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완전성

by 유지경성

나는 세상은 근본적으로 즐겁다고 믿는다. 삶 자체에 의미가 있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기에 살아갈 힘이 난다. 그렇다고 늘 행복한 건 아니다. 기쁨과 무너짐, 분노와 슬픔이 번갈아 찾아오며 삶은 늘 희로애락의 스펙트럼 위를 움직인다. 그런데 어떤 특정사건과 행복 사이에 필연적 인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체감의 강도는 달라진다. 그래서 내 하루는 언제나 행복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때로는 조금 덜 행복하고, 때로는 많이 덜 행복하며, 어떤 날은 불행하다고 느끼기까지 한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삶 자체를 부정하거나,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고민하지는 않는다. 어떤 경우든 죽는 것보다 살아가며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더 낫다고 믿기 때문이다. 돈이 턱없이 부족해 몇백 원으로 일주일을 버텨야 해도 사는 일은 여전히 즐겁고, 당장 죽을 것처럼 아프게 느껴져도 주어진 며칠을 더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외롭더라도 주변을 돌아보면 결국 누군가는 있다. 삶은 어디에 시선을 두느냐에 따라 분명 달라진다.


그런데 살다 보면 문득 스스로가 몹시 싫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 감정은 우울이나 분노와는 결이 다르다. 자라오며 나를 알아 갈수록, 내 안에는 좋아하는 나와 미워하는 내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 또렷해진다. 이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라기보다, 내 마음이 비춘 기대와 지금의 나 사이에서 생기는 간극에서 비롯된다. 말하자면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걸어 둔 기준과 현실 사이에서 생기는 상대적 그림자다.


사람은 스스로 완전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완전을 갈망한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의 말로 풀면 이것이 ‘무용한 열정’이다. 무용하다는 건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이 욕망하는 완전성이 논리적으로 도달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과를 소유하기보다, 지향하고 선택하고 책임지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기획하며 의미를 만든다. 불가능을 인정하고도 자기 선택을 감당하는 태도가 진정성이고, 그 사실을 외면해 “어쩔 수 없다”로 책임을 미루는 태도는 곧 곧 자기기만적 책임회피가 된다. 그래서 과거 철학자들이 언급한 어떤 실존적 자유는 지금 이 순간 내가 선택하고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인데 이런 자유는 단번에 얻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선택과 책임으로 어제를 조금씩 넘어서며 길러지는 힘이라는 점이 그들이 주장한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과거에도 지금도 완전과는 거리가 멀었고, 때로는 그 반대편에 서 있기도 했다. 그래서 스스로가 싫어지는 지점을 들여다보면, 비어 있는 곳이 노력으로 정말 메워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내 사고 습관은 종종 극단에 기댄다. 주식시장이 균형보다 양 극단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 듯, 인간의 마음과 판단도 자주 극단값으로 치우친다. 균형은 가장 그럴듯한 말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어려운 훈련이다. 선언이 아니라 루틴으로만 가까워지는 것. 그래서 나는 내 안의 극단적 사고를 자각하고, 그 기울기를 매일 조금씩 완만하게 만드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배우는 중이다. 아마 이 배움에는 끝이 없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어떤 일에 몰두하는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었는지 스스로 자문할 때가 있다. 일만, 공부만, 운동만. 이런 식의 한쪽으로 치우친 태도는 내게 편리하고 합리화도 쉽다. 게다가 인생의 태도나 방향성은 사회적 물의가 되지 않는 한 타인에게 비난받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종종 어떤 방식이나 사고의 극단값에 머무르는 경우가 있다. 다만, 진짜 어려운 것은 균형이다. 극단은 단순하고 명쾌하지만, 균형은 매일의 조정과 절제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의 극단성에 기대려는 습관을 경계하고, 일, 관계, 건강, 쉼의 무게를 조금씩 맞추려는 연습이 더 어렵고, 그래서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워드 막스 표현하는 말 중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세상엔 모르는 사람과 ‘자신이 모르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되, 사르트르가 말한 불가능성도 나침반처럼 품고 간다. 그 기대를 붙들고 부족한 자신을 더 또렷이 바라보려 한다. 그래서 이 생각들이 그저 생각놀이로 남지 않도록 글을 쓴다. 글쓰기는 체득의 도구이자 실행의 기술이다. 문장으로 생각을 다지고, 다진 마음으로 일상의 선택을 바꾸기 위해서다.


불완전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불완전하게 살겠다는 무력감이 아니라. 나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되, 그럼에도 스스로를 직시하고 꾸준히 나아가려는 태도, 그 자세가 바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그리고 우리의 기준과 목표는, 해가 뜨고 지는 것이 매일 변화하는 걸 체감하지 못하듯 서서히 날마다 바뀌어 간다. 그리고 언젠가, 길어지기도 짧아지기도 한 하루를 마주하는 것처럼 조금은 만족스러운 나 자신과 마주 서는 때가 오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