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 왼발 급구!

by 미칼라책방



꼼꼼이와 털팔이.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꼼꼼하게 물건을 잘 챙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편이 그렇습니다. 반면 물건을 잘 챙기지 못해 ‘털팔이’라고 불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의 별명이 털팔이라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잃어버리자고 의도해서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챙기려고 노력하는데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의 세 아이도 엄마 아니면 아빠를 닮았고 그중 유난히 엄마 유전자를 쏙 빼닮을 아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분실사건이 잦은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이 아이의 분실의 역사는 유아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유모차에 앉아서 엄마 지갑을 달라고 떼를 쓰며 울어서 잠시 만지게 해 준다는 것이 그 길로 잃어버렸습니다.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는 말하면 입이 아픕니다. 교통카드는 너무 얇아서 잘 잃어버리는 걸까요? 가정통신문은 배달사고가 제일 많은 품목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애플리케이션으로 가정통신문이 와서 그나마 학교 소식은 놓치지 않습니다. 안경은 또 어떻고요. 안경과 우산은 분실의 역사를 이어갈 핵심 아이템이겠죠.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나이키 슬리퍼였습니다. 큰맘 먹고 유명 브랜드를 사주었는데 하루 만에 왼쪽을 잃어버렸습니다. 너무 속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이 한 번 더 사주었습니다. 한쪽 발만 신고 다닐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날 지인이 동네 놀이터에 뉴발란스 오른발 슬리퍼가 있다면서 필요하면 가져다가 신으라고 연락이 와서 한바탕 웃었습니다. 이날 덩그러니 남겨진 오른발은 아직 보관 중입니다. 어디선가 왼발이 나타나길 기다리면서요.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아이가 조금 잦다 뿐이지 다른 두 아이들도 잃어버린 경우가 여럿 있었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갑자기 머릿속에서 쌩~ 바람이 일었습니다. 분실사건이 잦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낸 나의 아이는 책상 정리 정돈을 매우 잘하며, 깔끔하며, 매력적인 웃음을 가진 소년이기 때문입니다. 단점은 하나, 장점은 여러 개였습니다.


맙소사! 제가 뭘 한 건가요? 아이의 많은 장점을 분실사건 하나로 확 덮어버린 걸까요? 머릿속 바람이 잔잔해지면서 반성했습니다.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내가 잃어버린 것들은 다 꼽을 수 없을 만큼이었고, 그건 아이에게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 뒤로 아이의 장점을 더 크게 보려고 연습했습니다. 옛말에 이쁘다 이쁘다 하면 더 이뻐지고, 밉다 밉다 하면 더 미워진다고 했잖아요.


나이키 슬리퍼를 하루 건너 두 번 구매한 이 아이는 정리정돈을 어찌나 잘하는지 배우고 싶을 정도였고, 그밖에 다른 장점들도 수십 가지는 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엄마에게 용돈을 잘 줍니다. 장점 중에 단연 최고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집 털팔이인 저는 물건을 잘 잃어버리면서도 고등학생 때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지는 못했거든요. 따라서 어느 면으로 보나 저보다 나은 아이입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나이키 슬리퍼 270mm 왼발이 뚝 떨어지기를 아직도 바라는 바이지만, 그보다 아이의 좋은 점을 봐주는 것이 더 부모다운 것이라는 걸 배울 수 있었던 분실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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