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괜찮다는 말

조용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by 유지경성

이전에 언급한 내용이지만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이 나를 처음으로 학원에 보냈다. 흔한 경험이었지만, 내게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학원이란 공간은 나와 잘 맞지 않았다. 금세 그만두게 되었고, 그 이후로도 학원이라는 시스템과는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의 기억 가운데, 지금까지도 마음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 하나 있다.


당시에 학원에 들어갈 때, 진단시험이라는 걸 봤다. 학원에는 총 네 개의 반이 있었고, 시험 결과에 따라 반이 배정되었다. 나는 전형적인 ‘공부와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지만, 수학은 좋아했다. 그 덕분인지 예상 밖으로 2번째 반에 배정되었다. 내게는 그게 몇 번째 반인지조차 큰 의미가 없었다. 나는 교과서를 집에서 펼쳐본 적도 없었고, 숙제는 물론 수업 시간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당시에 관심의 중심은 언제나 게임이었고, 어떻게 하면 온라인에서 내가 선호하던 세계관의 최상위권에 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인생의 전부였다.


내가 배정받은 반에는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숙제를 꼼꼼히 해오고, 수업에도 성실하게 참여했다. 반면 나는, 그들 사이에서 ‘전혀 준비되지 않은’ 존재였다. 스스로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눈치를 보며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던 날이 많았다. 그런 어느 날, 수업이 끝난 후 수학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속으로는 ‘이제 혼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뜻밖의 말을 건넸다.


“지금처럼 2번째 반에 있는 것도 무척이나 잘하고 있는 거야.”


언뜻 들으면 비꼬는 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그때의 선생님은 진심을 담아, 따뜻한 눈빛으로 그렇게 말했다. “더 열심히 해서 1반으로 올라가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너의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아직도 그 말의 어조와 분위기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당시엔 그 말을 깊이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한 마디는 내 안에서 점점 단단한 근거 없는 어떤 기준점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나에게는 삶의 어딘가를 지지해 주는 기둥이 되곤 했다.


사회에 나와 살아가다 보면, ‘지금의 자리’를 긍정해 주는 말은 거의 들을 수 없었다. 항상 더 나아가야 하고, 더 보여줘야 하고, 더 위를 바라봐야 한다는 메시지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 속에서 “지금의 너도 괜찮다”는 말은 오히려 낯설고, 어쩌면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있었기에, 때로는 흔들리면서도 나만의 속도를 지켜낼 수 있었다. 경쟁이나 비교에서 자유롭지 못한 시절에도, 근거 없이 “괜찮다”라고 말해준 누군가의 존재를 떠올리며 조금은 덜 흔들릴 수 있었다.


그 짧은 한 문장이 내게 남긴 건 ‘높은 자리’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지금의 자리’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화려함보다는 따뜻함을 좇고, 가장 빛나는 자리를 꿈꾸기보다는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나답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 말 한마디가 나를 어디까지 끌고 가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지금도 여전히 이 마인드는 내 삶을 지탱하는 문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부모님 또한 그런 분들이다. '더 잘해라'보다는, '지금도 참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더 자주 해주셨다.


과거에도, 지금도, 변함없이 말이다.


10%를 바라보는 목표와 1%의 마음가짐


나는 목표와 노력 사이에서 조금 다른 감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보람도 커지고, 오를수록 세상도 다르게 보인다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 나는 종종 바닥을 바라보며 안심한다. “이 아래도 나쁘지 않구나.” 그렇게 생각이 들면 마음이 느슨해지고, 오히려 그 여유 속에서 다시 조금 더 나아가 보자는 동력이 생긴다. 꼭 위를 바라보지 않아도, 나를 조금 더 밀어붙이는 힘이 생긴다.


내가 열심히 하는 이유는 단순히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보다 더 본능적인 이유다. 나는 무언가에 몰입하고 배우고 즐기는 그 순간 자체가 좋다. 물론 더 좋은 결과가 따라오면 기쁘다. 하지만 가지 못하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애초에 나의 목표는 1%가 아니라, 10%쯤 되는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10%는 내게 딱 적당한 거리감이다. 부담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이해지지도 않는 수준. 나는 그 정도의 긴장감이 좋다. 너무 날카롭게 조율하지 않아도, 나를 꾸준히 움직이게 해주는 선. 그래서 나는 어떤 의미에선 ‘승자의 게임’보다는 ‘패자의 게임’처럼 살아간다. 성공을 증명하는 삶이 아니라, 실패하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방향을 잡아가는 방식. 무언가를 이기기보다는, 오래 즐기기 위해 버티는 삶.


물론, 이건 단순히 현실에 안주하자는 말이 아니다. 10%를 목표로 한다고 해서, 1%가 가진 태도까지 등한시한다면 그건 자기기만이다. 나는 그 지점에서 늘 스스로를 다잡는다. 목표는 느슨할 수 있어도, 노력은 날카로워야 한다고 믿는다. 나의 10%는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속도와 방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0.1%의 세계를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러나 그들이 사는 삶의 방식이 나의 삶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갈 수 있는 만큼만 걸어도, 내가 즐기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그것이 나만의 노력의 이유이고, 목표의 방식이다.


나만의 페이스


시간관리를 시작한 지 어느덧 3주가 흘렀다. 회사에 다닐 때든, 지금처럼 자유가 주어진 시기든, 내 생활의 패턴은 놀랍도록 변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5시 30분 기상. 과거엔 업무가 채우던 시간에, 지금은 운동과 공부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특별한 각오나 목표의식이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점점 재미있어졌기 때문이다.


가끔 대치동 스터디카페에 앉아 있으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고3 수험생들이 오랜 시간 앉아 있는 자리에서, 내가 훨씬 더 오래 집중하고 있는 걸 발견할 때. 꼭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꽤 흥미로운 자각이다. 일상이 바뀌었지만, 나의 방식은 그대로였다. 내가 꾸준히 해왔던 리듬 안에서, 내가 즐거운 만큼 나를 밀고 있다.


이번 주엔 유학을 앞두고 신입생 환영회가 있었다. 한국 동문 선배님들이 환대해 주셨고, 나와 같은 신입생들을 처음으로 만났다. 다들 눈빛이 반짝였다. 입학도 하기 전부터 네트워킹을 하고, 커리어를 설계하고, 글로벌 기업과 커피챗을 약속해 두는 모습은 그야말로 역동적이었다. 선배들의 조언도 인상 깊었다. 입학하자마자 곧바로 취업 준비에 돌입하라는 조언들. 명확한 목표와 빠른 실행력, 그리고 치열한 전략이 느껴졌다.


그 에너지와 방향성은 분명 부러운 것이기도 했다. 나처럼 비슷한 커리어를 가진 선배들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조금 다른 지점에서 이 유학을 받아들이고 있다. 나에게 이번 시간의 본질은 “절연(disconnection)”이다. 외부와의 단절이라기보다는, 익숙했던 속도와 기대에서 잠시 떨어져 나를 재정비하는 시간. 더 멀리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한 템포의 쉼이다.


이런 태도는 어쩌면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도 있고, 현실 감각이 부족하다고 비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에게 꼭 필요한 시기가 지금이라는 것을. 너무 오래 달려왔고, 너무 오랫동안 기대에 부응해 왔다. 이번엔 그런 기대에서 조금은 물러나,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려 한다.


이미 주변에서는 수많은 메아리가 들려온다. 지금 이 시기를 어떻게 써야 한다는 이야기, 어디에 지원해야 하고, 어떻게 준비해야 한다는 정보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나는, 내 속도를 지키고 싶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나만의 페이스. 그 고요함 속에서 진짜 나를 더 깊이 만나고 싶다.


이 고요함은 어쩌면, 내가 이 유학에서 가장 얻고 싶은 무형의 성과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고 싶다면, 그에 걸맞은 사람이 되자.


찰리 멍거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무언가 되고 싶다면, 그것을 가질 자격을 가지면 된다.”


나는 이 말을, 단순한 성공 철학이 아니라 조용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이번 유학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주어진 2년이라는 시간은, 단순히 나라는 동일한 콘텐츠를 더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시간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나는 ‘외부’보다 ‘내부’에 더 관심이 있다. 나라는 사람이 실제로 얼마나 바뀔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겉이 아닌 안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는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싶다.


이 학교가 보여주는 멋진 명성, 화려한 브랜드는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명성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이 유학이 끝나는 순간, 내게 남는 것이 단순한 타이틀이 아니라 그에 걸맞은 능력과 태도였으면 좋겠다. 조금은 무겁게 들릴 수 있지만, 나는 이 시간을 통해 조금 더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다.


주변에는 이미 뛰어난 동기들이 많다. 누구나 다 뚜렷한 전문성과 색깔을 지녔다. 나는 스스로 아직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남들과 경쟁하기보다는, 내 속도를 지키며 조금 더 고요한 시간을 가지려 한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진짜로 원하는 공부일지도 모른다. 화려하게 보여주는 삶보다는, 조용히 축적해 가는 삶. 그 안에서 더 단단해지는 것.


얼마 전, 함께 유학을 준비했던 친구가 미국의 다른 학교에서 먼저 학기를 시작했다. 오늘 연락이 왔다.

“벌써 불안해졌어. 다들 너무 적극적이고 목표의식이 강해서, 괜히 나만 뒤처진 기분이야.”

그리고 이런 말을 듣는 순간, 어릴 적 들었던 수학 선생님의 한마디가 여전히 남아 있다.


“지금처럼 이 반에 있는 것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단지 격려의 말이 아니었다. 멈춰 있어도 괜찮다고, 지금의 나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그 시절 누군가가 내게 조용히 말해준 가장 단단한 확신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믿는다. 더 나아지기 위한 1%의 마음가짐은 계속되겠지만.


과거의 나와 똑같은 모습일지라도.


그 자체로도 괜찮고 충분히 대단하다는 걸.


어느 주말의 스터디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