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으로 입장하시겠습니까?

by 미칼라책방


큰아이가 7살이 되고 초등학교 입학통지서가 배달되었습니다. 사실 그 종이를 받기 훨씬 전부터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리라 결심한 상태였습니다. 내 아이를 공교육으로 보내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건강도 건강이었지만, 예민하고 까탈스럽고 엉뚱한 아이가 학교에 적응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안학교를 알아보았습니다. 대안학교가 왠지 공교육보다는 믿음직스러웠다고나 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까지 세 아이 모두 공교육 과정에서 잘 크고 있습니다. 그때 접했던 대안학교의 교육과정은 매력이 넘쳐났습니다. 하지만 너무 멀거나, 너무 비싸거나 혹은 이도 저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마음에 드는 학교를 찾지 못했고, 큰아이는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엄마의 우려는 단지 우려였을 뿐이었고, 아이들은 학교에 잘 다녔습니다.


가끔 학교 가기 싫다며 안 가면 안 되냐고 물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본인은 나름대로 심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러자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검정고시라는 제도가 있으며, 학교를 다니든 검정고시를 통해서든 기초학력만 갖추면 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동네 슈퍼에서 사탕이라도 사 먹으려면 최소한 돈을 내고 거스름돈 정도는 받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아이는 며칠 고민하는 듯싶었지만 이내 평범한 초등학생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느 날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이가 자기 책가방을 보았냐고 물어왔습니다.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책가방을 엄마가 어떻게 알까요? 그것도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말이죠. 집안 곳곳을 찾았지만 없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등굣길을 거슬러 올라가 봤습니다. 놀이터 벤치 밑에까지 손전등을 비추며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혹여 아이가 학교에서 형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을까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걱정과 불안으로 밤을 보낸 후 아침에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로 갔습니다. 담임선생님과 나눠야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 아침 일정도 취소하고 어렵게 교실 문을 열었습니다. 아이는 자기 자리로 쪼르르 가더니 “엄마! 가방 여기 있어!”라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알고 보니 아이는 어제 종례 후 그냥 내달렸답니다. 밖으로요. 선생님이 불렀지만 소용이 없었나 봅니다. 아이에게 왜 그랬냐고 물으니 자기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의 걱정과 불안이 필요한 때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보다 아이에 대한 관심과 칭찬이 더 큰 역할을 했습니다.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보다 어떻게 다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깨달았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초등 6년 동안 아이는 많이 큽니다. 엄마도 똑같이 6년 동안 성장했습니다. 아이가 1학년이면 엄마도 1학년이고, 아이가 2학년이면 엄마도 2학년이 된다고 했던 선배맘들의 말이 맞았습니다. 아이도 저도 잘 컸던 초등학교 시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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