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이다 비나이다

by 미칼라책방


어렸을 적에 화요일 밤마다 방송하는 ‘전설의 고향’은 꼭 이불속에서 보아야 했습니다. 구미호 같은 귀신이 나오면 바로 뒤집어써야 하니까요. 그렇게 무서워하면서도 화요일 밤만 되면 이불을 부여잡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억울한 사연을 듣고 해결해 주는 사또께 힘을 실어주어야 했습니다. 마치 내가 해결해 주는 것 마냥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면 오늘도 한 건 한 기분이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이때부터 권선징악의 결말에 중독된 것 같습니다. 지금도 행복한 결말이 아니면 영화고 뭐고 다 재미가 없습니다. 모두 행복하자고, 다 좋자고 사는 거 아닙니까, 우리!


뒷마당에 정화수 떠 놓고 손바닥을 비비며 소원을 비는 건 전설의 고향부터 보아온 장면입니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뭘 그렇게 자꾸 빕니다. 자녀들의 무탈과 부모의 건강, 가족의 성공을 빌고 빌며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했습니다. 개인의 신앙과는 별개로 마음속으로 꼭 이뤘으면 하는 ‘소원’은 누구나 있습니다.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미라클 모닝도 하고, 루틴도 만들며, 저 같은 경우는 아침마다 글을 씁니다. 옛날 어머니들이 손바닥을 비비듯 저는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다다다, 다다다.


제가 쓰는 내용은 주로 가족에 대한 것입니다. 자녀들의 무탈과 부모의 건강, 가족의 성공을 저도 역시 기원합니다. 비나이다 다다다, 비나이다 다다다. 특별히 저는 아이들이 고3 기간을 무탈하게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고등학생의 생활과 교육을 논하자면 거시적으로 교육정책까지 논해야 하므로 제외하고 싶습니다. 그건 어렵기도 해서 제 능력 밖의 것입니다. 저는 그저 아이들이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넘어가는 그 시기를 잘 보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마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엄마들이 저와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조금 더 솔직하자면 좋은 대학에 갔으면 좋겠고, 조금 더 욕심내자면 좋은 직장에 취직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은 엄마의 입장일 뿐입니다. 아이들의 입장은 엄마와 다를뿐더러 아직 정해지지도 않았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은 그들의 것입니다. 확실한 건 엄마의 양육 상태에서 졸업하는 것이며, 본인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개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와 내가 개인 대 개인으로, 성숙한 인간으로 대면하기 위해 준비하는 끄트머리 시간이 겁납니다. 이 기간에 대학이며 직장 같은 모든 것이 결정 난다고 하는 그 말이 무섭습니다.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너에겐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며, 무엇을 선택하든지 엄마는 너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저는 이렇게 비나이다 다다다 비나이다 다다다를 하고 있습니다. 혹여 아이에 대해 가진 엄마의 관심이 욕심으로 비칠까 싶어 배우가 대본을 외우듯 ‘너의 결정을 지지한다’를 웅얼거리기도 합니다.


어느 날 아이가 저에게 ‘엄마는 나에 대한 기대를 왜 하는 거야?’라고 물어왔습니다. 엄마가 가지는 기대가 부담스럽다며 관심을 거두라고 강요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기대를 가지는 건 엄마의 특권이야. 넌 너의 인생을 살면 되는 거야.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살 테니.”라고 했습니다. 아이와 제가 서로의 인생을 충분히 응원하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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