을 쓰고 책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려 한다.


선택하기 전에 의문을 품고, 선택했다면 의심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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