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테이블에서 A형, B형, O형, AB형 네 명의 친구가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다정하게 식사를 하던 중 B형 친구가 아무 말도 없이 벌떡 일어나 화장실에 가버렸습니다. 나머지 친구들은 움찔 놀라기는 했으나 그 반응이 각기 달랐다고 합니다. 우선 O형 친구가 “쟤 무슨 일 있나?”라면서 화장실로 따라갔습니다. AB형 친구는 흔들림 없이 계속 먹었습니다. 마지막으로 A형 친구는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숟가락을 놓았다고 합니다. '나 때문에 그런 건가? 내가 뭐 실수했나?'라는 생각을 하며 B형 친구를 걱정했다고 합니다. B형 친구는 그냥 화장실에 간 건데 말이죠. 소심 a형인 저는 이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세대는 상대의 혈액형을 물으며 어떤 유형인지 감을 잡는 반면 요즘 아이들은 “너 MBTI 뭐야?”라며 대화를 시작합니다. 인프제(INFJ), 잇팁(ISTP), 엔프피(ENFP) 등의 유형으로 어떤 사람인지 파악합니다. 이것이 정식 검사가 아니라는 공지가 발표되기도 했지만 그건 기성세대의 의견일 뿐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단순하게 상대가 어떤 유형인지 파악하는데 참고할 뿐 이걸로 무슨 큰일을 도모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게다가 MBTI는 상대를 아는 것뿐 아니라 나에 대한 고찰을 하며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인식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두괄식으로 주제를 먼저 내놓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미괄식으로 중심 내용을 마지막에 수렴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수미상관을 유지하면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 무난하게 의미를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문단마다 정리가 잘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그런 사람이 굉장히 부럽습니다. 저는 아직 그런 유형에 들지 못하기 때문에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혈액형은 인간을 A, B, AB, O형의 4종류로 구분합니다. MBTI는 I와 E, S와 N, T와 F, J와 P를 조합하여 16가지로 나눕니다. 혈액형에 비해 MBTI가 조금 더 세분화되었다고 할 수 있네요. 물론 다른 성격 기질 검사도 많습니다. 그래 봤자 열 몇 개의 유형으로 나누어 심층 분석해야 한다고들 일관되게 말합니다. 그에 비해 글쓰기는 나만의 방법으로 나를 표현합니다. 열 명이 있으면 열 가지 유형이 있고, 백 명이 있으면 백 가지 유형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는 유형을 나만 가지는 ‘이경혜식 글쓰기’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물론 갈고닦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도 명확합니다. 하지만 글쓰기만큼 나를 독창적이고 유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게다가 제일 큰 장점은 수정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글쓰기는 ‘어맛. 이거는 아닌데!’가 받아들여집니다. Backspace만 누르면 되니까요. 글쓰기를 통해 앞으로도 계속 나를 뜯어고치며 살 수 있습니다.
과거에 썼던 글을 읽으며 혼잣말을 하기도 합니다. “얘, 뭐래니?” 또는 “헐...”이라고 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심지어 아무 말도 못 한 채 ‘지워버릴까...’ 고민하는 글도 많습니다. 삭제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과거의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 그 기회는 인생에 있어 보석과 같은 것입니다. 거듭되는 수정과 고민으로 점점 정교해지는 나를 만들어가는 글쓰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피의 종류나 성격 유형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이경혜식 글쓰기’는 나만이 가지는 온전한 내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떤 유형의 글을 가지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