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어렸을 때를 기억할 수 있는 건 사진 덕분입니다. 사진 한 장은 타임머신과 같아서 그때 아이들이 했던 말, 길가의 풍경, 바람 냄새, 주고받은 표정이 재현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영화처럼요. 과거를 기억하다가 문득 그때의 나는 무얼 했지? 무슨 생각으로? 라는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나를 이제야 인식해야 할 만큼 과거의 육아는 분주했습니다.
육아 선배들은 이런 걸 ‘정신없이 살았지’라고 합니다. 십 년 전에 정신이 없었던 이유는 참 많았죠. 양쪽 허리에 한 아이씩 끼고 양 팔로 아이를 감싸 안고 다녔습니다. 백화점 한 번 가보겠다고 아이들 데리고 나섰다가 아이들이 하도 수선을 피워 엘리베이터 앞에서 유모차를 붙잡고 울었던 적도 있습니다. 5인승 승용차에 카시트 세 개를 설치하니 트랜스포머처럼 지구를 구하기 위해 변신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지구가 아니라 나와 아이들을 구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그래서 두 손과 두 발이 참으로 바빴습니다.
아이들이 클수록 엄마가 할 일은 줄었습니다. 아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둘씩 늘어가면서 엄마의 손길은 줄어들기 마련이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에 그 변화가 가장 뚜렷했던 것 같습니다. 1학년에 입학해서는 이것저것 챙길 것도 많고, 엄마도 학교에 가야 할 일이 종종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했습니다. 간혹 잘 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출동하면 될 일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건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지켜봐 주는 고급 육아기술이라는 것도요.
처음에는 지켜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엄마가 해 줄까?’라고 물어보기도 했고, 답답할 때는 질문도 건너뛴 채 엄마가 했으니까요. 그것이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독립을 시도하는데 엄마가 부여잡고 있었다는 것을요. 살피고 매만지고 해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분명 육아서에서 배웠는데 공부한 만큼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글로만 배운 육아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아이의 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는 선에서 뒷짐 지는 연습을 했습니다. 아이를 향한 뒷짐을 졌다고 해서 시선까지 거두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뚫어지게 아이를 관찰합니다. 작은 변화라도 감지되었을 때 ‘이걸 어째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나도 모르게 뒷짐을 풀고 두 손을 아이에게 뻗을 때도 있었지만, 그리고 아직도 연습 중이지만 예전과는 다른 점은 분명 있습니다. 그건 바로 두 손 육아보다 뒷짐 육아가 필요한 시기라는 것입니다.
움찔움찔하는 입술에 힘을 주어 꽉 다물어야 할 때가 더 많아졌고, 뒤로 맞잡은 손깍지가 풀어지지 않도록 손가락 마디를 철커덩 체결합니다. 이미 나보다 큰 덩치로 성장한 아이들을 여전히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내 입 안에서, 맞잡은 손바닥에서 응축되고 있습니다. 아가였을 때는 엄마의 두 손으로 사랑을 전했고, 아이들이 크면서 엄마의 사랑은 걸쭉한 진액이 되어 눈빛을 타고 아이들에게 도달합니다. 사랑으로 코팅된 아이들은 바니쉬를 바른 것처럼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