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가 되기 전에는 ‘듣·말·쓰’가 뭔지 몰랐습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알게 된 ‘듣·말·쓰’는 듣기와 말하기, 쓰기를 줄인 단어였습니다. 제일 놀라웠던 건 ‘듣기’였습니다. 말하기와 쓰기가 교육과정에 편성되어 있는 건 당연하지만 ‘듣기’라뇨... 듣는 것도 배워야 하나요?
네. 배워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학교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요즘 아이들은 듣기가 잘 안 돼서 말길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말을 잘하는 아이조차도 듣기와 균형이 안 맞는 경우가 있다고 하시면서 그런 아이는 특히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상대방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니까요.
우리 집 세 아이가 잘 듣고, 조리 있게 말할 수 있으며, 깔끔한 글을 쓰기 위해 엄마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대략 국어 영역으로 결론이 지어졌습니다. 요즘은 수학이나 과학 문제도 국어 실력이 바탕이 되어야 풀 수 있다고들 하니까요. 흔히 우리는 그걸 문해력이라고 부릅니다. 문해력을 기르기 위해 세 아이가 꾸준하게 했던 건 신문 읽기와 백과 찾기, 책 읽기였습니다.
신문사에 따라 어린이 신문이 별도로 발행되기도 하고, 일반 신문에 어린이 섹션이 있기도 했는데 아이의 성향에 따라 선택했습니다. 신문은 매일 다른 주제를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제일 컸고, 스크랩을 하면서 관심 있는 기사는 색을 칠하거나 따로 정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쓰기까지 확장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백과사전은 보기만 해도 부담스러운 책이기 때문에 만만하게 시작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관심 있는 항목을 찾아 제일 첫 번째 문장만 쓰도록 했습니다. 일종의 필사였습니다. 무엇보다 적확한 어휘를 구사하기 위해 단어 공부를 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는 그림으로 설명을 대신하기도 했고, 퀴즈를 내고 싶을 때는 기꺼이 엄마가 학생이 되어 맞추려고 노렸습니다. 가끔 모르겠다고 갸우뚱 거리며 틀리는 연기도 필요했지요.
읽기는 가능하면 독후활동과 연계하려고 노렸습니다. 도깨비 책을 읽으면 도깨비를 만들었고, 다람쥐 책을 읽으면 도토리를 주우러 다녔습니다. 물론 독서록도 썼습니다. 하지만 쓰기 싫으면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아니어도 독서록 숙제는 어차피 해야 했으니까요. 엄마는 그저 책을 재미있게 읽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신문을 읽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알게 되고, 백과사전에서 접하는 고급 어휘들로 엄마와 말싸움을 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독후 활동을 매개로 엄마와 아이는 조물조물 만들기를 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집안이 어지러워지기도 했지만, 집안이 어지러워질수록 우리 사이는 더 가까워졌죠.
듣고, 말하고, 쓰면서 우리의 관계는 확장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디까지 넓어졌을까? 얼마큼 깊어졌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곧 성인이 되는 아이들을 붙잡고 너의 관계 확장에 있어 한계가 어디냐고 물을 수는 없습니다. 단지 나는 엄마로서 나와 나, 나와 가족, 친구,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역할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듣·말·쓰는 관계의 기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