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

자기인식(Self-Awareness)

by 유지경성

내가 지향하는 삶의 큰 지향점은 평생학습이다. 영어로는 lifelong learning, continuous learning, continuous self-improvement through lifelong learning 같은 표현들로 말할 수 있다. 다시 학생이 되면서 이 관점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앎의 척도, 지식의 어떤 기준점 같은 것들이다.


유학을 오기 전, 생각보다 회사 생활이 길어졌다. 나는 자문사로서 고객들과 함께 일했는데, 고객을 만나면 자문사는 의뢰받은 업무와 지식에서 이정표 같은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여러 프로젝트를 하면서 스스로 공부하기도 하고, 고객에게 깨지면서 배우기도 하고, 내부(파트너·팀원)/외부(고객)에서 욕을 먹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돌이켜 보면 이런 경험들이 나를 성장시켰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조금 더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면 그런 생활이 삶의 태도와 자세에서는 큰 끈기를 주었지만, 지식적인 면에서는 의문이 든다. 누적된 것은 ‘경험’이지, 실제 지식이 가지런하게 정렬되어 내 머릿속에 잘 정리되었는지, 내가 정말 전문가적 지식을 갖추었는지는 스스로 확신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린 시절 나에게 영향을 준 친구가 한 명 있다. 나는 어릴 적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고, 몇 번 생각하면 풀 수 있는 문제들을 아주 쉬운 개념으로 착각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친구와 어떤 문제를 두고 누가 맞는지 실랑이를 벌이다가 친구가 한 말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스스로 안다고 착각하며 자신을 부정하면 절대 배우거나 성장할 수 없다.” 그 말을 듣고 의외로 차분해졌다. 너무 맞는 말 같아 조용히 수긍했다. 친한 친구였고, 나 또한 그렇게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 개념과 문제를 제대로 안다고 여기지 않으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아는 척하고 있었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무렵의 이야기지만, 나는 이런 친구들에게 늘 감사했고 그 태도를 흡수하려고 했다. 모른다는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자존심으로 고집하는 태도가 내가 모를 수밖에 없도록 방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더 바보 같은 태도다.


생각보다 스스로를 속이는 일은 나에게도 종종 일어나고 주변에서도 쉽게 보인다. 일하면서도 틀림을 인정하지 못하고 사과하지 못하는 사람을 자주 본다. 한두 번의 경험으로 전체를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흔하다. 자신의 현 상태를 명확히 볼 수 없는 사람은 성장하기 어렵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어떻게 배워 나갈지 계획조차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찰리 멍거(Charlie Munger)가 한 말 중 이런 상황을 잘 비유하는 표현이 있다. 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과 자기인식(self-awareness)이야말로 진짜 지혜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신의 한계를 이해하고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가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IQ 120인 사람이 자신을 110이라고 생각하는 게, IQ 150인 사람이 자신을 170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I’d rather be the guy with an IQ of 120 who thinks it’s 110, than the guy with an IQ of 150 who thinks it’s 170.

찰리멍거(Charlie Munger)


다시 직장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자문사이기 때문에 고객 앞에서 “모른다”는 말은 사실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곤 한다. 고객들이 맡기는 문제는 대개 회사 내부에서 해결이 어렵고, 모든 M&A 거래는 본질적으로 중복이 없으니 선행사례가 있어도 완벽하게 복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객과 커뮤니케이션하며 프로젝트 전체를 이끌어야 한다. 여기서 일종의 업계 관행이 생긴다.


동일한 사례가 특별히 반복되는 업계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전문직 회사에서는 1~2번의 선행사례를 경험하면 나름의 ‘전문가’ 대우를 받는다. 실제로 1~2번의 경험 이후 3번, 4번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수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모든 사례를 통달한 전문가도 아니고, 지식이 완벽하지도 않다. 그래서 매번 밤새우며 새로운 지식을 축적하고 고민해 그 시점의 최선의 답을 내린다. 그것이 정답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고객과 함께 내린 최선의 답이 실행으로 이어지면 그것이 곧 모범답안이 되곤 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안다”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느꼈다. 학생으로 돌아왔지만, 아직 회사 생활에서 체득한 일종의 ‘알아야만 하는 신드롬’의 영향권에 있는 듯하다. 나이가 들며 성장하지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 올린 제국(empire)을 지키려 외부 자극에 무뎌지는 것이고, 선입견에 따라 누군가로부터 오는 자극에 마음을 닫게 되는 경향성도 한몫한다. 그래서 한 번 들어본 주제라면 다 아는 듯, 전문가인 듯 느끼며 예전 방식대로만 하려는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부생 때는 전공이 별것 아닌 듯 여겨도, 박사들은 자신이 아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 딱딱한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더 유연하고 열린 마음으로 내가 실제로 어떤 지식을 갖고 있는지, 나에게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기인식을 더 엄격하게 가져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아는 것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애매하게 아는 것은 오히려 모르는 것보다 더 못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바로 지금 같은 기간에야말로 애매한 지식을 확실히 ‘아는 지식’의 영역으로 옮겨 쌓아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오랜 시간 직장에서 보낸 시간은 나에게 소중한 경험과 자산이 되었지만, 앞으로 성장하려면 더 유연하면서도 더 엄격한 자기인식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나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은 언제나 객관적인 자기인식을 기반으로 해야 실제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자기인식 없는 자신감은 언제까지나 오만에 가까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