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하는 글쓰기이지만 막상 내가 하려면 어려운 것이 글쓰기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가 지금 잘 쓰고 있는 건가 의심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씁니다. 잘 쓴 글인지는 확신할 수 없어도 일단 쓰고 나면 나아지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고3 엄마를 예약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잘 쓰리라 결심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힘든 시기에 함께 허우적대는 엄마가 아니라 든든한 지원군이 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작가로 거듭나게 해 준 나의 책 『목수와 그의 아내』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이고, 『나에게 선물한 겨울』은 저에 대한 글입니다. 지인이 『목수와 그의 아내』를 읽고 ‘이렇게 사이좋은 부모 자녀 관계는 처음 본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건 오해라고 정정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의견 충돌도 많고, 감정이 상하는 일도 빈번하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다만 글로 표현되는 과정에서 순한 맛으로 변했을 뿐입니다.
의견이 부딪히고 서로의 감정을 할퀴는 사건들을 활자로 쏟아냅니다. 내가 옳다고 주장하며 나의 정당성을 완성하기 위한 논리들을 마구 가져와 씁니다. 그야말로 분노의 키보드가 됩니다. 우다다다다. 덕지덕지 붙어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글로 전환됩니다. 내 글을 읽습니다. 눈으로 읽히는 나의 감정들은 ‘그게 아닐 수도 있었잖아~’라며 나를 살살 달랩니다. 그러면서 순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글은 그렇더라고요. 감정에 치우친 나를 거울처럼 비춰주면서 온순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나에게 선물한 겨울』은 글벗들과 함께 쓴 글입니다. 리더가 제시한 주제를 나의 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 겨울은 옛 기억도 끄집어냈었고, 새로운 나를 만나기도 했던 일명 ‘나에 대한 탐구 과정’이었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는 걸 새삼 확인했고, 그런 저를 지지해주는 동지들을 만났습니다. 오직 글로만 만났던 우리는 대면하지 않았어도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과거부터 존재해 왔던 나의 모습들을 정리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를 모아 미래의 나로 도약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던 글쓰기였습니다.
개인 블로그에 매일 아침마다 쓰는 짧은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하고, 어제 있었던 분한 감정을 토해내기도 합니다. 기뻤던 일은 기쁜 대로 슬펐던 일은 슬픈 대로 활자로 변신합니다. 활자들이 단어가 되고 문장으로 완성되어 다시 나에게 옵니다. 이로써 나는 나를 볼 수 있습니다. ‘어제 괴물 같았겠군.’ 또는 ‘쫌 멋진데?’ 등의 객관화를 하면서 ‘오늘은 입꼬리를 좀 올려야겠어.’ 또는 ‘한 템포 쉬어갈까?’ 라며 숨을 고르는 도구가 되는 글쓰기입니다.
상대방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나와의 관계도 정말 중요하잖아요. 관계라는 건 나 혼자만 되는 것이 아니라 쌍방이고요. 상대편에 나를 포함한 누가 서 있을지 모르겠지만 글로 탐구하고 알아간다면 사이가 좋아질 것입니다. 게다가 저처럼 소심하고 내향적인 사람이라면 더 적당합니다. 낯을 가리는데 어떻게 상대방 얼굴에 대고 나의 감정을 내놓을 수 있겠어요. 글로 살며시 보일 수 있다면 관계는 회복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많은 관계를 망쳐보기도 했고,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성공적인 관계 맺기로 결혼도 했습니다. 수많은 관계 중 아이들과의 관계는 일방적일 때가 많습니다. 육아서에서는 수평적인 부모 자녀관계를 유지하라고 조언하지만, 나는 대한민국 엄마라 그런지 소심 트리플 a형이라 그런지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도 어렵기만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고3이라는 길목을 지나자마자 성인이 된다고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합니다. 이 고비를 피할 수는 없으니 글을 쓰며 무사히 건너보고자 합니다. 고3 엄마 예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