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없어서 안 읽는지, 안 읽어서 없는지

by 미칼라책방



아들 친구 엄마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길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에서 커피라도 마시며 얘기를 이어가자고 했습니다. 평소 엄마들과의 왕래가 별로 없었던 저는 빈손으로 가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어쩔 줄 몰라했으나 말과는 다르게 이미 현관 앞에 도착한 상태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 엄마를 따라 신발을 벗고 들어갔습니다.


깔끔한 거실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책장이 없었습니다. 이리저리 둘러보았으나 책 한 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엄마가 “우리 애들은 책을 안 읽어서 안 사줘요.”라고 하는 말에 저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 읽어서 안 사주는 건지, 안 사줘서 안 읽는 건지는 마치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따지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저는 아이들에게 책 인심이 후한 편이었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리기도 했지만 그건 일부분이었고 대부분은 새 책, 중고 책을 가리지 않고 구입했습니다. 책을 선정하는 기준은 아이들의 관심사가 첫 번째였고, 학교에서 제공되는 권장 도서 목록과 도서관 인기 도서를 참고했습니다. 브랜드도 별로 따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거나 아이들에게 유익할 것 같다는 판단이 서면 책장에 꽂아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만만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기에 휘뚜루마뚜루 읽도록 했습니다. 같이 읽고 싶다면 옆에 앉아 낄낄거리며 함께 읽었고, 읽어 달라고 하면 열심히 성대모사를 해가며 낭독해 주었습니다. 엄마더러 책을 읽으라고 하면서 블록 놀이를 할 때도 원하는 대로 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발바닥에도 귀가 있으니까요. 가끔은 뒤통수에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학령기에 접어들면서 독후활동이 필요할 때는 제가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풍부한 독후활동을 하기엔 역량이 부족한 엄마였거든요. 예를 들어 거미에 대한 책을 읽으면 놀이터에서 거미줄을 찾고, 아라크네에 관한 신화도 곁들이면서 거미를 만들었습니다. 거미가 거미줄에 붙잡히지 않는 이유까지 설명한다면 금상첨화였지요. 마무리는 ‘샬롯의 거미줄’ 같은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렇게 연계하고 확장하는 독서는 처음엔 버벅거렸지만 갈수록 괜찮아졌습니다. 아이들이 크는 만큼 엄마도 성장했으니까요.


읽고 또 읽어 찢어지는 책도 있었지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책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방바닥에 책을 깔아 놓기도 하고, 책의 위치도 바꿔보았습니다. 여러 시도 중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것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읽은 것이었고, 행간의 의미를 찾아 아이와 엄마가 보낸 시간이 아이의 손가락과 발가락에 저장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아이의 몫입니다. 그 아름다운 시간이 나에게는 이렇게, 이 글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함께 찾고, 웃고, 자르고, 붙이고, 나누었던 모든 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아이가 엄마를 사랑하는 걸 증명하라고 하면 바로 이 글이라고 내놓을 겁니다. 내 사랑 여기 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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