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에 철갑을 두르고

by 미칼라책방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은 언제부터 있었을까요? 그 말이 생기기 전부터 인류는 아마도 발등을 수없이 찍혔을 것입니다. 그 경험치가 쌓이고 쌓여 한 문장으로 정리되어 속담으로 전해지는 것이겠지요. 산신령은 금도끼와 은도끼 중 너의 도끼가 무엇이냐고 묻기라도 하지만 우리가 맺고 있는 믿음의 도끼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 살면서 발등 찍히는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믿는 도끼에 해당하는 사람은 친구이거나 동료이거나 약속을 한 상대방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정말 이럴 줄은 몰랐다’라는 하소연과 함께 도끼를 탓하면서 관계를 계속 이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게 됩니다. 사적인 관계라면 사과의 마음을 주고받거나 또는 절교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공적인 관계라면 절차에 따른 후속조치를 취하면 되고요. 물론 공사를 떠나 심리적 상처가 있을 수 있으며 이를 치유하기 위해 위로와 보상 등의 관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만약 믿는 도끼가 내 자녀라면? 내 아들, 내 딸에게 발등을 제대로 찍혔을 때... 저는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셋이므로 최소한 세 번 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의 감정은 ‘속상하다’라는 단어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흔히 하는 말로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문장은 딱 한 번 사용해 봤습니다. 처음 발등 찍혔을 때요. 첫 번째 찍힘 이후로 그 문장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찍는 강도가 점점 세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이를 어떻게 키웠는지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아팠습니다.


헌데 그 아픔들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이걸 다행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까 싶지만 여하튼 아이들의 문제가 한꺼번에 달려들진 않았습니다. 대신 잠잠할 만하면 다음 문제가, 그리고 한숨 돌릴라 치면 다음 태풍이 몰아칩니다. 그래서 가지 않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했는지도요.


가끔 바람이 잔잔할 때는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이 아이들을 낳아 이렇게 키우고 있는 제가 스스로 대견할 정도였습니다. 그럴 때 꼭 일이 터지더라고요.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 때문에 아이들과의 관계가 어긋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태풍의 시기를 지나고 나면 다시 잔잔한 바람이 붑니다. 그 바람이 호호 불어주는지 제 발등에 난 상처도 아뭅니다. 그렇게 아물고 또 아물면서 엄마도 크고 아이도 큽니다.


앞으로 아무 일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차라리 무슨 일이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 나을 겁니다. 그때 나는 또 믿는 도끼에게 발등을 내어 주겠지요. 기꺼이. 대신 제 발등에 철갑을 둘러야겠습니다. 단단한 철갑을 두르고 있으면 조금 낫지 않을까 싶어서요. 도끼더러 내려치지 말라고 하는 건 아이들에게 성장하지 말라는 것과 같은 말이니까요.


도끼들을 잘 키우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도끼의 역할은 자고로 찍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나의 발등에 철갑을 두르는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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