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까지는 에미 노력

by 미칼라책방



엄마의 노력은 어디까지일까요? 닦이고 먹이고 재우는 걸 1년 365일, 십수 년 하다 보니 끝이 있다는 생각을 못 했고, 엄마의 노력이 어쩌면 당연하다고 여겼나 봅니다. 그래서 그 끝을 알 수 없었습니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도 먹이고 재우는 건 변함없으니까요. 다만 닦이는 건 오른팔이 부러졌을 때 해 준 것 같아요. 깁스를 풀고 나서부터 닦는 건 혼자 합니다. 그렇게 엄마의 할 일을 하나씩 떼어내는 줄 알았습니다. 시나브로 아이들이 독립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휑뎅그렁하게 굴러다녔습니다. 아이들 학교 상담을 다녀오면 특히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애들 학교에서 좋은 소리 못 듣고 온 딸에게 친정엄마가 “여태까지는 에미 노력이야.”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본인들 노력이고, 그 결과 또한 본인들의 몫이니 이제부터 손 떼라고 하셨습니다.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엄마도 나한테 그랬었나?’였습니다. 대학 다닐 때 화가 난 엄마가 저에게 ‘니 인생 니가 알아서 해!’라고 한 적은 있었는데 그게 그 뜻이었나 골똘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딱 들어맞는 건 아니었지만 대강 그런 뜻이었을까 싶습니다. 그 생각 끝에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엄마는 어떻게 알았지?’였습니다. 엄마는 늘 알았습니다. 다 알았습니다. 뭐든 물어보면 척척이었습니다. 척척박사 친정엄마는 된장찌개에 넣을 된장의 양도 정확했고, 아이들이 남기지 않을 만큼의 밥 양도 미리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특별히 차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날에 위험을 넘긴 적도 있었고, 도장 찍지 말라고 해서 안 찍은 날도 있었습니다. 그 도장은 안 찍길 정말 잘했습니다. 그렇다면 친정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안 걸까요?


저는 또 조그맣게 웃었습니다. 된장이야 나중에 물 조절을 하면 되었을 것이고, 애들 밥은 제가 늘 많이 퍼서 그런 겁니다. 늘상 운전을 하니 차 조심은 당연지사고, 도장을 함부로 찍는 게 아니라는 건 상식이잖아요. 저는 상식에 대해서 놀랐던 겁니다. 엄마가 해 준 말은 걱정과 염려를 담은 보호 패치가 되어 나에게 붙어 있었나 봅니다. 엄마의 문장은 내 몸과 마음에 꼬리처럼 따라붙어 수호천사가 되어주었습니다.


에미 노력은 이건가 봅니다. 천리안을 가진 것 마냥 다 아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속으로 더 애끓고 있는 마음이요. 친정엄마는 나를, 나는 나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 내리사랑이 에미 노력인가 봅니다. 노력이 여기 까지라는 건 그야말로 우리는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천명 딸을 바라보는 엄마도, 십 대 후반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도 노력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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